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전숙희 기자]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들이 있다. 전기와 수도, 도시가스, 대중교통 등과 같은 공공요금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는 어떤 사람이 이것을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소비할 기회가 줄어들지만 이 같은 공공재는 서로 경합할 필요가 없다. 지상파방송도 이런 공공재의 속성과 맥을 같이 한다. 누구나 ‘안테나’만 달면 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안테나’라는 변수가 있다. 시청자들은 TV와 별도로 안테나를 구입해야만 한다. 최소 6,000원에서 최대 40,000원에 이르는 안테나를 구입한 뒤 설치해야 한다. TV만 구입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어렵지는 않지만 분명 번거로운 절차다. ‘손바닥 보다 작은 스마트폰에는 들어있는 안테나가 왜 커다란 TV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안테나 내장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TV의 정의를 보면 ‘전기 신호가 닿는 곳이면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라고 돼 있는데 코드만 꽂아서는 방송을 볼 수가 없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미적거리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TV에는 안테나가 내장돼 있어야 한다고 정의를 내리면 되는 일이지 않나.”
최근 열린 몇몇 토론회에서 연이어 제기된 의견이다. 지상파 초고화질(UHD) 본방송을 앞두고 안테나 내장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지상파 방송사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지상파 UHD 방송은 HD 방송에 비해 실내 수신이 양호하기 때문에 안테나 내장만 이뤄지면 직접 수신의 확대 가능성이 높다”며 안테나 내장을 주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지상파 UHD 방송은 DMB 방송과 흡사한데 수신율이 높기 때문에 안테나 내장만으로도 선명한 4K 화면을 수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건물 내에서도 수신이 잘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안테나를 내장한다고 해서 방송을 무조건 수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상파UHD코리아 등에서는 지상파 UHD 수신 안테나 시범 시연을 여러 차례 보인 바 있다. 10월 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지상파 UHD 방송, 시청권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안’ 세미나에서도 안테나가 내장된 UHD TV 시연이 진행됐다.
한석현 서울YMCA 팀장은 “목동에서 가능하다는 건 서울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것 아니냐”며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되는데 왜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팀장은 “지상파 UHD 본방송이 5개월 정도 남았는데 이런 토론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미래부나 방통위에서 명확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결정해주지 않는다고 가전사에서 가만히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은 장착형 안테나와 내장형 안테나를 대안으로 내놓은 상태다. 장착형 안테나는 전원의 코드에 안테나를 장착하는 방법으로 TV 생산 시스템에 별도의 설계 변경이 필요치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전원에 안테나를 내장하는 만큼 안정성 문제에 대한 검증이 요구되지만 별도의 생산 라인을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 내장형 안테나는 스마트폰처럼 본체에 안테나를 장착하는 방법으로 외관상 보기가 좋고 소비자가 이용하기에 편하겠지만 기술적으로 좀 더 세밀함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방통위는 가전사에 UHD TV의 안테나 장착 및 내장 등과 관련해 의견 제출을 요청한 상태다.
이에 대해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TV 제조사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에 따라 지상파 UHD 방송의 수신 환경 개선이 극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있고 험난한 여정을 가야할 수도 있다”며 “만약 가전사들이 안테나 내장에 소극적이라면 가전사와 지상파 방송사가 안테나 제작 및 판매를 위한 공동 법인을 설립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시청자들을 대표해 참석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보다 강한 목소리를 냈다.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위원은 “(안테나 내장 문제는) 각각의 사업자들이 조율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또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의 문제”라고 비판했고,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시청자는 지상파, 케이블, 인터넷TV(IPTV) 중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 당시 논의된 난시청, 공시청, 안테나 문제를 아직까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시청자들은 고화질, 고음질을 위한 UHD 전환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며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가 직접 수신으로 유료방송을 선택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정책적 판단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대다수는 미래부와 방통위 등 정책당국의 무책임함을 놓고 공통적으로 쓴소리를 냈다. 이들은 “정부가 시청자들의 선택이라고 말 해놓고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무기력하고 무책임함 드러내는 것”이라며 “지상파 UHD 방송의 성공에 대한 정책적 의지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