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보도 영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다

[KOBA] 드론, 보도 영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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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녈=이종혁 MBC 뉴스콘텐츠취재 1부 차장] 첫 실전 비행의 짜릿함과 첫 추락의 아찔함은 함께였다. 2013년 1월, 서해 대이작도 앞바다, 썰물 때면 홀연히 나타나는 직선 길이 3km에 이르는 넓은 모래섬, ‘풀등’을 촬영하기 위해 DJI의 S800을 들고 출장을 갔다. 출장 전 많은 연습으로 비행은 익숙해져 있었다. 겨울 바다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바람은 잔잔했고 햇볕은 따뜻했다. 축구장 몇십 개에 달하는 넓은 곳에 장애물도 없었다. 비행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거칠 것 없는 비행 후 마지막 남은 1팩의 배터리. 그때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좀 더 좋은 영상을 얻기 위한 욕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당시 1000만 원이 넘었던 드론은 조종 신호에 따라 유유히 서해 앞바다로 나아가다 배터리가 기체에서 분리되면서 추락했다.

[그림 1] 배터리 추락 장면

추락의 아픔을 안겨준 드론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2012년 9월 구미의 한 공단에서 발생한 불화수소산 누출 사고 때문이었다. 근로자 5명이 사망하고 인근 주민 등 1만 1000여 명이 치료를 받은 큰 사고였다. 주변 농작물도 불화수소산 누출로 인해 누렇게 말라 죽었다. 유독물질인 불화수소산 노출에 대한 우려로 취재진의 현장 접근은 허락되지 않았다.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 현장을 영상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고 부서에서 드론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드론은 보도 영상에서는 생소한 존재였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드론은 없었고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외주 업체에 의뢰해 드론 촬영을 하던 때였다. 그래서 사고 발생 후 급히 외주 업체를 섭외해 피해 지역을 촬영했다. 결과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선, 단 몇 초 안에 몇백 미터 상공까지 도달해 부감 촬영의 소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부감을 찍기 위해 장소를 섭외하고 건물에 올라가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어 진 것이다. 또한, 접근이 불가능해 취재진이 ENG로 촬영할 수 없는 사고 현장을 드론을 보내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드론으로 인해 다양한 카메라 워킹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급박하게 취재가 이뤄지는 사고 현장에서 트랙킹(Tracking), 달리(Dolly), 붐(Boom), 아킹(Arcing) 등 많은 시간, 장비, 인력이 요구되는 카메라 워킹은 원맨 시스템 위주인 보도 영상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드론 한 대만 있으면 촌각을 다투는 현장에서 기존 보도 영상이 가지고 있는 단조로움을 벗어나 다양한 워킹으로 피사체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드론의 장점으로 인해 몇 백 미터 상공에서 사고 난 공장과 주변 피해 마을을 부감으로 촬영해 피해 규모를 담았고 이후 저공비행으로 누렇게 말라죽은 농작물 위를 훑으며 피해의 심각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촬영 시간은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드론으로 인해 평면적이고 단조로웠던 보도 영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입체적으로 피사체를 표현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이해도와 몰입도가 높은 보도 영상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드론 영상을 본 회사에서 즉시 드론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지금껏 수백 번에 걸쳐 사건·사고 현장과 기획 리포트 등에 드론을 활용해 왔다. 첫 실전 비행에서 겪은 뼈아픈 첫 추락으로 인해 매번 추락에 대한 부담과 경위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비행을 해 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취재 현장에서 항상 안전을 최우선시하게 된다.

무너진 터널, 그 안에 생존자가 있다. 구조대는 터널 내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드론을 투입한다. 뒤따라 취재를 위한 십여 대의 드론이 경쟁적으로 이륙 후 무너진 터널 속으로 향한다. 일부 드론은 터널 벽에 부딪히고 나머지는 터널 내부 진입 후 신호가 끊겨 모두 추락하고 만다. 하정우 주연의 재난 영화 ‘터널’ 속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언급한 이유는 영화와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2] 영화 ‘터널’ 속 취재진의 드론

일례로 2015년 2월 인천 영종대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로 인해 100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긴급한 상황 속 많은 방송사가 드론을 가지고 현장에 도착했다. 짙은 안개 때문인지 콤파스와 GPS 오류가 발생했다. 비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한 방송사의 드론은 이륙 후 제어 불가 상태가 돼 버렸다. 사고 현장에 추락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 그 드론은 사고 현장 위로 추락하지 않고 짙은 안개를 뚫고 저멀리 인천 앞 바다 어딘가로 종적을 감춰버렸다.

