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진신우 방송기술저널 편집주간] 전화를 걸면 요금은 누가 낼까? 전화를 건 사람이 부담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전화를 아무리 많이 걸어도, 전화 건 사람 부담이었다. 국제전화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받는 사람이 부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전적 의미에서 통신 요금 부담은 전화를 건 사람, 즉 원하는 정보에 접근을 원하는 사람 부담이었다.
01410 전화를 통한 터미널 접속 방식에서 출발해 ADSL, VDSL, 100메가 랜, 기가랜 한국 인터넷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했다. 국민 1인당 데이터 소모량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제는 통신을 활용해 IPTV를 보고, 영화를 시청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적어도 유선 통신 시장은 종량제가 아닌, 정액제 덕분에 전 국민이 마음 편하게 정보통신 생활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ISP 업체들은 통신 환경을 제공하고, 가입자들로부터 통신 서비스 요금을 받아서 회사를 운영하고, 서비스 품질 향상에 다시 투자를 하고,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업체가 등장했다. 과거에는 비디오 DVD를 빌려주던 업체였지만, 시대가 발전해 이제는 통신회선을 사용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ISP 업체의 주장은 이러하다. 국민들이 통신 인프라를 사용해 영화를 보고 TV를 시청하는 등 데이터 전송량이 증가했으니 그 원인을 제공한 넷플릭스도 책임이 있으며, 넷플릭스도 ISP 업체 측에 비용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주말만 되면 대한민국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이 된다. 같은 이론으로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너무 많으니 자동차를 많이 생산한 현대, 기아는 한국도로공사에 도로 사용료를 지급해야 할까? 공평하게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자동차를 제조사별로 구분해 제조사마다 평등하게 요금을 부과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디즈니나 HBO의 VOD 서비스도 국내에 등장하면 패킷 분석해서 회선 사용료를 정말 공정하게 부과할 수 있을까? 통신 환경을 이용해 윈도우 OS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도 ISP 측에 회선 사용료를 내야 할까? 전 세계 통신 패킷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토렌트는 어떻게 요금을 부과해야 할까? 국경 없이 돌아다니는 통신 패킷을 어떻게 일일이 추적할 수 있을까?
법과 제도는 항상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을 따라잡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수십 년 전 법을 들이대며 불법이라는 누명을 씌우거나, 신종 기술 범죄가 등장해 국민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면 입법기관은 땜질식으로 법률을 제정한다. 우리는 그것을 규제라고 부른다. 법률을 만들었으면 적어도 차별은 없어야 한다. 기존 산업도 평등하게 적용해 역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보험약관처럼 촘촘하게 쓰여 있는 각종 규제로 방송계는 숨을 쉴 수 없다. 전염병 하나가 전 세계 경제 성장을 후퇴시키고 있고 이에 더해 대한민국의 방송 산업은 과거에 제정한 법률들로 죽어가고 있다. 드라마 제작 시간을 줄이고, 재방송을 늘리고 편성을 조정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시스템과 제도의 리셋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정부 부처는 없다. 보고 즐기는 방송 산업은 먹고사는 문제, 즉 국민 민생고와 직접 관련 있는 문제는 아니니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방송 산업계가 살아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 어려운 시기에 등장한 현명한 조치야말로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방송 산업계를 살릴 수 있다. 정부에게 시대 상황을 반영한, 현실적인 방송 정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