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타임즈를 추억하며

[사회 문화] 모던타임즈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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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인간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계부품으로 전락하는 근대 공장의 풍경은 차라리 ‘나쁘지 않은 추억’인 것 같다. 2011년 현재 대규모 제조업 공장에서는 아예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문명의 이기인 첨단기술이 ‘잉여인간’을 양산하는 아이러니다. 대기업들은 사상최대 이익을 구가하고 있지만 근로자들은 자동화에 치이고, 고비용이라는 이유로 홀대받는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 년간 일자리 확대를 화두로 내걸고 고민을 거듭해 왔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거품붕괴 뒤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일본,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사회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로 생산력이 늘면서 과거 8시간 일해야 했던 것이 4시간이면 해결된다.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제조업 등에서 떨어져 나온 근로자들이 생산성이 낮은 업종으로 몰리면서, 그들의 소득 수준은 더 떨어지게 된다. 이처럼 고용의 질이 악화되면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고용의 양과 질의 괴리가 심하다. 하지만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되고 근로빈곤층이 양산됨에 따라 오히려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허나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에 관심이 없다. 파트타임·파견근로·기간제 등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고용의 양과 질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대학을 마치고도 매달 70만 명의 젊은이가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일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다 .고용의 질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고용의 양도 늘리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참가율?실업률?고용률 등은 고용의 양에, 고용안정?임금?노동시간?산업재해?만족도?노사관계?사회보장 등은 고용의 질에 해당한다. 개별 지표들만 봐도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양과 질 모두에서 ‘최악의 상황’이다. 경제활동참가율은 6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가운데 25위고, 고용률은 62.9%로 20위다. 실업률은 3.8%로 2위지만 이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노동자들이 비경제활동인구로 집계되기 때문에 실제 실업률은 이를 상회한다. 고용의 질 분야는 더 최악이다.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 비율은 16.5%에 불과해 23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비정규직 분야를 보면, 임시직 비율은 21.3%로 26개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높다. 종합해보면 한국은 근속연수든 비정규직 기준이든 회원국 가운데 가장 고용이 불안정한 나라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덴마크 모델은 눈여겨 볼만하다. 덴마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소득의 안정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연안정성이란 기업에게 해고와 채용의 유연성을 줌으로써 경쟁력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사회안전망과 직업훈련 등을 통해 소득과 고용의 안정성을 제공해줌으로써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의미한다. 덴마크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근로자에 대한 교육 및 직업훈련에 중점을 두어 중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고율의 세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으로 실업자에 대한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제공한다.

물론 이 같은 덴마크 모델이 도입된다고 하더라고 우리나라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해고규제 완화는 지속적으로 근로자들의 직장안정성을 저해하는 반면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가 실업급여 확대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확대 등에 의해 보상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직장안정성은 노동자들에게 있어 우선순위를 지니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정부나 기업에서는 항상 유연성이 우선 목표이고 안정성은 부차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일방적 손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우리가 덴마크 모델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유연성보다는 안정성이며, 최소한의 안정성이 구축되지 못한 상태에서 유연안정성은 허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의 관건은 현재까지 유연화된 다수를 지탱해낼 만큼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고용은 합법적 권리다. 그만큼 국가는 근로자의 고용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