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의 공공 서비스 플랫폼 복원을 위한 정책 제안

[기고] 한국 방송의 공공 서비스 플랫폼 복원을 위한 정책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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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현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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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우리 방송 정책들은 공공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의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조차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해왔다. 이로 인해 우리 시청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방송 환경과 기술 변화에 걸맞은 적절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동안의 한국 방송 정책들은 ‘방송 산업 진흥’이라는 기치 아래 지상파 방송사, 유료방송 사업자, TV 제조사 등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채 무리하게 수립되고 시행돼, 가장 중요한 시청자의 권리가 배제되고 표류하게 되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이게 하고 말았다. 이에 현재의 한국 방송을 명백히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규정하고, 한국 방송의 빠른 정상화를 위해 시청자 입장에서 실효성 있고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공동주택 MATV(공시청 시설) 의무 법제화’를 제안한다. 아날로그 방송 시절 시청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질 좋은 화면을 직접 수신으로 시청하기가 용이치 않았다는 점이다. 때에 따라 실내 안테나 또는 실외 안테나를 계속 조정해가며 흔들림이나 혼신 없는 화면을 잡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며, TV를 시청하는 데 있어 날씨와 바람 등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불편에서 벗어나고자 케이블TV와 같은 유료방송을 통한 TV 시청이 보편화 되고, TV를 보려면 유료방송을 신청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됐으며, 이로 인해 유료방송 가입 가구 비율이 90% 이상에 이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TV를 수신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시청자들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고려됐어야 할 직접 수신 확대에 대한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수립되거나 시행되지 않았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기존 아날로그 방송의 낮은 전파 수신 커버리지를 확대하고, 고화질·고음질의 방송을 구현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시청자가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기존과는 다른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과 함께 기존 아날로그 방송 정책 실패에 따라 당연시 되고 있는 방송 시청에 따른 시청자들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완화가 반드시 최우선적으로 고려됐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와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전환 계획 수립과 전환 과정에서 직접 수신율 확대에 대한 목표치와 계획을 명확히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렇듯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친 한국 방송의 정상화는 아날로그 시절부터 고착화돼 있는 유료방송 일변도의 비정상적인 방송 시청 환경에서 시청자들이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으로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시청자 단체들의 꾸준한 요구로 공동 주택에 대한 공시청 설비 지원 대책들이 일부 나왔지만, 목표와 실현 계획이 불분명해 뒤늦은 인프라 구축 사업에 그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방송의 빠른 정상화를 위해서는 공동 주택의 공시청 시설 부분에 대한 관심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 가운데 아파트의 비중은 50%에 달하며, 연립 주택과 다세대 주택까지 포함한 공동 주택의 비중은 60%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다수 시청자의 거주 형태를 고려해볼 때 직접 수신 확대의 1차 대상을 공동 주택으로 우선 설정하고 직접 수신 확대 정책 여기에 집중해 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 주택의 MATV 설비 점검, 유지·보수 및 관리에 대한 명확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방송법 또는 주택법상에 구체적인 관련 조항들을 신설하거나 관리 주체를 반드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법 개정이 여의치 않거나 시간이 걸릴 것에 대비해 지자체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에 별도 조항 신설 등으로 공시청 시설 복구와 관리, 지상파방송 직접 수신 및 주민 제공에 대한 근거를 우선적으로 마련해 놓는다면, 관련법 개정 이전에도 직접 수신에 대한 공동 주택 거주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와 직수율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별도조항 신설]
제○○조 [방송서비스의 제공] 관리주체는 입주자에게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방송 직접 수신에 대한 정보 및 수신 방법에 대해 고지하고, 입주자가 무료로 지상파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공동 주택의 MATV 법제화는 공동 주택의 공시청 시설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지원을 통해 공동 주택 거주자들이 유료방송보다 직접 수신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유도해 이른 시간 내에 직접 수신 시청자 수의 확대를 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오면 관성적으로 유료방송을 신청하거나 공시청 형태의 유료방송을 보게 되던 시청자들에게 유료방송을 신청하지 않고도 공시청 설비를 통해 편리하게 지상파방송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는 정보와 연결 팁을 제공하고, 그러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아파트 등 공동 주택 거주 시청자들은 직접 수신에 대한 일차적인 고려를 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폭발적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직수율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직접 수신 확대를 위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재허가 심사에 반영되는 방송 평가 등에 수신 환경 관련 항목을 포함토록 하는 등의 안전장치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유료방송 시청자의 지상파 채널 선택제’ 도입을 제안한다. 유료방송 가입자 중 상당수가 지상파방송 시청을 위해 유료방송에 가입하고 있다. 현재의 유료방송 상품 구성과 가격 구조는 지상파 직접 수신이 어렵던 아날로그 방송 때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체 유료방송 상품에 지상파방송 채널이 기본적으로 포함돼 있어 아날로그 방송 시절부터 유료방송으로 전환한 시청자들의 유료방송 쏠림 현상을 제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본적인 유료방송 상품군에서 지상파방송 채널을 제외토록 하고,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에 가입하고자 할 때 유료방송채널 이외에 가입상품에 지상파채널 추가 여부를 시청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시청자들에게 지상파방송은 직접 수신을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지상파방송 이외의 유료방송에 대해서는 필요한 채널이나 묶음 상품을 추가해 그만큼만 요금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유료방송 시청과 상품 및 과금 패턴의 일대 전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날로그 때와는 달리 전파 수신 커버리지가 확대되고, 직접 수신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진 지상파방송은 실내외 안테나를 시청자들이 연결해 직접 수신으로 전환하고, 유료방송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채널을 선택 가입해 1대의 DTV에 지상파 직접 수신 안테나와 유료방송 셋톱박스를 동시에 연결해 방송 수신 환경을 하이브리드화해 동시 연결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급률이 80%에 이르는 DTV의 경우 직접 수신 안테나와 유료방송 동시 연결 시청이 외부 입력 설정 등으로 상당 부분 가능하고, TV 제조사의 기술 지원이 있을 경우 보다 매끄럽게 직접 수신과 유료방송 수신을 동시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상파 채널 선택제 도입은 시청자의 선택권과 직접 수신 확대, 방송 시청에 따른 경제적 부담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이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적극적인 콘텐츠 대결구도로 인해 보다 질 높은 콘텐츠 생산이 촉진될 것이며, 지금까지의 반복적인 ‘재송신 분쟁’에 따른 시청자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지상파 MMS(다채널서비스) 본방송의 즉각적인 도입을 제안한다. 지상파 MMS는 정부가 지상파 디지털 전환을 결정하면서 시청자 권익 증진을 위해 도입을 약속했던 것이다. 2012년 12월 31일 지상파의 아날로그 방송 종료로 디지털 전환이 완료됐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디지털 전환 정책의 전제 조건이었던 지상파 MMS 도입은 EBS 2TV 시범 서비스 외에는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구체적인 도입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EBS의 MMS 시범 서비스 시작 전부터 유료방송과 재송신 문제로 갈등이 발생한 바 있다. 이는 정부가 지상파 디지털 전환 정책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던 MMS 도입에 대한 방송사별 시기, 방법, 운영 계획, 기술 문제 등에 대한 총체적인 로드맵이 부재했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지상파 MMS 도입은 시청자들에게 직접 수신만으로도 일정 정도의 방송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으로 지상파 디지털 전환 정책의 명백한 전제 조건이다. 지상파 MMS를 통해 공익적 방송 콘텐츠를 보다 확대하고,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에 의존하지 않고도 콘텐츠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상파 MMS 도입 및 활성화는 아날로그 시절 지상파 난시청 문제로 유료방송을 시청하게 되고, 유료방송 플랫폼의 다변화로 다양한 채널과 콘텐츠를 경험하게 된 시청자들을 직접 수신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조속히 지상파 MMS 전면 허용 원칙을 수립하고, 일차적으로는 공영방송부터 시청자들에게 다채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무료방송과 유료방송 서비스가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우리 방송 생태계를 시청자 위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

