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법,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향한 첫걸음 ...

[칼럼] 방송 3법,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향한 첫걸음
제작 자율성과 방송편성규약의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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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종원 전 KBS춘천방송총국장, 정책학 박사] 지난 8월 5일 방송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 MBC의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은 8월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EBS의 이사회를 구성하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8월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처음부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반대하며 정치권 추천 권한 유지를 고수한 야당은 필리버스터로 맞섰지만 끝내 법안 저지에는 실패했다. 이로써 KBS·MBC·EBS 이사회의 구성 방식을 바꾸는 ‘방송 3법’의 입법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는 2000년 방송법 개정 이후 줄곧 정치권 추천에 의존해 온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방송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이다. KBS 이사회는 기존 9명에서 15명으로, MBC와 EBS 이사회는 9명에서 13명으로 확대된다. 이사 선임 주체도 정치권 중심에서 벗어나 변호사단체, 미디어학계, 시청자단체, 공영방송 임직원 등으로 다변화된다(제46조의2 신설). 둘째, 사장 선임 방식이다. KBS·MBC·EBS는 물론 보도전문채널(YTN 등)까지 100명 이상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설치해, 경영계획 발표와 면접, 숙의 토론을 거쳐 3인 이하의 복수 후보를 이사회에 추천하도록 했다(제20조 및 제50조의2 신설). 셋째, 방송편성규약 제도 강화다. 지상파방송,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은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방송편성규약을 제·개정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제4조 제3항~제6항 신설). 위반 시 과태료 부과나 재허가 심사에 반영된다. 넷째, 편성·보도 책임자 임명 방식이다. 편성책임자는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의 제청으로, 보도 책임자는 보도 부문 직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임명해야 한다(제21조 신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공영방송 사장 선임을 주도해 온 이사회 구조를 바꿔 대통령의 임명권과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고, 공정하고 투명한 선임 절차를 보장하는 데 있다. 동시에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를 통한 방송편성규약 제정으로 방송 제작자의 제작 자율성과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방송 3법 개정에 대해 이사회 추천 주체에 시청자단체와 임직원을 포함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일부의 비판이 있고,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가 방송사의 인사·편성권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방송 사업자들의 우려도 제기된다. 아울러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보도전문채널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 여부 역시 법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존 방송법의 한계와 공영방송 낙하산 사장의 문제
이번 방송법 개정의 핵심은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공영방송의 낙하산 사장’ 문제를 제도적으로 막는 데 있다. 공영방송의 이사 선임과 사장 임명 과정이 정치권에 좌우되면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흔들려 왔기 때문이다. 정권에 의해 임명된 낙하산 사장은 방송법과 노사 단체협약에 명시된 방송편성규약을 무력화시켰고, 이는 곧 공영방송의 공론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박민 KBS 사장은 방송법과 단체협약을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편성규약에 보장된 편성·보도 책임자 임명동의제가 지켜지지 않았고, 정권 친화적 편성이 강화되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2023년 12월 방영된 <시사기획 창>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는 대통령 외교 순방을 홍보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KBS 시청자위원회는 이를 “노골적인 정권 홍보 방송”이라 비판했고, 국민의 방송 KBS에 “윤비어천가”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방송법 위반에 대한 문제제기는 법원에서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행자 교체, 국장 임명동의제 위반, 편성규약 무력화 등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방송법의 미비와 노동법의 한계를 이유로 사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법원의 판결은 기존 방송법과 노사 단체협약 조항만으로는 공영방송의 제작 자율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이는 곧 공영방송이 권력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낙하산 사장 체제에서는 방송이 정권의 홍보 도구로 전락하고 내부 견제 장치마저 무력화되는 현실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결국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 개편과 방송편성규약 제도 개혁을 촉발한 결정적 동인이 되었다. 이번 방송법 개정은 단순한 조항의 수정이 아니라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방송의 자유와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역사적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적 전환으로 평가된다.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방송편성규약의 법적 정당성
방송 3법 개정은 낙하산 사장 문제 해결을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사장 선임 제도 개선뿐 아니라,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운영을 통한 방송편성규약 제도의 혁신을 예고한다. 종전 방송법 제4조 제4항은 방송 사업자가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도록 규정했지만, 선언적 성격에 머물러 실제 제작 현장에서는 노사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법적 실효성이 사실상 없었다. 이번 개정으로 방송편성규약 제정이 구체화되고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가 도입되면서, 그동안 경영진이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해 온 편성권·인사권과 관련한 새로운 법적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본 칼럼은 이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방송 3법 개정에서 방송편성규약이 지니는 법적 정당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쟁점은 방송 사업자의 고유 권리로 여겨져 온 편성권과 인사권이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가 제정하는 방송편성규약에 의해 규율될 수 있는지 여부이고, 둘째는 공영방송이 아닌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에도 방송편성규약 적용을 강제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방송의 자유’의 개념과 성격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방송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에서 도출되는 기본권으로, 주관적 권리이자 객관적 제도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주관적 권리는 개인이나 방송사가 국가 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방송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의미한다. 동시에 방송의 자유는 국민이 올바른 정보를 접하고 민주적 여론 형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객관적 질서이자 제도로서, 국회의 입법을 통해 구체화된다. 헌법재판소 역시 방송의 자유가 이러한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고 판시하면서, 입법자는 국민 전체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방송 제도를 형성할 책무를 진다고 명확히 했다(2000헌바43). 