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 법안, 8월에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사설] 미디어렙 법안, 8월에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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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온 돌’이 맨날 ‘박힌 돌’ 빼는것은 아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굴러 들어온 돌이 가만히 뿌리내리고 있는 박힌 돌을 쳐 낸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장사 잘하고 있는 가게 앞에 새로운 가게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이런 표현을 곧잘 사용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속담집에도 실려있는 이 유명한 속담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굴러온 돌’ 입장에서야 자기 나름대로의 ‘신호탄’이겠지만 ‘박힌 돌’ 입장에서는 ‘타의로 인한 퇴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 ‘박힌 돌’이 잘 빠지도록 누군가 마구 흔들어 놓았다면 어떨까. 그리고 ‘굴러온 돌’이 더 세게 구를 수 있도록 누군가 힘껏 밀어 주었다면? 그건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믿음으로 자리하던 ‘박힌 돌’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억울한 것이 없고 ‘굴러온 돌’ 입장에는 비겁한 승리일 뿐이다. 속담으로도 곤란하다.

종편 몰아주기의 첫 단계가 미디어렙 법안 막기인가.
지금 미디어렙 법안을 둘러싸고 지상파와 종편의 상황이 딱 이렇다.
지상파는 다들 짐작하는 대로 ‘박힌 돌’이다.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의 강자이자 오랜 세월 방송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지금까지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그리고 종편은 당연히 ‘굴러온 돌’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신문 사업자에서 방송 사업자로 변신하려는 그들은 ‘굴러온 돌’로서 ‘박힌 돌’에 도전하고 있다. 이까지는 좋다. ‘박힌 돌’ 입장에서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더욱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경쟁력을 키워가면 되고 ‘굴러온 돌’은 애초 굴러올 필요도 없었지만, 이왕 굴러온 거 자신의 힘을 길러 ‘박힌 돌’과 정당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미디어렙 법안이다.
6월 국회 당시 미디어렙 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그대로 좌초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가벼운 법인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11월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광고독점판매체제에 대한 헌법 불일치 판결을 내리며 2009년까지 반드시 대체 법안을 제정하라고 못 박은 적이 있으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법안’에도 당당히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로 지금은 2011년이다.
그런데 이렇게 향후 방송시장의 향배를 가를 중요한 법안인 미디어렙 법이 6월에 좌초되어 버린 것이다. 이게 과연 가당키나 할 일인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여당인 한나라당은 종편 사업자들의 광고 직접 영업을 지지하며 다른 케이블 PP처럼 종편도 미디어렙에서 열외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아예 대놓고 ‘굴러온 돌’이 더욱 잘 굴러가도록 뒤에서 불도저로 밀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다.
방통위는 정부기관으로서 방송 사업자간의 합리적인 조정을 통해 갈등이 잘 해결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조장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그 일례가 바로 ‘종편 특혜’논란이다.
방통위는 향후 지상파의 영향력을 넘볼 수준의 종편 사업자에게 각종 특혜를 주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종편은 지상파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는 받지 않으며 국내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지상파는 60~80%, 종편은 20~50%), 외주제작프로그램 편성비율(지상파는 40%이내, 종편은 주시청시간대에 한해 15%이내) 등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이렇게 대놓고 종편 사업자에게 특혜를 안겨주니 광고이익이 걸린 미디어렙 법안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현행 방송법 틀 안에서 허용한 것"이라거나 "종편은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일 뿐"이라며 과거 만들어진 허술한 규제공백 상태를 눈감아주는 방통위는 과연 중립자로서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묻고 싶다.

8월 임시국회, 미디어렙 법안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이렇게 미디어렙 법이 표류하는 동안 종편 사업자들은 슬며시 광고 직접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2011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종편 방송이 시작된다는 가정 하에 미디어렙 법안이 8월에도 통과되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자연스럽게 광고 시장이 가열양상으로 치닫고 지상파를 비롯한 모든 방송사들이 생존을 위해 이전투구를 할 가능성도 높다. 아마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면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보도, 뉴스만 경쟁적으로 내보낼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최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미디어 관련 법안을 모두 처리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물론 그대로 믿을 수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쉽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향후 건전하고 이성적인 방송 환경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있다면 정부와 여당은 8월에 반드시 미디어렙 법안을 완료해야 한다.
박힌 돌에게 굴러온 돌이 부딪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박힌 돌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자신이 살아온 대지에 사랑 받는다면, 굳이 빠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리한 방법으로 굴러온 돌이 억지로 박힌 돌을 빼내려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잘못 된 일이다.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승부를 막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8월 미디어렙 법안 처리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렙 법안에 있어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 적용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