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프로그램의 저작권 보호를 다시 생각하다

방송프로그램의 저작권 보호를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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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호 (EBS 편집위원)

| DTV와 디지털 콘텐츠
원하는 방송프로그램을 보고자 할 때 그 편성 시각에 맞추어 시청하는 TV 콘텐츠의 소비 방식이 TV 100년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앞으로도 당분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하고 기존의 미디어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현재는 역사의 관성이 다소 힘을 잃어가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오디오에 이어 비디오에도 디지털 형태의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면서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각에 볼 수 있는 형태로의 진화는 주된 요인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TV 방송프로그램도 디지털 콘텐츠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는 더 이상 ‘모래 시계’를 ‘귀가 시계’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일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방송사는 이러한 소비문화의 변화에 대해 인터넷을 통한 VOD/AOD 형태로 대응하고 있지만, 모바일 환경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결국 시청자들은 자신의 콘텐츠 소비 형태에 맞추어 방송 콘텐츠를 가공하기 시작하였다. 녹화와 트랜스코딩이라는 어렵지 않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기술적인 수단이 동원되어 자신의 PMP에 방송 콘텐츠를 넣어 원하는 때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는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되고 있으며, 결국 저작권법을 위반한 불법 콘텐츠의 범람으로 이어졌다. 오히려 방송 시간에 TV를 시청할 수 없는 사람들은 P2P나 웹하드 등을 통해 방송프로그램 파일을 다운받아 시청하는 방법이 일반화되어가고 있으며, 그 파급효과는 방송 시장과 디지털 콘텐츠 시장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지경에 이르렀다. 라디오의 경우 ‘단팥’이라는 방송 콘텐츠 다운로드 서비스를 통해, 그리고 비디오의 경우 웹하드 업체와의 공급 계약 체결을 통해 이에 대응하고자 하지만, 이 흐름을 돌려놓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저작권 침해 문제는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맞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디지털로 녹화된 DTV 방송프로그램은 방송 화질과 동일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법적 배포를 넘어 편집이나 가공 등을 거쳐 재사용될 우려가 있다. 또한 시청 범위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쉽게 퍼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콘텐츠 수출에도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 지상파 DTV 방송프로그램의 유출


디지털 방송 콘텐츠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이 콘텐츠 보호 기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1) 송출 -> 셋탑 박스/PVR -> TV

▲ 그림 1. 송출 -> PVR -> TV의 과정에서 디지털 콘텐츠 유출

디지털 TV가 보급되고 보편화되면서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셋탑 박스도 보급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디지털 출력을 갖는 경우가 있어, 디지털 콘텐츠의 유출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한 하드디스크나 DVD 등의 전산 저장 매체를 지원하는 PVR(Personal Video Recorder)이 VHS 녹화기를 대체하고 있는데, PVR은 단순히 내부 저장만 하는 기기도 있지만, 외부 유출이 용이한 기기도 많다. 다음은 셋탑 박스와 PVR로부터 콘텐츠를 유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a) IEEE1394, HDMI, DVI 등의 디지털 출력
(b) DVD, BD, HD DVD, 메모리 카드 등의 이동형 저장 매체에 저장
(c) Component, S?Video, Composite 등의 아날로그 출력

(a)의 경우, IEEE1394는 DTCP라고 하는 보호 규격과, HDMI와 DVI는 HDCP라는 보호 규격이 있다. 이 인터페이스를 채택하는 제품은 대부분 이 규격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의 경우는 디지털 방송 콘텐츠의 유출이 가장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방법이다. DVD 기록을 지원하는 PVR은 현재 방송을 바로 DVD에 녹화하거나 내장된 HDD에 저장한 방송 콘텐츠를 DVD로 복사할 수 있다. 하지만 DVD는 HD 방송을 30분 정도 밖에 저장할 수 없지만, 2시간 반 정도 녹화가 가능한 BD나 1시간 반 정도 녹화가 가능한 HD DVD 기록을 지원하는 PVR이 출시된다면 HD 방송의 저장 및 배포는 매우 손쉬울 것이다. (c)는 TV에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아날로그 출력으로서, 마크로비젼 기술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기술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호된 콘텐츠라도 이 출력으로 저장이 가능한데, 이러한 이유로 아날로그 출력을 ‘analog hole’이라고 말한다. 물론 디지털이 아니므로 수신 데이터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적절한 A/D 변환으로 고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

