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세계 최초로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했지만 지상파의 경영악화, 정책 지원 부재 등 각종 악재로 우리나라가 주춤하는 사이 미국에서 UHD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공세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칫 잘못하다간 UHD 선도자 이미지를 빼앗길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오는 2027년 HD 방송 종료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왔다. 지상파 UHD 방송은 4K 화질뿐 아니라 재난 경보 시스템, 모바일 서비스를 통한 커버리지 확대, 양방향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한 기술로 본방송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차세대 방송 산업을 선점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인터넷TV(IPTV) 등에 대한 비대칭 규제로 공적 경쟁이 약화되면서 지상파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UHD 모바일 등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국내에서 UHD 산업은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했다.
특히 지상파 UHD 모바일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지상파 UHD 모바일은 △재난방송 체계화(대기 상태의 수신기를 깨우는 Wake up 기능, 이동통신 마비 시에도 재난 정보 전달 가능) △실시간 방송 및 부가 서비스 제공(방송망과 통신망을 이용한 데이터 Broadcast/Unicast 가능) △고화질 및 고속 이동 수신이 가능한 무료 보편 서비스 확대 등에 활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시범 서비스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정부에서는 지상파 UHD 정책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UHD 방송 활성화를 위해 방송사와 가전사, 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운영하고 새로운 UHD 방송 정책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은 “정부 당국이 더 늦기 전에 정책 재검토에 착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새로운 정책 방안의 목표가 지상파 UHD 방송의 도입 일정을 조정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ATSC 3.0 기반의 UHD 방송은 재난방송, 인터넷 등과 융합 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환경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UHD가 가진 경쟁력으로 시청자 복지를 제고할 수 있도록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UHD가 가진 화질에만 주목하고 주춤한 사이 미국에서는 ATSC 3.0을 중심으로 방송뿐만 아니라 OTT, 자율주행 등 다양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최대 지상파 방송사인 싱클레어 방송그룹은 올해 1월 SK텔레콤과 합작회사를 출범했다고 밝혔다. 싱클레어와 SK텔레콤의 합작회사는 우선 △방송용 클라우드 인프라 △초저지연 OTT 서비스 △개인 맞춤형 광고 3대 사업 영역 등에 집중하고 추후 영역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ATSC 3.0은 자동차 산업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지난해 5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Automotive Industry Symposium이다. 이 심포지엄에는 ATSC 3.0 방송을 송출하는 WXTZ 방송사와 자동차 회사, 렌터카 회사(Budget), LG전자 등이 참여했다. 자동차 회사와 방송사는 미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자동차 리콜 중 방송 신호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시연했다. 또한 자율주행 시대에서도 방송 신호가 가진 장점이 자동차 산업에 활용될 수 있다. 박진효 ADT캡스 대표 겸 SK텔레콤 보안사업부장(당시 SK텔레콤 ICT기술센터장)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5G-ATSC 3.0 기반 방송 시연을 마친 후 “자율주행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차량 내 미디어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 질 것”이라며 “미디어 기술로 미국 차세대 방송 시장을 선점하고 글로벌 사업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TSC 3.0을 기반으로 한 UHD 산업의 잠재력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도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회장은 “미국과 유럽에서 방송과 통신을 결합한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며 “지상파 UHD 서비스를 잘 활용한다면 곧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에 수요가 급증할 차량 인포테인먼트(In-Vehicle Infortation, IVI) 산업에서 안전한 콘텐츠의 공급과 재난 정보의 제공을 통해 방송.통신 산업의 균형 발전과 시청자 권익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회는 위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상파 UHD 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가 ATSC 3.0을 활용한 부가 서비스를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지상파를 활용한 재난방송 서비스의 고도화는 물론이고 UHD 모바일, 타겟 광고와 같은 다양한 방통융합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UHD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이번 지상파 UHD 정책 재검토를 통해 ATSC 3.0 부가 서비스 시행을 위한 제도 개선 및 규제 철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