‘순실의 시대’ 대간(臺諫)의 직언을 잊은 공영방송

[기자수첩] ‘순실의 시대’ 대간(臺諫)의 직언을 잊은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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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의 명운이 기울 때마다 간신들이 득세했다. 공민왕 때 김용과 신돈, 연산군 시절 임사홍, 조선 최악의 간신으로 꼽히는 윤원형, 매국노 이완용까지. 왕에게 아첨해 총애를 얻은 뒤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한둘이 아니나 그 많은 권력자들 중 유독 몇 명만이 간신으로 불리는 것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안위까지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중 윤원형은 <명종실록>을 편찬한 사관조차 “이전 시대의 권력형 간신 중 윤원형만큼 죄악이 하늘까지 닿은 자는 없었다”는 논평을 달 정도로 악랄한 간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누이인 문정왕후를 배후에 두고 권력을 거머쥔 윤원형은 정적들을 내친 후 자신의 사람들로만 조정을 채워 대놓고 뇌물을 받고, 국가의 재산을 멋대로 팔아먹었다. 윤원형의 세가 어찌나 컸던지 왕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들러리 신세나 다름없었다.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대간, 감찰, 암행어사 제도는 역사적으로 손에 꼽히는 감사제도 중 하나다. 특히 조선시대 이르러 완성된 3사 사헌부와 사간원, 홍문관은 권력의 독점과 부정 방지를 목적으로 삼고, 왕과 대신들을 감시‧견제하면서 직언을 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바른 말을 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 좌천을 당하거나 극형을 받아도 간언을 멈추지 않았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사간원은 “만약 간관을 두고서도 그 말을 듣지 아니한다면, 이것은 임금이 스스로 그 이목(耳目)을 막는 것”이라며 간관의 언로를 보장하라고 요청했다. 정도전은 <삼봉집>을 통해 이 같은 대간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대간을 맡은 자는 먼저 위엄과 명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해야 할 자들이 도덕적 권위가 없다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최순실 씨가 저지른 온갖 비리와 국정농단 행태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두 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 과정, 강제 모금부터 대통령 연설문 유출 및 수정, 국가 기밀 문건 유출과 각종 정책 개입, 청와대 참모진 및 장차관 인사 개입 의혹 등이 매일 매일 새로운 내용으로 보도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외치는 촛불 앞에서 박 대통령은 고개를 숙였지만 두 번의 사과만으로는 수습될 수 없을 만큼 민심은 악화됐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느냐 만은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대통령의 몰락과 대한민국 혼돈에 있어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참모진들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 그리고 ‘대간’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검찰‧공영방송 관계자들 역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특종을 주도하면서 연일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는 종합편성채널 JTBC와 극명하게 대립되고 있는 공영방송은 지금이라도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내부에서 스스럼없이 나오는 지금의 상황이 제대로 된 것인지’, ‘극우 종편 못지않게 정부를 호위하고 눈치만 보다가 기회주의적으로 뒤늦게 특별취재팀을 꾸려 꾸물꾸물 보도에 나서는 것이 과연 공영방송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경영진을 포함한 내부 구성원들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