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지중해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물의 도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상인의 나라답게 체계적이고 정교한 상업 시스템을 완성해 냈다. 특히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바다를 항해하는 국유선단에 정기항로 방식을 접목한 ‘무다’를 끈질기게 고집함으로써 ‘강국’의 지위를 오랫동안 지켜왔다.
복식부기를 발전시키고 자신들의 통화인 ‘두캇’을 서유럽의 통화로 정착시켰으며 강력한 함대를 통해 아드리아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원동력에는 무다가 있었던 것이다. 정부의 기민한 판단에 따라 알렉산드리아 항로, 플랑드르 항로를 번갈아 개통하며 상인들의 안전한 항해를 책임지게 만든 무다. 이것이 바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저력’이었다.
하지만 무다의 유지는 엄청나게 힘들다. 일단 시시각각 변하는 각국의 정치상황을 빠짐없이 파악해야 하며 그에 따라 빠르고 정확한 판단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이 숨을 다하는 순간까지 무다에 집착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바로 거기서 생기는 이득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소상공인을 위해 무다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우선 베네치아 공화국은 무다의 국유선단을 군함인 갤리선으로 구성해 안정성을 제고했고, 수송료를 지불하면 누구나 상선에 짐을 싣도록 했다. 여기에 낙찰방식을 통해 개인에게 무다의 국유선단을 빌려주기도 했으나 낙찰받은 사람은 수송료의 상한과 하한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했다.
게다가 각각의 배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선단장은 정부가 임명하는 관리였다.
이 제도는 재력이 뛰어난 대상인의 독주를 막고 해외무역을 원하는 소상공인에게 기회를 주는 훌륭한 방안이었다. 대기업에 의한 독점이 결국은 나라 전체 경제의 경화로 이어지며, 그것을 방지하는데 가장 효력이 있는 것은 중소기업의 건전한 활동이라는 점을 베네치아 공화국은 간파했던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실제적인 제도로 만든 것이 공화국 정부를 구성하는 대상인이었다는 점도 새롭다.
최근 케이블 MSO 권역별 규제 완화 및 다양한 유료방송 규제완화가 추진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방송의 독과점을 경계하며 제동을 걸고, 미래창조과학부가 부랴부랴 케이블 PP 상생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규제완화에 이은 거대 유료방송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비대해지고 있다.
당장 통합 방송법이 제정되고 내년에 발효되는 한미 FTA를 단서로 케이블 MSP 현상이 가속화 되면, 대한민국은 거대 유료방송의 시대로 접어들 확률이 높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무다’에 주목해야 한다. 고스란히 대입해 보면, 유료방송의 규제완화에 따른 독과점 기업의 등장은 온전히 전체 방송시장의 ‘독’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쓸모없는 규제를 철폐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철폐하는 것은 위정자의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방송만큼은 공공성의 영역이 살아 숨 쉬어야 하는 만큼, 최소한 대승적인 방안으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3월 20일 규제완화를 위한 ‘끝짱토론’에 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새삼 무서워진다. 동시에 지난 3월 1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 산업 12개가 늘었다고 발표한 것도 묘하게 오버랩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