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떠버린 700MHz 주파수

[분석] 공중에 떠버린 700MHz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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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최진홍) 방송과 통신의 할당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700MHz 대역 주파수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국가 재난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해당 주파수를 둘러싼 복마전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당초 700MHz 대역 주파수는 방송이 활용하던 영역이었다. 하지만 2012년 12월 31일 전국 지상파 디지털 전환을 계기로 해당 주파수 활용은 일종의 여지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방송은 자신들이 쓰던 700MHz 대역 주파수 108MHz 폭을 지상파 UHD에 활용해 무료 보편적 뉴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통신은 모바일 트래픽 해소를 이유로 해당 주파수 할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난타전이었다. 방송과 통신은 각각의 주장을 강조하며 해당 주파수 할당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다만 무제한 데이터 요금 및 모바일 IPTV 확충을 통해 주파수를 필요 이상으로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는 통신보다, 해당 주파수가 없으면 새로운 방송기술의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는 UHD를 접을 수 밖에 없다고 맞서는 방송의 처지가 더욱 절박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판단은 달랐다. 특히 정보통신부 시절부터 통신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비판을 받던 구 방송통신위원회는 최시중 위원장 시절 700MHz 대역 주파수 108MHz 폭 중 상하위 40MHz 폭을 전체회의를 통해 전격적으로 통신에 할당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방통위의 판단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40MHz 폭을 통신에 할당하고 나머지는 추후 할당을 검토하겠다는 전제를 깔긴 했으나, 20MHz 폭을 해당 주파수 상하위에 위치시킨 것은 사실상 전체 대역을 통신에 주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전파의 간섭을 고려하면 40MHz 폭 주변의 보호대역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기술적인 면을 감안하면 ‘통째로 40MHz 폭’을 할당하는 것과 ‘상하위로 나눠서’ 할당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이후 최시중 위원장은 전체회의가 종료된 일주일 후 자신의 비리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렬히’ 사퇴한다. 그리고 약 두 달후, 방통위는 해당 주파수의 통신 할당을 국제적인 흐름으로 포장하기 위해 WRC-12 왜곡 보도자료 파문을 일으키며 무리수를 연발한다.

이후 정권이 바뀌며 미래창조과학부가 탄생했다. 미래부는 주파수 공동 연구반을 운용하긴 했지만, 주파수 수급에 있어 기본적으로 구 방통위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미래부는 700MHz 대역 주파수의 통신 할당 로드맵을 포함한 구 방통위의 모바일 광개토 플랜 1.0을 더욱 가다듬어 2.0 버전을 확정했고, 여전히 700MHz 대역 주파수 상하위 40MHz 폭을 통신에 할당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서 방송쪽 인사들이 해당 주파수 상하위 40MHz 폭 통신 할당은 방통위원장 고시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점을 피력했으나 모조리 무시당했다. 해당 주파수를 둘러싼 논리전쟁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잔뜩 낮은 자세로) 지상파가 야심차게 발표한 국민행복 700 플랜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 국가 재난망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미래부는 전권을 부여받아 10년 넘게 표류하던 국가 재난망 구축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국가 재난망을 700MHz 대역 주파수에서 구축하자는 논의가 나오며 상황은 고차 방정식이 되어 갔다.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700MHz 대역 주파수의 상하위 40MHz 폭을 인정한 상황에서 국가 재난망을 포함시키면 전파간섭 및 보호대역 설정을 제외하면 해당 주파수는 ‘국가 재난망+통신’의 대역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는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에 포함된 700MHz 대역 주파수 상하위 통신 할당을 전면 무효화하고 해당 대역을 ‘방송+국가 재난망’으로 삼자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재 미래부는 LTE 중심의 통합 안전공공망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여러 가지 논의를 수렴하고 있다.

통신의 해당 주파수 글로벌 활용설이 허구로 드러나고, 무제한 요금제 및 모바일 IPTV 확충으로 본 통신의 주파수 수급이 예상외로 원활하다는 전제를 감안했을때 700MHz 대역 주파수의 주인은 방송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국가 재난망이 어떻게 구축되어야 하는가는 몇 가지 대안이 있다. 서두에서 설명했지만, 우선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을 수정해 700MHz 대역 주파수의 상하위 통신 할당을 폐기하고 해당 대역을 ‘방송+국가 재난망’으로 묶는 방법이다. 어차피 해당 주파수의 통신 할당은 법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에 의외로 간단하게 추진할 수 있는 대안이다. 통신의 로비력 및 구 정통부의 ‘라인’과 같은 정무적인 판단만 배제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제4이통사에 도전한 KMI가 국가 재난망을 맡는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 700MHz 대역 주파수가 아니라 2.5GHz 대역 주파수가 국가 재난망으로 활용될 것이다. 해당 주파수 대역은 미래부가 와이브로와 LTE-TDD 중 하나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설정했으며, KMI는 LTE-TDD를 주력으로 삼는다고 한다. LTE-TDD와 호환이 잘되는 와이브로 대역인 2.3GHz 대역과 더불어 여러 가지 여지가 있다. 다만 KMI가 국가 재난망 구축사업을 실시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 있느냐는 변수가 될 것이다.

최근 김재홍 방통위 상임위원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지상파에 700MHz 대역 주파수를 주자고 했던 전임 양문석 상임위원과는 생각이 다르다”며 “해당 대역은 국가 재난망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사실상 김 상임위원은 통신에 40MHz 폭을 할당한 상황에서 국가 재난망을 구축하자는 뜻으로 보인다. 방송을 배제하자는 뜻이다. 방송의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기관’인 방통위, 그것도 ‘야당’ 상임위원의 인식이라고 보기에는 처참한 수준이다. 국가 재난망을 살리는 방향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우선에 두는 가치판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