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시스템, 이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기고] IP 시스템, 이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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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강동민 SBS 미디어기술기획팀] 아날로그 신호에서 HD, UHD에 이르기까지 비디오·오디오 신호의 변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 엔지니어들은 SDI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동축케이블, 즉 구리선을 애용해 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SDI 신호는 정직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흐르는 단방향, 헷갈리지 않는 단일 신호, 눈에 보이는 전송로 등.

그런데 수년 전부터 갑자기 제조사에서 장비에 네트워크 커넥터를 연결하라고 말하기 시작했으니 기성 엔지니어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분명히 회선은 하나만 연결했는데 신호는 수십 개로 분배된다고 하고, 설계 도면에는 몇 개 보이지도 않는 라인에 여러 신호가 양방향으로 왔다 갔다 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 방송사 저마다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규격에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시기가 다가왔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 하니, 좋은 기회로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위치한 메이저 IP 방송 시스템 제조사 Evertz를 방문하여 IP 방송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왔다.

[사진 1] 캐나다 토론토 근교 벌링턴에 위치한 Evertz 본사에서 단체 사진.
Evertz는 본사에 공장이 함께 위치해 글로벌 판매물량을 모두 이곳에서 직접 생산·유통한다. 최근 하만에서 STUDER를 인수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헝가리에 있는 STUDER 공장을 이곳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IP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이유는
IP 시스템이 무엇을 말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IP 시스템이란 모든 비디오, 오디오, 데이터 등의 단위가 패킷 단위로 분리돼 네트워크망을 통해 전송되는 것을 말한다. 기존 SDI라는 하나의 전송로에 비디오, 오디오 및 데이터가 함께 전송돼 최종단에서 다시 분리해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고, 필요한 신호만 사용해 대역폭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스포츠 중계나 이원 생방송 같은 장거리 중계 시 가장 큰 단점으로 언급되는 신호 품질의 감쇄 문제에서도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외에도 SDI를 IP로 전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같은 가격 기준에서 SDI 신호 케이블과 네트워크 케이블을 비교했을 때 가격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며, 네트워크 카드 또한 SDI 입출력 보드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그리고 향후 발전 가능성을 보았을 때 새로운 미디어 등장에 따른 해상도(4K·8K)의 대역폭을 지금의 비용 기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IP 전송 표준이 더 높다고 시장은 판단하고 있다.

IP 시스템 전환을 위해서 필요한 사항
첫 번째로는 새로운 IP 전송표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IP 기술을 이용해 신호를 전송하기 위한 표준은 먼저 제정된 ST2022 계열과 ST2110 계열이 있다. ST2022가 기존 SDI 신호를 그대로 IP 네트워크에 변환하는 방식이라면, ST2110은 비디오, 오디오 및 데이터를 각각 별도로 전송하는 방식이므로 수신단에서 원하는 신호만 받을 수 있는 조금 더 진일보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각 표준에는 세부 표준이 존재하며, 비압축 비디오에 관한 표준, PCM 오디오에 대한 표준 등이 별도로 명시돼 있으며, 아래 서술할 IP 시스템에서의 동기화를 명시한 ST2059 또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 중 하나이다.

10년 전 방송기술 시장에서 IP 전송 시스템이 처음 소개되던 시점만 하더라도 각 제작사는 각자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독자적 기술이 가미된 솔루션을 발표하곤 했지만, 하나의 제조사 제품만을 사용할 수 없는 방송사의 입장을 고려하면 상호 운용성 측면에서 도입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와 같은 전송 표준을 통해 여러 제조사의 장비를 방송사 엔지니어의 운용 측면에 맞게 적절하게 도입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전체 시스템에 대한 통합 모니터링 및 컨트롤 시스템에 대한 이해이다. 기존 SDI 환경에서는 각자의 장비가 단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방향의 통로에 접근할 수 있는 신호 패치패널을 통해 웨이브폼 모니터로 신호를 모니터링하거나 테스트할 수 있었다. 해당 방법은 어떤 신호 통로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패치패널을 여러 개 설치하는 과정에서 시설 구성이 복잡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반면, IP 시스템에서는 SDI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패킷 신호가 양방향으로 연결돼 송수신되기 때문에 기존의 SDI 시스템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엔지니어가 모든 신호 시스템을 한눈에 파악하고 여러 가지 제조사의 IP 프로토콜을 수신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 필수라고 할 수 있는데, 제조사 저마다 이런 통합 컨트롤 시스템을 출시해 입맛에 맞게 구성해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번 교육에서는 주관사인 Evertz에서 제안하는 솔루션 ‘MAGNUM’을 예시로 그 시스템을 체험해 볼 수 있었는데, 직관적인 그래픽을 통해 IP 네트워크 토폴로지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 제조사의 장비 또한 해당 시스템으로의 통합을 통해 제어할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통합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IP 기반 방송 장비 간의 상호 운용성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AMWA(Advanced Media Workflow Association)에서 제정한 것이 바로 NMOS(Networked Media Open Specifications), 즉 IP 기반 장비의 개방형 표준이다. 해당 표준을 적용한 신규 장비를 연결하면 타 제조사 장비라 할지라도 자동으로 등록해 모니터링, 라우팅, 또는 제어할 수 있도록 통합 시스템이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사진 2] IP 시스템으로 연결된 장비의 연결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

