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선진화 망한 미국 따라하기

금융선진화 망한 미국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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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지주회사 : 금융선진화? 망한 미국 따라하기
 
  월간노동세상 황기우 기자

* 한 금융지주회사의 광고사진. 계열화, 대형화, 정보 공유 및 관리의 용이함 등 지주회사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최근 금융지주회사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국민은행이 KB금융지주사로 변경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연말 국회에서 여야 간 거센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쟁점법안 중에 금융지주회사법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9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모두 문을 닫을 때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던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지주회사는 ‘모회사’라고 하기도 하고 ‘지배회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자(아들)회사’를 거느린 회사이다. 지주회사는 산하 자회사들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거나 혹은 지배 가능한 만큼 보유하여 이들을 지배하는 회사이다.
 
그렇다면 금융기관들이 금융지주회사의 형태로 탈바꿈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주회사로 전환될 경우 생기는 장점 중 가장 큰 것은 자회사들에 대한 관리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하나의 지주회사 밑에 많은 자회사들이 계열화가 되면 경영 상태와 자금 상태 등을 파악하기 용이하고 감독 또한 쉬워진다. 또 다른 장점은 지주회사로 전환되면서 자회사들이 모이게 돼 회사 자체가 대형화 되는데, 이것 역시 기업의 대외경쟁력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이다. 또한 지주회사 내의 금융회사들 간에 고객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많다. 그래서 많은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였거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장점 덕택에 대형화된 지주회사는 당연히 시장지배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시장지배력이 커진 기업집단으로 경제력은 더욱 집중될 것이다. 그래서 특정 기업집단으로 과도하게 경제력이 집중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1986년부터 지주회사 설립 자체가 금지되어 왔다.

하지만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은 기업조직을 강화하는데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고 결국 1999년 지주회사의 설립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달아 놓았다. 특히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해야 한다는 것과 일반 회사가 금융회사의 주식을 일정 정도 이상 보유할 수 없게 하는 등의 단서가 붙은 것이다.

지주회사 중에서도 은행을 비롯한 금융지주회사법이 더 까다로운 이유는 금융산업의 특징 때문이다. 금융은 다른 산업에 대해 자본을 제공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자본의 제공, 배분과 동시에 사실상 해당 기업에 대한 감독과 규제 등도 행하게 된다. 기업에 대출을 할 때 해당 기업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대출 이후에도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은행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분리되어어야 한다.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좌지우지 하게 된다면 경제 시스템이 공정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기업에 자본을 제공, 분배하고 실질적인 감시와 규제 역할까지 하는 금융산업을 특정 산업자본이 지배하게 된다면 금융은 그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금융산업에 산업자본이 직접 결합이 되면 산업자본에서 일어나는 위험이 예금으로 구성된 금융자본으로 전이되는 문제도 생긴다. 비금융 산업자본이 파산을 하게 되면 같은 지주회사 내의 금융회사에 예금이나 투자를 한 사람들에게 금전적 피해가 생긴다.

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의 결합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금융지주회사법에서는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비슷한 취지로 은행법에서는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을 4%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예외적으로 소유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 소유한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개정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이 이대로 개정된다면 보험·증권지주회사는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즉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두는 대기업 보험지주회사 혹은 증권지주회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은행법 역시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을 4%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을 10%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개정할 예정인데 10%의 지분은 은행의 경영에 충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다. 사실상 금산분리의 원칙이 깨지는 것이다.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당국과 한나라당의 금융선진화 방안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충분한 자본을 공급해 투자은행 등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자본의 풍부한 자본을 금융부문으로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금산분리의 원칙을 완화해야 하며, 대신 감독과 규제를 강화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투자은행으로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하에서 부채비율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완화된 제한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면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감독아래 들어가게 된다. 은행지주회사가 되면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의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제한이 강화된다. 이는 사실상 공격적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은행업에 대한 포기라고 보아야 한다.
결국 지주회사라는 키워드는 동일하지만 한국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과 미국 투자은행의 은행지주회사로 전환은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가진다.
 
이번 국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이 개정되어 금산분리가 완화된다면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오로지 정부당국의 규제와 감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번 키코(KIKO) 사태를 돌이켜 볼 때 걱정이 앞선다. 중소기업들은 흑자를 내고도 환율 때문에 도산을 하고 있는데 정부당국은 키코 관련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의 규정은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규제와 감독의 강화 규정은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