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청, ‘직접수신’ 위한 첫 번째 조건

공시청, ‘직접수신’ 위한 첫 번째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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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방송 종료가 약 40일 앞으로 다가왔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이미 아날로그 방송 종료가 이뤄졌고, 다음달 31일 오전 4시를 기점으로 수도권 지역의 아날로그 방송도 종료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에 가입한 가구도 그 중 하나다.

지난 15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따르면 국내 유료방송 가입 가구 중 절반에 해당하는 가구가 여전히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날로그 방송은 종료되지만 이들 가구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 가입 가구 중 절반은 ‘지상파 방송을 잘 보기 위해’ 유료방송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만약 지상파 방송 채널 5개가 제대로 잘 나왔다면 이들은 따로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수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직접수신 생태계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4000원만 내면 볼 수 있는 유료방송 가입자가 증가하다보니 → 직접수신가구의 수요가 감소하게 되고 → 그러다보니 안테나 등을 판매하던 지역사회 전파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 안테나 수요가 끊기니 당연히 설치공사 업체도 도태하게 되고 → 이는 또 직접수신 인프라 훼손으로 이어지게 된다. → 그럼 또 (지상파 방송을 보기 위해) 유료방송 가입자가 증가하는 것이다.”

지난 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2012 가을 디지털 방송 컨퍼런스, 방송 미래를 꿈꾸다’에 참석한 신진규 DTV KOREA 교육사업팀장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직접수신 인프라 비교를 통해 ‘잘 구축된 직접수신 인프라 → 직접수신가구의 구입 및 설치 수요 → 지역사회 매장 내 안테나 비치 → 안테나 설치공사업체 존속 → 직접수신 인프라 유지 및 발전 → 직접수신가구의 수요 증가’ 등의 선순환 구조가 성립될 때 직접수신율이 증가할 수 있다며 다른 무엇보다 ‘공시청 개선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공시청’이란 하나의 안테나와 방송설비를 통해 다수의 세대가 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공동주택에 만들어진 설비를 말한다. 신 팀장은 “현재 우리나라 가구의 71%가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공시청만 잘 되어 있으면 70%가 직접수신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계 및 전문가들은 단순히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재난‧재해 등 긴급 속보 방송을 위해 공시청 개선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난방송이라는 사회 안전망 성격에서 이 설비가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작년 우면산 산사태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케이블 방송의 경우 산사태 등의 재난으로 케이블 전송망이 유실될 경우 복구 작업이 길어져 오랜 시간 동안 방송이 중단될 수 있다.

신 팀장은 이 외에도 “할 수 없이 유료방송을 보는 경우와 시청자가 선택해서 유료방송을 보는 경우는 다르다”며 매체 선택권 확보 측면에서 공시청은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광호 서울과학기술대 전자정보IT미디어공학과 교수도 이에 동의하며 “무료로 지상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것과 시청자 의지와 상관없이 유료 방송을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측면을 없애기 위해서 일단 국민들에게 제공돼야 할 방송 플랫폼의 다양성은 동일하게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공시청 설비와 관련해 ▲외부인의 공청망 훼손 ▲내부선로의 케이블 점유 ▲비전문가의 설비관리(고장시 케이블 방송사에서 관리 등 없음) ▲직접수신과 공시청 중요성에 대한 이해 부족 ▲유료방송 단체가입의 편리성 등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공시청 선로를 케이블 방송이 전용해도 케이블 사업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지관리에 대한 점검 주기, 점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 조항이 미비한 것도 큰 문제라고 신 팀장은 지적했다.

“법으로 보면 2004년 이후 아파트의 경우 공청안테나용과 유선방송용으로 분리배선이 되어 있는데 케이블 등 유선방송에서 2개 선로를 모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적발되어도 유선방송 사업자는 처벌받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관리 차원에서 입주자 대표 및 관리사무소 등만 처벌받을 뿐이다. 케이블은 처벌도 받지 않고, 지상파 채널 사이사이에 낀 홈쇼핑 채널로부터 이익만 얻을 뿐이다.”

그는 이어 “점검주기나 점검방법 등에 대한 법령이 없어서 공시청 개보수 작업을 실시한 이후에도 제대로 관리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현재 아파트 등 공시청 개보수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항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비용은 비용대로 낭비되고, 입주민들의 재난방송 보장‧매채선택권 보장 등 공시청의 본래 목적은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정부가 공동주택 공시청 개선 작업에 보조금을 지급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재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사는 11년 동안 1조6,500억 원을 투자했고, 정부는 5년간 2,300억을 투자했는데 그 중 융자 920억 원을 빼고 나면 고작 1,380원만 투자한 것이 된다.

신 팀장은 “아파트의 경우 디지털시청100%재단이 150세대 이상 아파트를 대상으로 공시청 개보수 작업을 실시하고 있고, DTV KOREA가 150세대 이하 아파트를 대상으로 헤드엔드를 제외한 안테나와 증폭기 등 구축비용의 50%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아파트를 제외한 연립이나 다세대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공시청 설비 의무 구축대상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시설이 구축되어 있지 않고 있는데, 시청가구의 70%가 공동주택에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보조금을 지급해 공시청 설비 개선 작업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