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부른 합창

[칼럼] 혼자 부른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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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호요성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최근 가상현실(VR)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360도 전 방향 비디오를 이용한 몰입형 증강현실(AR)의 응용이 예상보다 빠르게 번지고 있다. 360도 비디오는 단순한 오락용 콘텐츠뿐만 아니라, 스포츠, 교육, 훈련, 의료, 심지어는 성인물까지 적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주제다. 360도 VR 실시간 방송을 통해 본인이 직접 참석하지 못한 스포츠 경기나 음악 행사의 장면을 여러 방향에서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다.

2003년 초에 설립된 광주과학기술원 실감방송연구센터에서도 다시점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실사 영상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합성 영상 캐릭터를 넣은 AR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수행했었다. 그 당시 국내 여러 학교 100여 명의 연구원이 어울려 다양한 주제의 연구 개발을 진행했는데, 지금 뒤돌아보면 몇 가지 아쉬웠던 부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연구 과제에 참여하는 교수님 대부분은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일부 연구실에서는 학생 하나만 덜렁 붙여 두고 연구센터의 행사에는 등한시했던 것 같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연구비 지원이 적다고 아우성을 치며 연구센터의 방향과 다른 연구 장비를 사달라고 조르기만 할 뿐, 매년 제출해야 할 연구 성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나 몰라라 했다. 심지어는 A 과제의 연구비를 받아서 B 과제의 연구 성과로 제출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경우에 과제를 책임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혼자서 합창을 불러야 한다.

종종 아내와 같이 음악회에 가 보면, 앞에 선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라 많은 단원이 일사분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접하는데, 가끔씩 지휘자가 없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에서는 각 연주자가 자기 연주뿐만 아니라 다른 연주자의 연주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단원들의 책임감이 더 강해진다고 한다. 지휘자가 있으면 30초면 충분했을 시간을, 연주자들은 세부 사항을 논의하느라 몇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비효율성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내는 소리를 잘 조화시켜 하나로 만들어 음악적 결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국내외 학술행사를 맡아서 준비하다 보면 행사를 위해 신경 쓸 부분이 하도 많아서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준비위원으로 가담한 사람 중에는 다른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빠져나가서 숨죽이고 조용히 숨어 있다가 잔칫상이 모두 차려진 뒤에 젓가락만 들고 나타나는 얌체도 있다. 심지어는 행사가 종료될 때까지 코빼기조차 안 비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행사를 맡은 사람이 빠진 부분을 채워서 메꿔 넣어야 한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멋진 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행사에 참여해서 입만 뻥긋거리기만 해도 보기에 훨씬 좋으련만. 혼자 부르는 합창은 아무래도 그림도 어색하고 소리도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서로 협력해 맞들면 같이 일하는 재미도 있고 일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일을 힘들게 시작하지만, 일을 진행하는 중간 과정이나 마무리하는 과정은 다소 무른 것 같다. 연구 과제를 제안해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경쟁도 매우 심하고 바라보는 눈들이 많아서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평가해 결정한다. 하지만, 일단 선정돼 진행되는 과제는 종종 탈락률을 운운하며 엄포를 놓긴 하지만, 마무리된 과제의 성과 평가는 상당히 관대하며 대충대충 진행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경쟁이 아주 심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무척 어렵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거의 예외 없이 주어진 기간에 대학의 졸업장을 받는 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대학을 들어가는 문은 상대적으로 넓게 열려 있지만, 정해진 학업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졸업하기가 무척 어려워 대학을 졸업하는 데 5~6년이 결리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무한한 아량을 베풀어 합격할 수 있는 점수로 올려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1년 동안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행사에 비춰 본인이 느낀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다. 이는 나만 잘 났다고 다른 사람을 나무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급속히 변화하는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배를 탄 일원으로서 우리가 같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주마가필 식으로 적어 본 것이다. 설혹 지휘자의 키가 작아 지휘봉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에 맞춰 자기가 맡은 연주를 열심히 해 가면 훌륭한 연주회가 될 것이며, 가냘픈 소리라도 입을 벙긋거리며 각자 가지고 있는 음색을 더한다면 정말 멋진 합창이 되리라 믿는다. 그동안 보잘것없는 글을 읽고 좋은 의견을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리며,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한국방송미디어공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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