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을 위하여

[기고]지역방송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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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방송을 위하여


정상윤/한국방송학회 지역방송특별위원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권력과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에 없는 것이 있다면? 정답은 ‘지역방송’이다. 수도권은 한국사회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역’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힘들고, 방송 또한 수도권의 지역방송이 아니라 한국의 중앙방송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수도권을 중심으로 볼 때 ‘지역’과 ‘지역방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도권의 시각에서 ‘지역’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방송에서 찾아보자. 방송에서 ‘지역’은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쉴 수 있는 곳, 푸근한 인심과 더불어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 그러나 간혹 사건, 사고가 발생하여 전 국민을 놀라게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은 국민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한가한 곳도, 수시로 대형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무법천지도 아니다. ‘지역’은 사람들이 생존하는 삶의 기반이며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 곳에는 여론이 있고, 갈등이 존재하며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지역방송은 주민들 삶의 기반을 건실하게 만들어주는 소통 기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방송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역사회를 지탱해주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약화될 수밖에 없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지역방송은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소통 기구이며,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가 올바르게 성숙되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역방송은 이러한 원론적인 존재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역방송의 생존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경제규모가 협소하고, 주민들의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미약한 편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지역방송과 수도권 방송 사이의 종속적 구조는 지역방송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방송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인 시장, 경쟁, 효율성의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경쟁과 효율이라는 가치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경쟁’이라는 가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지역방송이 아직 다른 매체들과 경쟁할만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데 있다. 특히 지역방송은 중앙집권적 한국사회의 구조가 낳은 모순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 지역방송이 현재와 같은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지역방송이 다른 매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와 상황을 만드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편 또 다른 측면에서 최근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따라 지역방송의 정체성과 관련된 주장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지역방송은 오랫동안 수도권에 있는 중앙방송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을 전송하는 중계방송으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생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다양한 뉴 미디어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지역방송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수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역방송을 우회하여 전국적인 방송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선택하여 시청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지역방송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해왔던 배타적 방송권역이 상실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방송은 중앙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의 전송로 역할을 벗어나서 새로운 역할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 지역방송 종사자, 주민들 모두가 지역방송에 대한 기존 인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새롭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지역방송이 주민과 지역사회의 방송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는 독자적인 커뮤니케이션 기구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순하게 시혜적인 성격으로 지역방송 정책을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지역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활성화하는 것을 정책의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지역시장 규모의 협소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시장실패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주의에 입각한 공적 개입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광고연계판매 역시 지역방송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즉 광고의 연계판매는 지역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역방송 콘텐츠 제작 지원과 더불어 프로그램 포맷 개발 지원 등 다양한 지원정책을 마련하여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방송사에 의무적으로 부과되고 있는 방송발전기금 징수율을 대폭 낮추든가, 아니면 지역방송사로부터 거두어들인 방송발전기금은 지역방송 활성화를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한편 지역방송사로서도 새롭게 태어난다는 각오로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발생한 사회적 문제들을 의제화하기 위한 저널리즘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소통 기구로서의 역할에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시민단체와 지역방송사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전북, 대전, 광주, 부산 등에서 가칭 지역미디어공공성위원회를 설립하거나 이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지역방송과 시민단체가 함께 지역사회의 미디어의제를 전국화하고 목소리를 모아내는 창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에 있는 방송사와 지역방송사 간의 종속적 관계를 개선하고 상생구조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논의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흔히 웹 2.0은 개방, 참여, 공유를 특징으로 한다. 기존 언론에서의 권력은 언론사가 독점할수록 그 힘을 발휘했다면, 뉴 미디어 환경에서는 수용자들과 권력을 나눌수록 그 힘이 커지는 새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웹 2.0시대의 지역방송은 주민들의 참여와 개방을 토대로 하여 심리적 근접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지역사회의 핵심적인 정보문화센터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방송사의 노력과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을 때 수도권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의 왜곡된 지역방송 모습이 교정될 수 잇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