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비 국산화 정책,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우선이다

[사설] 방송장비 국산화 정책,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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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이 디지털화되면서 방송장비 국산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영화 아바타에서 시작된 열풍으로 3D 콘텐츠와 관련 H/W 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와 정책 지원의지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3D 콘텐츠 국산화에 대한 열기 못지않게 디지털 방송장비 국산화에 대한 경쟁 또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동안 몇 차례 있었던 방송장비 국산화 사업은 후유증만 남긴 채 실패했었다. 실패 원인이 객관적으로 지적된 것은 다음과 같다. ①외산 방송장비와 비교해 안정성, 신뢰성 등 품질이 상당히 떨어진다. ②장비제조업체가 영세해 품질향상 한계 및 지속적인 A/S 위험성이 크다. ③저급한 품질로 인해 방송사의 미 채택, 업체 부도의 악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95년 CATV 공식 출범을 계기로 정부의 정책의지에 따라 국내 대기업을 비롯한 많은 방송장비 업체들이 장비 국산화 사업에 뛰어 들었지만,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기보다는 외국 제품을 그대로 들여와 조립해서 방송사에 납품했고, 정부의 국산장비 구매 정책에 따라 방송사들은 일정 비율의 장비를 구매했다. 이후 불어 닥친 IMF 경제 위기, CATV의 부진 등으로 대기업들은 장비국산화 사업에서 철수했고 상당수의 중소기업들은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유증은 국산장비를 구매했던 방송사들이 모두 감당해야 했다. 외국 유명 업체의 장비를 모듈 단위로 들여와 단순 조립한 장비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1~2년 사용했음에도 성능이 현격하게 떨어져 현업에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대체 장비를 다시 구매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작년에 지식경제부 중심으로 다시 시작한 방송장비 국산화 정책 추진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방송기술이 디지털화되면서 품질수준을 기술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날로그 때 보다는 훨씬 더 용이해졌다. 또 방통융합에 따라 그 동안 발전한 IT기술이 방송기술의 밑바탕이 되면서 외국과의 기술 격차도 현격하게 줄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방송사들도 이전과는 달리 이번 국산화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할거라는데 공감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방송사에 대한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도 상존하고 있다. 일부에선 장비제조업체에서 발로된 문제점에서 시작된 방송사의 부정적인 인식을 제도적으로 바꿔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주로 생방송을 하는 방송사의 생명은 방송장비의 안정성 및 신뢰성이다. 이를 무시하고 방송사의 재허가 평가 시 국산장비 채택률을 점수로 환산해 산입하겠다고 발상하는 자체는 무리한 접근방법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와 방송사 내부에서 조차 방송사고에 대한 사회적 영향과 파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엄격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국산장비를 무리하게 구매토록 강제하겠다는 것이야 말로 탁상공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방송사들이 국산화 정책에 참여해 사업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우리 연합회가 방송장비의 해외 진출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런 발상은 이 사업 자체를 또 다시 실패로 몰아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만족할만한 품질에 이르지 못한 장비를 무리하게 현장에 투입할 것이 아니라 엄격한 현장 검증과 보완과정을 거쳐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보다 힘을 쏟아야 한다. 처음부터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킬 소지는 아예 없애고 가는 것이 사업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파방송사의 현업자가 만족하지 못하는 방송장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장비를 어떻게 구매토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안정성과 신뢰성을 갖춘 좋은 장비를 만들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