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월간 방송과기술』 2024년 4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 본 원고에서 사용된 그림은 openai.com/research/video-generation-models-as-world-simulators에서 제공하는 동영상 생성형 AI ‘소라(Sora)’ 설명자료에 포함된 그림으로, 소라가 만든 사진 혹은 동영상의 한 장면에 해당합니다.
[방송기술저널=최홍규 EBS 디지털인재교육부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 소라(SORA)는 동영상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로, 이용자가 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머릿속에 그린 후 그 내용을 글자로 입력하면 동영상이 출력되는 생성형 AI 서비스다. 이른바 ‘텍스트 투 비디오(Text to Video)’로 불리는 서비스 모델이다. 소라에 명령어 형태의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최대 1분 길이의 동영상을 제작해 준다고 한다.
동영상 길이가 1분이라고 하니, ‘생성형 AI가 만드는 동영상이 얼마나 조악할까?’라고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소라가 만든 동영상 샘플들을 보면, 실제 촬영한 동영상이라 믿게 되는 것에 더해서 고품질의 동영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단편적으로 생각할 때, 소라는 방송 산업에 꼭 필요한 서비스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생각을 더 해보자.
방송사에 이익이 되는 기술이란?
먼저, 방송사에 이익이 되는 기술이란 무엇인지 정의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이에 대한 관점이 있고, 그 관점에 따라 개념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방송사에 이익이 되는 기술이란, 1) 당장 방송사의 콘텐츠 제작 공정에 활용이 가능하고, 2) 제작비를 절감해 줄 수 있고, 3) 장기적으로는 방송사 제작시스템에 편입될 수 있는 기술이다.
새로운 첨단 기술이 당장 방송사에 이익을 줄 수 있으려면, 이러한 3가지 기술적 요건은 갖춰져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인해, 방송사가 스스로 산업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낼 때마다, 제작 효율화의 문제는 항시 거론되어 왔다. 방송사를 콘텐츠 생산 사업자로 본다면, 이는 당연히 맞는 말이다. 시간과 비용을 줄여 효율적인 콘텐츠 생산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방송사의 오랜 과제이기도 했다.
따라서 소라의 등장이 방송사에 이익이 되려면, 소라가 콘텐츠 생산 환경을 개선해 주고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콘텐츠 생산과정을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소라는 당장 방송사의 콘텐츠 제작 공정에 활용이 가능한가?
단순히 떠오르는 상상의 이미지를 실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구현해 주는 기능만으로도, 소라는 방송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 활용할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소라가 만든 콘텐츠의 이미지를 기획자들 간에 공유하고 이를 함께 튜닝하는 과정을 통해, 제작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어떠한 콘텐츠를 만들 것인지 기획에 참여하는 방송사 구성원들이 함께 통일된 콘텐츠 이미지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획 단계를 방송 콘텐츠 제작 공정의 첫 단계라고 볼 때. 소라는 방송사의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 활용이 가능한 기술을 탑재한 서비스다. 하지만, 소라는 단순히 콘텐츠 제작 공정 첫 단계에서만 활용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소라를 소개한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소라는 단순히 글을 동영상으로 만드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기존 동영상을 확장하거나 유실된 동영상 프레임을 채울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기존에 생성된 정지된 이미지도 동영상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고 한다. 콘텐츠 기획 단계 외에도, 혹은 이미 제작된 콘텐츠에도 소라가 영향을 미쳐 콘텐츠 품질을 향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라는 콘텐츠 제작비를 절감해 줄 수 있는가?
소라가 생성형 AI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비스라고 해서 꼭 콘텐츠 제작 기술을 진보시키는 데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소라는 방송 콘텐츠 제작비의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인력 수 감소를 유도할 수 있다.
소라는 새로운 동영상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기존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보정하는 기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되어 동영상과 이미지에 대한 디자인ㆍ편집 투입 인력 숫자를 낮출 수 있다. 물론, 기존의 디자인ㆍ편집 투입 인력이 감소한다고 해서 무조건 인건비 절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라라는 생성형 AI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별도로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디자인과 편집에 참여한 인력들이 직접 작업을 수행했다면, 소라 출현 이후에는 소라에 프롬프트를 입력할 인력이 필요해진다. 기존 인력과 소라 출현 이후에 투입될 인력 모두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겠지만, 직무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둘은 전혀 다른 직무를 수행하는 인력이다. 따라서, 소라 출현 이후 디자인이나 편집을 수행할 투입 인력 숫자가 줄어들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인건비 자체를 낮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게 된다. 엄밀히 말해 소라는 콘텐츠 제작에 투입될 인력수 감소를 유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제작비 절감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도구 정도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소라는 장기적으로 방송사 제작시스템에 편입될 수 있는가?
장기적으로는 편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소라가 방송사의 제작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인력의 전문적 소양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조건이다. 생성형 AI를 구동하려면 자기 생각을 프롬프트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전문적 소양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소양이 단시일 내로 학습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아직 전 사회적으로 생성형 AI에 대한 업무적 경험치가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성형 AI 운용 전문인력을 쉽게 고용할 수 있다거나, 기존 인력의 재교육으로 생성형 AI 전문인력 수급이 가능하다는 예측을 하기 어렵다.
즉, 장기적으로 방송사 인력이 생성형 AI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제작시스템에 소라가 편입되기 수월해질 수 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어느 산업이나 특성에 맞춰 정착된 인력의 전문성이 다른 것처럼 방송산업의 인력 전문성도 타 산업과 다르다. 따라서, 인력 전문성의 개편이 이뤄져야 소라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와 향후 개발될 AI 관련 기술을 방송사 업무에 적용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소라는 방송사에 이익이 될까? 손해를 끼칠까?
당연히 소라는 방송사에 이익이 되는 기술을 탑재하고 있다. 문제는 소라의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역량이 문제다. 방송사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군은 새로운 생성형 AI 서비스가 출현할 때마다 공포감을 느낀다. 생성형 AI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현재의 직업군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중심으로 생성형 AI 기술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는 측면이 있다.
생성형 AI에 대한 이런 공포감이 팽배한 시대에, 방송사는 새로운 시각으로 생성형 AI 기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생성형 AI를 빠르게 선점하여 방송사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그러려면 어떻게 인력의 소양을 증진하고 제작 체계를 개편할 수 있을지 면밀히 고심해 봐야 한다.
이번 소라의 출현에 대해서도 그렇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공포의 대상이 아닌, 희망과 기대의 대상으로 말이다. 모든 생성형 AI 기술이 인간의 직업군을 사라지게 할 목적만으로 개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