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 이야기

MAM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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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방송국에 첫발을 디디던 90년대 초에는 1인치 비디오 테입 레코더가 주력 기종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녹화실(錄畵室)은 엄청난 설비와 근무기강이 있었다. 일단 소리로 기를 죽인다. ‘위~~잉’, ‘푸~~쉬’, ‘따~~악’ 하는 소리를 내질러서 왠지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었으며, 외부와의 소통도 칙칙거리는 인터컴 또는 장례식장 영정사진 프레임만한 창문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스튜디오 출연자, 카메라맨, 성우, 음향ㆍ효과, 그리고 부조정실 스탭들의 지지고 볶는 한판이 끝나면 완성된 마스터 테입이 창문을 통해 출고되고, 이것을 송출실에 가져가서 방송을 내보냈던 것 같다. 당시의 VTR은 편집이 매우 까다로웠으며, 잘 안되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하는 구조였다. 자연스럽게 녹화실은 스튜디오와 부조정실의 최종단(最終端)으로써 콘텐츠 프로세싱이 집중되던 곳이었다.

하프(1/2)인치 베타캠의 보급은 제작 프로세스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ENG촬영과 1:1편집기를 사용한 가(假)편집 과정이 확산되었다. 또한 화려한 디지털 비디오 효과기(DVE)로 무장한 종합편집실이 콘텐츠 프로세싱의 중심으로 부상하여, 현재까지 굳건하게 테입기반 제작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다. 영상 포맷이 아날로그 → 디지털(SD) → HD로 변천을 겪었지만 워크플로우는 그대로이다.

 

테입리스카메라, NLE, 비디오서버 등 날마다 새로운 장비가 출시되어 파일기반 제작환경으로 변해가는 지금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바로 콘텐츠를 담아 옮기는 저장 미디어의 무형화(無形化)이다. 지금까지 사용된 테입을 살펴보면 단단한 케이스에 눈에 잘 띄는 라벨을 달고 있으며, 손잡이가 있거나 손으로 잡기 좋은 구조이다. 즉 콘텐츠와 저장 미디어가 일체이니 손으로 나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파일기반 제작 시스템의 콘텐츠는 스토리지에 저장되어 손으로 나를 수 없다. 라벨을 붙일 수도 없다. 물론 21세기를 사는 디지털 신인류답게 USB, 외장하드, 웹하드, 네트워크공유 등 여러가지 신공(神工)을 사용하여 문제 해결에 나선다. 한두번은 정신 바짝 차리고 복사신공을 펼쳐보지만 숫자가 늘어 갈수록 불안해진다. 용량도 계속 늘어나서 언제까지 보관해야 하는지 골치가 아프다. ‘아! 드디어 새로운 뭔가가 필요한 시기이구나!’ 라고 느낀다.

 

MAM(=CMS, =DAM)이라 불리는 솔루션이 등장하여 콘텐츠 관리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Media Asset Management(Content Management System, Digital Asset Management)는 디지털 자산의 획득(Acquisition/Ingest), 제작(Content Processing), 배급(Distribution /Delivery) 과정에서 유기적인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다.

먼저 여기에서 사용되는 자산(Asset)의 개념을 살펴보면 "자산(Asset) = 콘텐츠 + 사용권리(Right)"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즉 사용권을 가진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콘텐츠는 에센스(Essence)와 메타데이터(Metadata)로 구성된다. 에센스는 시청자에게 보내고자하는 영상, 음향 등 필수 데이터이고, 메타데이터는 에센스 데이터를 표시하거나 콘트롤하기 위한 데이터이다. 예를 들면 한권의 책에서 본문은 에센스이고, 머리말, 저자소개, 목차, 페이지, 찾아보기 등은 메타데이터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방송콘텐츠의 메타데이터는 타이틀, 에피소드, 제작진, 저작권, 방영일자, 촬영일자, 배포, 매체, 식별기호 등 관련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MAM 시스템의 코드체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콘텐츠 획득(Acquisition/Ingest) 과정에서 생성되거나, 콘텐츠와 연결(mapping)하기위해 미리 만들어둔 메타데이터가 콘텐츠 프로세싱, 배급, 아카이브, 재활용 작업의 기준이 된다.

 

메타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은 더블린코어(Dublin Core)이다. 더블린코어는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시 워크샵에서 기존의 도서관에서 사용하던 체계를 발전시켜 정보자원의 효율적인 탐색 도구로서 제안되었고, DCMI(Dublin Core Metadata Initiative) 활동을 통해 더욱 확장 또는 단순화시켜 모든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메타데이터 서술(description)표준이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EC JTC-1 산하의 멀티미디어 표준화 활동을 살펴보면, MPEG 1에서 MPEG 4까지는 에센스 데이터의 부호화와 압축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MPEG-7, MPEG-21은 메타데이터에 대한 분야로 확장하고, 콘텐츠의 제작, 유통, 보안까지 포괄하는 표준이다. 또한 EBU(European Broadcasting Union)산하 프로젝트그룹의 P/META표준, SMPTE(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표준 등이 있는데 각 방송사의 상황에 맞게 선택해서 사용할 일이다. 다만 시스템 내부 또는 외부 호환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MAM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압축 코덱(Codec)이다. 대역폭이 1.5GBps에 달하는 HD영상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네트워크로 전송하기는 버거우므로 데이터의 압축은 피할 수 없다. 음성/영상신호를 디지털신호로 바꿔주는 Coder와 반대작용을 하는 Decoder의 합성어인 코덱은 파일기반 제작 시스템의 워크플로우 개선을 위해 중요한 선택지이다. 하지만 방송장비 제조사는 코덱을 핵심 기술이자 비즈니스 기회로 여기므로, 대부분의 업체는 Native 코덱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워크플로우 전과정 장비에 적용 가능하고, 사용자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공개 코덱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방법은 전 과정을 동일업체 제품으로 사용하거나, 중간에 변환과정을 거쳐야한다.

XDCAM HD 422(Sony), AVC Intra(Panasonic), JPEG-2000(Thomson Grass Valley)등이 전과정 HD코덱으로 경쟁하고 있으며, NLE 분야에서는 DnxHD(Avid), Prores422(Apple)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압축율과 화질은 이율배반(Trade-off)관계이므로, 콘텐츠 획득, 프로세싱, 분배 과정을 모두 만족시키는 코덱은 찾기 어려우며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여야한다.

 

MAM 시스템은 급변하는 방송환경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호천사가 될 것인가? 현재 작업환경을 이해하고 다가올 변화를 잘 반영한 시스템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방송기술과 IT기술의 조화가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 복잡한 방송환경에 적합하게 잘 설계되고, 사용자 편의를 극대화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시스템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며, 믿음을 견실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