세 번째로는 IP 시스템에서의 동기화를 담당하는 PTP 클럭의 안정적인 운용이다. 기존 SDI 시스템에서는 전체 Sync를 담당하는 Sync Generator에서 분배되는 동기 신호를 분배기로 모든 장비에 분배하였다면, PTP는 Master Clock이라고 부르는 마스터 장비와 Slave Clock이라고 부르는 최종단 장비와의 시간을 통일하는 작업을 통해 동기화를 진행한다. PTP 동기화에 대한 개념은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있으니 핵심만 말하자면, Master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Slave단의 도착 시간을 확인해 그 지연 시간만큼을 보정해 동기를 맞추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PTP 동기화 시스템에서는 Master Clock이 특정한 사유로 제 기능을 못 할 경우 다른 Clock 시스템이 그 기능을 인수하는 알고리즘을 말하는 BMCA(Best Master Clock Algorithm)가 있어 기존 Change Over 시스템에 익숙한 방송엔지니어들은 그 차이를 이해하고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자유롭게 IP 기반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그날까지
일을 하다 보면 타 방송국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들릴 때가 있다. IP 시스템 도입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곳, 이제 곧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곳 등. IP 신규 표준이 발표되면서 자연스럽게 IP 시스템 전환을 고민하는 방송사가 늘고 있다는 소리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본의 아니게 실패를 통해 발전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이 부러울 때도 있고, 나라면 저렇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 하며 선구자가 된 분들에게 존경심을 표할 때도 많다. 그만큼 IP 시스템 전환은 우리 방송 엔지니어들에게 큰 숙제 중 하나가 됐다.

이번 방문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북미와 한국이 IP 시스템 도입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북미 방송사에 IP 시스템은 단지 기존 SDI 시설의 노후화로 차기 시설을 검토하는 데 가장 경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스템을 고민했을 때 내린 결론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 방송사의 IP 시스템 전환에 대한 전제조건은 UHD 제작 시설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HD 시설 개선에 있어서는 SDI 기반 구축이 더 안정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엔지니어들이 많으며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SDI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제 IP 신호 시스템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에 따라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된다는 것이다. 점점 4K, 8K 해상도에 대한 대역폭을 SDI 시스템이 대응하기에 힘든 시기가 다가올 것이며, 장비 제작사는 IP 전용 시스템 장비만을 출시하게 될 미래가 펼쳐질 수도 있다.

따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피하고 싶은 선택을 받아들이는 미래보다는, 지금부터 IP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일부 차용해보며 여러 가지 Case Study를 진행해보는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진 3] IP 표준 ST2110을 적용해 부조정실을 운용하고 있는 캐나다 통신사 Rogers에 방문해 담당 엔지니어에게 질의하고 있는 모습

금번 캐나다 토론토를 방문해 진행한 7박 9일간의 교육을 통해 지금까지 각종 세미나와 전시회를 다니며 IP 시스템에 대한 이론이나 표준을 멀리서 보는 수준에서 벗어나 실제 시스템을 확인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북미의 방송사에서 실제로 IP 시스템을 적용한 부조정실을 설계한 엔지니어를 만나 그들의 경험과 시행착오, 그리고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 보는 소중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