이외에도 치열한 취재 경쟁 속 안전은 무시된 채 드론으로 영상 취재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기적으로 기체 점검과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비행 전 체크리스트도 활용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취재 현장에서 부주의로 인해 인명이나 재산 사고가 발생한다. 안전이 담보된 상황에서의 비행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드론이 지닌 수많은 장점과 가능성은 퇴색되고 말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드론은 점점 소형화, 간편화하고 가격은 저렴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 속 국내 드론 산업은 2016년 신고 드론 기체가 2천172대에서 2018년 7천177대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드론 조종 자격 취득자는 1천326에서 1만5천671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점차 드론이 대중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대중화의 바람은 사내에도 불었다. 처음 드론을 도입했을 당시만 해도 한두 대의 드론을 두세 명의 전담 인력이 운용해 왔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보유 중인 드론의 수도 십여 대로 늘었고 부서원 대부분이 수많은 취재 현장에서 드론을 사용하는 환경이 됐다.

드론의 수와 사용자의 증가뿐 아니라 드론의 활용 분야도 방송에만 국한되지 않고 점차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환경 조사, 재난·재해 수색, 경계·감시, 시설물 점검·관리, 교통 관리, 산림 재난 대응, 농업 방제, 지형 정보 조사 등 다방면으로 드론을 활용하고 있다. 드론의 쓰임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앞서 언급한 것보다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돼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다른 분야는 차지하고 영상 촬영에만 국한하더라도 드론의 새로운 기술은 보도 영상의 패러다임을 많은 부분 변화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지금껏 드론 카메라는 대부분 광각 단렌즈였다.(물론 자체적으로 짐벌에 핸디캠을 달아 줌을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줌 기능을 장착한 드론이 상용화됐다. 광각렌즈는 피사체를 다양한 컷 사이즈로 표현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줌 기능이 있는 드론으로 인해 사건·사고 현장을 다양한 사이즈로 정밀하게 촬영해 시청자들에게 보다 충실히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십 수억에 달하는 카메라·짐벌 세트를 장착한 유인헬기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 부분 보조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그리고 드론에 내장된 영상 송수신 장치의 발전으로 생중계가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드론 기체에서 보내는 영상신호가 자주 끊기거나 화질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시청자들은 드론으로 촬영한 사건·사고 현장 등의 보도 영상을 실시간으로 TV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열화상 카메라, 하이퍼랩스 등 다양한 촬영 장비와 기능을 드론에 접목하고 있다.

배터리도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배터리 성능이 좋지 않아 채 십여 분도 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짧은 비행시간으로 원하는 영상을 담는 게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비행시간이 배 이상으로 늘어 다양한 영상을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태양광 패널을 부착해 몇 주간 충전 없이 비행이 가능한 드론도 출시됐다. 몇십 분이 아닌 며칠, 몇 주에 걸친 장시간 비행이 가능해진 시대가 온 것이다. 장기간 비행이 가능한 드론이 대중화된다면 드론의 쓰임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2012년 처음 드론을 접한 후 불과 몇 년 사이 드론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향후 몇 년 사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지 않을까. 새롭게 등장하는 드론의 기술을 어떻게 방송에 접목할 것인가는 사용자인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안전이 최우선임을 인식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드론의 장점이 퇴색되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이다. 그 몫을 충실히 해낸다면 드론은 보도 영상의 패러다임을 많은 부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해 앞바다에 추락했던 S800 얘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하다. 기체는 무릎 높이의 바닷물에 떨어졌다. 다행히 기체를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염장이 된 기체는 사용이 불가해 완파 처리했고 천만다행으로 영상은 건질 수 있었다. 드론의 안전성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항상 추락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안전에 유의하며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이 추락을 경험하지 않고 즐거운 비행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