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미 2달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부는 종합계획에 맞춰 여전히 당근과 채찍을 남발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후속조치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사실 종합계획의 일차적인 논쟁은 각 이해 당사자의 밥그릇 싸움에 매몰되어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종합계획은 8VSB, MMS, UHDTV,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추상적인 의제설정을 통해 디테일한 논의의 공을 시장에 던져버렸으며, 큰 틀 안에서 기회를 포착한 이해 당사자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때로는 방어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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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실 이차적인 논쟁이다. 밥그릇 싸움도 좋고 이전투구도 좋고 상대방이 받은 선물에 질투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종합계획의 거대한 줄기는 ‘방송의 산업화를 둘러싼 근본적인 잡음’에서 첨예하게 충돌한다. 정리하자면, 방송을 산업으로 보는 정책과 방송을 공적 인프라의 가치로 판단하는 쪽의 대립이다. 이 대립은 밥그릇 싸움보다 훨씬 고차원적이며, 또 치명적이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묘해지고 있다. 방송을 산업으로 재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이 교묘하게 관련 업계로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국정철학에서 시작된 창조경제라는 모호함이 자연스럽게 패러다임으로 환치되는 느낌이다. “방송은 당연히 산업이지!”라는 전제가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마치 국가 인프라에 대한 민영화를 “당연한 수순”이라고 못 박은 현 정부의 당당함처럼.
이러한 기조는 언론을 통해서도 흘러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2월 13일 [전자신문]에 실린 ‘기자수첩-열등반은 33점 넘지마!’ 기사다. 본 기사에서 [전자신문]은 이렇게 말한다. “3~4명밖에 없는 우등반은 선생님의 지원과 좋은 부모의 헌신으로 상위권을 유지한다. 하지만 200~300명에 달하는 열등반에는 어떠한 지원도 없다. 그런데 열등반 중 몇몇이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자 선생님이 말린다. 너희들은 33점을 넘지 말라고”
[전자신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명하다. [전자신문]도 밝혔지만 우등반은 지상파고 열등반은 케이블 PP다. 그리고 지상파는 소위 떨어지는 떡을 먹으며 잘 살아가고 있으며, 케이블 PP는 악전고투하며 싸우고 있다. 그 사이에서 몇몇은 잘 해보려고’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정부는 그들의 열의를 막아서고 있다. 물론 33점이라는 점수는 점유율을 의미한다. 현재 방송법은 케이블 MPP의 매출을 전체 PP 시장의 33%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자신문]은 이러한 부분을 비꼬는 기사를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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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런 기사를 얼굴과 함께 당당하게 실명으로 보도한 사실에는 경의를 표한다. 이 정도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무리 이치에도 안 맞는 기사가 넘쳐나는 시대라지만, 본 기사는 거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감이다. 하나하나 분석해 보자.
[전자신문]이 은연중에 주장하는 방송법의 PP 매출 제한 규제완화는 그들이 말하는 열등반에도 재앙이다. 실제로 PP 매출 제한 규제완화는 SO 권역별 규제 완화와 더불어 소위 CJ 특별법으로 불릴만큼 CJ와 같은 대형 사업자에게 유리한 정책이다. 기사 본문에는 열등반의 몇몇 학생을 눈물겹게 묘사했으나, 그들도 같은 유료방송 사업자를 먹이로 삼는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SO 규제 완화를 통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사실이다. SO로 보자면, 대형 케이블 사업자들은 공격적인 M&A를 통해 800만 가입자 시대를 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제는 PP 매출제한 규제를 완화해 해당 시장을 완벽하게 집어삼키겠다? 그 1차적 피해자는 같은 PP일 것이다. 가뜩이나 FTA를 앞두고 MSP의 등장이 군소 PP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대형 PP의 매출 제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군소 PP의 말살을 의미할 것이다. [전자신문]에서 묘사한 열등반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몇몇 의욕을 갖고 있는 학생을 위해 200~300명의 학생들은 다 죽을 판이다. 33%라는 수치는 전체 PP(열등반) 매출을 대상으로 한다. 그걸 49%로 올리자는 것은, 다른 PP의 존속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신문] 기사의 화룡점정은 방송을 산업으로 재단하는 진영의 속내를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전자신문]은 말한다. “세계적으로 기업이 크지 말라고 매출을 규제하는 곳은 거의 없다. 누구는 100점, 누구는 33점이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이들은 공적 책무를 보유한 복합적인 의미의 방송 사업자를 ‘기업’이라는 단순하게 정리해 버렸다. 물론 유료방송은 기업이다. 하지만 방송 전체를 규정하려 했다면 기업이라는 일차적인 정의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공적인 단어를 선택했어야 했다. 정말 의문이다. 이들에게 방송은 단순히 돈 버는 창구일 뿐인가?
방송은 돈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방송은 언론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언론은 기본적으로 공적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이런 공적책무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을 돈 버는 산업체로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이는 절대적인 명제다. 헌법적인 가치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관습법이다. 하지만 정부와 유료방송, 그리고 일부 언론은 방송을 기업이라고 부르며 천민자본주의를 저속하게 끌어와 공적책무를 흐릿하게 형해화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의 의식 기저에는 방송도 비즈니스 모델일 뿐이다. 한심할 뿐이다.
얼마 전 몇몇 기자와 소위 방송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미래부와 방통위 이야기가 나왔다. 현 정부의 방송에 대한 국정철학은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며, 진흥과 규제를 구분한 것 자체가 패착이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그러한 한탄은 1년 전부터 나오던 것이라 당시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전자신문]의 기사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다. 지금 상황은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방송을 산업으로 치부해 돈 버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매출에 따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당하게 나오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방송은 공적 인프라다”라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시대가 올까 봐 두렵다.
현재 지상파의 역할에 대해 많은 의문부호가 생기지만, 최소한 공적 미디어의 역할을 담당하는 지상파의 존재가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제발 방송을 매출로 판단하지 말고, 모든 것을 돈으로만 재단하지 말아달라. 심지어 CJ 헬로비전은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고 하던데, 당신들은 이미 약자가 아니라 충분히 강자다. 공적 미디어를 부정하고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 너무하지 않은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해 건전한 경쟁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 물론 선은 지켜야 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