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채널 개국과 방송 산업 기상도

[기고]종편 채널 개국과 방송 산업 기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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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채널 개국과 방송 산업 기상도

윤석진(충남대 국문학과 교수, 드라마평론가)

한국 방송계의 지각 변동이 시작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3월에 채널 승인장을 교부받은 4개 종편 채널이 12월 개국을 목표로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나 오락 또는 드라마나 스포츠 등 하나의 분야에 국한되었던 기존의 케이블 채널과 달리 지상파 방송과 마찬가지로 모든 분야의 방송을 24시간 내내 방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편 채널의 개국은 미디어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종편 채널 개국으로 인한 미디어 환경 변화는 한국 방송 산업의 기회이자 위기이다. 방송 콘텐츠의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종편 채널의 명분이 현실화된다면 다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방송의 산업적 기반이 확고해질 수 있기 때문에 기회라고 할 수 있지만, 만약 그 명분이 허울에 그친 채 이전투구 식의 시청률 경쟁에만 치중한다면 그러잖아도 허약한 방송 산업의 기반 붕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국을 앞둔 4개 종편 채널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방송 콘텐츠’의 다양성이 아니라 ‘방송 채널’의 다양성에 그칠 공산이 크다. 주지하다시피 방송 프로그램은 크게 보도와 교양 그리고 드라마와 예능으로 구성된다. 종편 채널의 프로그램 역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존의 방송 콘텐츠와 다르지 않은 라인업으로 새로운 채널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는 어렵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 채널만으로도 방송 콘텐츠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편 채널의 특성을 살린 참신한 프로그램들이 기획․제작되어 방송 콘텐츠의 다양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만약 종편 채널의 프로그램들이 지상파 3사와 별반 다를 바 없다면, 방송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라는 명분은 허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분야에 국한해서 본다면, 방송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으로 예측된다. ‘뮤지컬드라마’와 같은 새로운 장르나 ‘주말 시트콤’과 같은 새로운 형식의 시트콤처럼 일부 종편 채널의 드라마들을 통해 새로운 장르와 양식의 실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르 드라마의 사전 전작제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일일․월화․수목․주말’ 등으로 양식화되어 있는 지상파 방송 3사와 다른 새로운 편성 전략을 수립한다면 종편 채널의 경쟁력 강화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종편 채널의 특화된 드라마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면 자연스럽게 장르적․양식적으로 틀에 박힌 지상파 방송 3사 중심의 드라마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 결과 방송 콘텐츠가 다양해지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종편 채널의 개국은 지상파 방송사와의 관계에서 절대 약자로서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외주 제작사의 위상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아무리 좋은 기획이고 작품이어도 방송사의 ‘편성’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방송 현실에서 새로운 채널의 등장은 외주 제작사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실제 종편 채널과 상관없이 기획․제작되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지상파 방송에 편성되지 못했던 일부 드라마가 새로 개국하는 종편 채널에 편성된 사례를 보면, 이러한 기대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종편 채널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경우, 종편 채널 역시 ‘갑’의 자리에서 외주 제작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효과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종편 채널 드라마들이 지상파 3사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제작․편성된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그러잖아도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드라마가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장르적이나 양식적인 측면에서 차별화되지 않은 종편 채널의 드라마들이 방송 산업을 기형적으로 왜곡시킬 수 있다. 게다가 개국 초기에 채널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스타급 배우와 작가 그리고 연출자를 대거 영입하는 과정에서 한국 드라마 산업 규모를 뛰어넘는 예산을 투입한 것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편당 제작비를 무한대로 늘릴 수 없는 열악한 제작 현실에서 일부 스타급 배우와 작가 그리고 감독의 개런티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지출되면 그만큼 다른 부분에서 손실을 감내해야 하며, 이런 비정상적인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 드라마 산업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지상파 방송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나타난 이러한 부작용은 종편 채널 개국을 계기로 점점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산술적 개념으로 연간 드라마 제작 편수가 증가하는 것을 마냥 환영하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이다.

방송광고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종편 채널의 개국으로 치열한 광고 유치 전쟁이 예고되어 있는 것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이다. 한계에 이른 방송광고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법적으로 금지했던 간접광고(PPL)를 허용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협찬 제품을 노출시키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이 바뀌면서 드라마를 보는 것인지 광고 방송을 보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시청 주권에 문제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간접 광고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케이블 채널과 마찬가지로 종편 채널에 허용된 ‘중간광고’가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간접광고의 폐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중간광고 역시 드라마의 질적인 완성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열린 채널 설명회에서 드러난 라인업만으로 종편 채널 개국 이후의 방송 환경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걸음마 단계의 종편 채널이 만약 지상파 방송과 마찬가지의 편성 전략을 구사한다면, 치열한 시청률 전쟁터에서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종편 채널이 방송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라는 개국 명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상파 방송이나 케이블 채널과 다른 특화된 방송 콘텐츠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2011년 12월 이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종편 채널이 한국 방송 산업의 질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더불어 종편 채널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열리기 전에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길 필요는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