따라서 방송법상 편성규약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민주적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정당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방송의 자유란 단순히 특정 방송사의 권익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방송 자유라는 공익적 가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정된 방송법의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운영은 편성권을 방송법인이나 사업자의 독점적 권한으로 한정하지 않고, 방송 제작자 역시 방송 자유 실현의 주체임을 전제로 한 제도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은 MBC 노동조합 파업 사건에서 “방송의 자유는 방송사뿐 아니라 제작자들에 의해서도 실현된다”고 판시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4나11910). 이는 방송 자유의 주체를 경영진에 한정하지 않고 제작자에게까지 확장한 것으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의 법적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편성권·인사권을 경영진의 고유 권한으로 보아 이를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비판이나, 국가가 방송 자율성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의 자유는 특정 방송사나 법인에 귀속되는 단순한 주관적 권리에 머물지 않고, 국민 전체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객관적 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부 주도의 지배구조 속에서 편성권이 경영진에 독점될 경우, 특정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군사정권 시절의 ‘땡전뉴스’는 전국적 수신료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특정 정파와 이념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가 편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는 여론의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따라서 방송법상의 방송편성규약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보장하는 헌법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방송편성규약은 편성권이 누구에게 귀속되고 어떻게 행사되어야 방송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제도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공영방송의 설립 목적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 실현에 있으며, 특히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다. 방송의 자유는 방송사 법인에만 독점된 권리가 아니라, 다양한 여론을 형성해 민주주의를 공고히 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라는 점에서 방송 제작자도 함께 공유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방송의 자유는 방송법상 방송편성규약은 방송 제작자의 내적 자유 보장을 토대로 ‘모든 국민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은 정부의 허가와 재허가 심사, 소유겸영 제한 등 강한 공적 규제를 받는다. 따라서 이들 채널의 편성규약 제정 의무는 정당하다. 이는 비록 상업적 성격을 지니더라도 방송법 제4조 제4항이 편성규약 마련을 명시하고 있고, 아울러 이들 채널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의 규약 제정은 ‘사적 언론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강화로 정당화된다. 방송의 자유는 특정 방송사의 독점적 권리가 아니라, 방송 제작자의 내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며, 국민 모두의 권리로 구현되어야 한다.

방송 3법에 대한 기대와 우려
방송 3법 개정은 기존 방송법의 구조적 한계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낙하산 사장 임명으로 방송 제작자의 의견이 배제되고, 제작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훼손되며 공영방송의 신뢰가 추락한 현실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려는 방송법 개정의 정당성은 분명하지만, 제도가 안착하기까지는 여전히 난관이 많다. 무엇보다 방송 3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상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방송법 제4조 제2항은 편성위원회 구성 방식을, 제46조 제3항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단체를 방송통신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뒤늦게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확대 개편하려 하면서, 법이 정한 기한 내에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된다. KBS의 경우 방송편성규약 개정 과정에서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가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노사는 보도·제작·기술 직종 대표 3명과 시청자위원회가 추천하는 이사 2명에 관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사 추천의 기준과 절차, 공모 방식, 의견수렴 과정까지 모두 노사 합의를 통해 명문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편성규약을 무력화하고 국장 임명동의제를 지키지 않았으며, 지금은 단체협약에서 이 조항의 삭제까지 요구하는 KBS 경영진이 과연 이런 불리한 법안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방송법은 방송편성규약을 3개월 이내에 제정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 협상만으로는 갈등과 파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며, 제도가 처음 시행되는 만큼 절차와 관례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도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사회 추천과 구성 문제를 노사 협상에만 전적으로 맡길 경우, 제도의 안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방송 3법 개정의 지향점은 사측의 편성권 독점에서 비롯된 폐해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정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KBS 경영진이 방송법의 취지를 온전히 수용하고, 노사 간 신뢰 회복과 제도적 정착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방송 3법은 그동안 집권 여당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을 분산시키고, 이사회 구성과 추천 주체를 다변화함으로써 일방적 낙하산 사장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는 사장이 편성권과 인사권을 활용해 정권의 이해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편성하던 폐해를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결과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중립성을 강화하고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체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유명무실했던 방송편성규약을 강화해 제작자의 방송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점은, 과거 낙하산 사장들이 편성규약을 무시해 온 관행을 보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는 아직 미완성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규칙 제정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하며, 방송편성규약 운영 과정에서도 노사가 신뢰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자유는 특정 방송사의 권리가 아니라 제작자의 내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며, ‘모든 국민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방송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 발현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봉사하는 자유이며, 이러한 객관적 성격은 방송편성규약을 통해 제도화된다. 따라서 방송 제작자는 전문성에 기초한 자율성과 독립을 유지하면서, 방송의 자유가 곧 봉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의미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결국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은 방송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로 이해하고, 노사가 이를 공유한다는 인식 속에서 국민의 언론·방송 자유를 구현하는 책임 있는 자세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