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의 정파성이 가져온 방송환경의 파괴

[사설] 방통위의 정파성이 가져온 방송환경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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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는 “디지털기술 등의 발전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며, 방송과 통신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 국민들이 보다 풍요로운 방송통신융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치된 합의제 행정기구”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1기 방통위의 활동을 돌이켜 보면 방통위의 설립취지는 명목만 그럴싸할 뿐, 과연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구로 어떤 활동을 보였는지는 의심스럽기만 하다.

 

1기 방통위가 들어서고 가장 먼저 집중했던 일은 날치기 처리된 미디어법에 따라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허가하는 것이었다. 방통위는 헌법재판소에서 미디어법 강행에 대한 적법성 판결을 내리는 것마저 기다리지 않고 종합편성채널 사업을 기정사실화했다. 종합편성채널은 사실상 신문재벌과 대기업의 방송참여를 제도화한 것으로 ‘공공성과 공익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할 방통위로서는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될 사업이었다. 그러나 종편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을 통해 방통위는 이미 방송매체를 활용해서 보수진영의 선전을 강화하고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데 도구로 변질됐음을 보여줬다. 그 결과, 방통위는 포화상태인 방송시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시장독과점적 신문사업자들을 네 곳이나 종편사업자로 선정함으로써 대다수의 케이블 PP들과 중소규모 지상파 방송사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했다. 애초 종편의 가치로 내세웠던 공익성, 공정성, 시청자 권익 등이 공염불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방통위가 내팽개친 가치는 또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실천하는 무료 보편적 시청권이 그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공공자산인 주파수를 이용해 국민 모두에게 무료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전파법을 개정해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주파수를 회수하는 방침을 합법화했다. 방송사업을 운영하는 주체들이 ‘난시청 해소·차세대 방송기술 등을 고려했을 때 주파수 재배치는 디지털 전환 이후에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소리높여 봤지만 방통위는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 중에 지난 9월에는 케이블SO들이 지상파 TV에 대한 재송신 비용 지불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미 법원에서 케이블SO에게 정당한 재송신 비용을 지불할 것이 판결된 사안에 대해 방통위는 ‘의무재송신 확대’ 등 유료방송계의 입맛에 맞는 정책만을 일관되게 강요했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방통위가 법리적인 판단까지 무시하면서 무료 보편적 시청권을 파괴하고 나선 행태다.

 

방통위가 이처럼 눈앞에 놓인 이익에 급급하는 동안 방송시장은 점점 피폐해져 가고, 이제 미래 방송시장을 개척할 새로운 방송기술들마저 사장될 위기에 처하고 있다. 디지털 방송기술을 활용해 시청자들에게 무료 다채널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일찍이 2006년에 실시했던 지상파 MMS는 2년 이상 방통위의 냉대를 받았다. 지난해 말 지상파 수신환경 개선사업이 발표되면서 지상파 MMS는 다시 한번 힘을 받는가 했으나, 유료방송계가 격렬히 반대하고 나서자 방통위는 또 다시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변해버렸다. 반면, 방통위는 아직 기술표준을 협의하는 단계에 불과하며 보편적 서비스 가능 여부도 불투명한 3DTV를 지상파를 통해 추진할 계획을 세웠다. 지상파를 통한 3DTV 서비스는 장기적으로 별도의 주파수나 MMS 서비스를 근간으로 이뤄져야할 기술이나 방통위는 ‘아날로그 방송 주파수는 회수, 지상파 MMS는 계획없음’을 표방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월 말이면 2기 방통위가 출범될 예정이다. 그러나 2기 방통위는 시기적으로 대선 및 총선과 엮여 있기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보다 1기 방통위가 벌여놓은 사업을 마무리 하는 역할 밖에 못 미칠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직속 합의제 기구’라는 정파성을 배제할 수 없는 체제의 근본적인 한계는 스마트·뉴미디어 시대의 비전을 판가름할 핵심적인 방송정책을 정략적으로 활용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있다. 1기 방통위의 무리수는 이 정파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방통위에게 방송시장을 향한 최소한의 순수한 양심을 바라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바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파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통위의 한계가 아쉬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