네 번째로 ‘시청자에 대한 방송 정책 및 향후 계획의 정확한 로드맵 제시’를 제안한다. 미미한 지상파 직수율, MMS 등 디지털 전환의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은 아날로그 방송 종료 상황으로밖에 규정할 수 없으며, 디지털 전환의 진행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케이블TV 방송의 절반이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남아 있으며, 저소득층의 경우 아날로그 TV로 아직도 저화질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전환 이후에도 시청자에 대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 확대를 위한 노력보다 뉴미디어 기반의 VOD 서비스와 같은 콘텐츠 판매에 혈안이 돼 있는 등 급속한 상업화의 길로 가고 있다. 차세대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TV 수상기 구입 비용, TV 수신료, 유료방송 요금, 각종 N스크린 서비스 이용 요금 등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시청자들의 경제적 부담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시청자의 편익이 증대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하고, 경제적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한국 방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방송 산업 진흥 일변도에서 벗어나 시청자 중심의 방송 정책 수립과 개혁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직수율 목표 설정, 지상파 MMS 허용 시기 및 채널운영 계획, UHD 등 차세대 방송 도입 시기 등 시청자와 밀접한 방송 정책 및 계획 등 정확한 로드맵이 우선적으로 시청자에게 명확히 제시되고 전달돼야 한다. 이에 따라 시청자들은 직접수신 전환 여부를 선택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고, 차세대 방송의 시행 시기 등을 감안해 TV 수상기 교체 및 구입 시기도 고민할 수 있으며, 유·무료 방송 시청과 관련된 맞춤형 요금 설계도 가능해질 것이다.

시청자 중심의 방송 정책 수립과 로드맵 제시는 디지털 방송 환경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방송의 급속한 상업주의화와 획일화, 시청자의 고비용 지출이라는 부작용을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비정상적인 한국 방송 생태계에서 공영방송 등 공공 서비스 영역을 빠르게 정상화해 유료방송의 한계를 보완하고, 공정경쟁과 상생을 통해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시청자 선택권과 권익이 신장될 수 있도록 이제는 다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한국 방송 생태계의 판이 흔들려도 정상화를 위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한국 방송 생태계가 공영방송 등 공공 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정상화의 길에 들어서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이 검증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논의 등도 긍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적정한 직수율 목표 설정 및 달성이 전제되고, 차세대 방송 계획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한 지상파의 UHD 등 차세대 방송 주파수 할당에 대해 시청자들이 동의해주기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