2) 송출 -> DTV 수신 카드 -> PC

▲ 그림 2. 송출 -> TV 수신 카드 -> PC의 과정에서 디지털 콘텐츠 유출

DTV 수신 카드나 수신 모듈을 PC에 연결함으로써, PC를 통하여 TV를 시청할 수 있다. 이러한 카드들은 대체적으로 캡쳐 및 저장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데,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수신한 DTV TS 데이터를 그대로 PC에 파일 형태로 손쉽게 저장할 수 있다. HD TV를 수신할 수 있는 DTV 수신 카드도 널리 보급되어있기 때문에, HD 방송 콘텐츠 역시 저장이 가능하다. 현재 인터넷을 통하여 유포된 고화질의 방송 콘텐츠들은 대부분 이 방법으로 저장, 가공되어 유포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3) 인터넷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VOD 화면 저장

▲ 그림 3. 인터넷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VOD 화면 연속 캡쳐 및 저장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VOD는 디지털 데이터이지만 화질이 좋지 않고, 또한 스트리밍 프로토콜로 전송되어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다면 데이터 그대로 저장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현재 구할 수 있는 화면 캡쳐 프로그램은 모니터 화면에 렌더링되는 이미지를 연속으로 저장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화질은 차이가 크지 않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소스 자체가 질이 낮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고화질 방송 콘텐츠 유출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VOD가 중요한 수익원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캡쳐 프로그램에 대한 대책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방송 콘텐츠 보호 기술보다는 디지털 콘텐츠 보호 기술의 측면에서 접근해야할 것이다.

| 해외 방송프로그램 보호기술 현황

미국은 이미 2005년부터 Broadcast Flag(이하, BF)를 이용하여 지상파 DTV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추진했다. BF는 방송사의 방송 신호에 삽입되어 수신기에게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할 방송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수신기가 방송 신호에서 BF를 인식하면, 해당 방송 프로그램을 저장, 복사, 출력 시에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공인한 13가지 기술만을 사용하여야 한다. 인증된 13가지 기술은 FB가 있는 프로그램을 저장, 복사 또는 외부로 출력할 때 이를 암호화하여 프로그램을 보호할 수 있다. BF는 정부 주도로 법제화를 추진하였으나 소비자단체들의 반발과 FCC가 BF를 법제화 할 권한이 없다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진행이 중지된 상태이다. 그래서 MPA(Motion Pictures Association)가 세계를 대상으로 저작권 보호를 위해 뛰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는 싱가포르에 설치된 아시아 태평양 지부에서 관할하며,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MPA의 미국지부인 MPAA(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는 미국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협회로서, SOC(Selectable Output Control)를 추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케이블 수신기나 TiVo, Sling Box 등의 특정 아날로그 출력을 ‘turn off’하는 것으로, 영화가 DVD로 출시되기 전에 유료 VOD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할리우드 배급사들이 영화 콘텐트의 사전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FCC의 승인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어떠한 출력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요구사항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DVB-CPCM이라는 기술의 표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13개의 표준 문서 중 11개 부분의 표준화가 완료된 상태이다. DVB-CPCM은 미국의 BF처럼 승인된 보호기술만을 사용할 것을 강제하지 않고, CPCM 표준 스펙에 부합하는 기술은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은 저작권자가 콘텐츠의 사용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으며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위성, 케이블,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 등에서 콘텐트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제공한다. CPCM 규정을 준수하는 장비는 CPCM의 제어 규정에 따라 표준화된 출력을 사용하며, 개인의 사적 이용범위 내에서 콘텐트의 복사 및 공유는 횟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가능하다.
일본은 디지털 방송을 시작한 2004년부터 B-CAS라고 하는 CAS 기술을 사용하여 강력한 콘텐츠 보호 정책을 실시했다. B-CAS는 CAS 기반의 사용자 제어와 한 번의 저장과 이동만을 허용하는 ‘Copy Once’ 정책을 통하여 방송 프로그램의 재배포를 엄격히 차단했으며, B-CAS가 적용된 수신기의 모든 출력은 보호기술을 사용하여 보호된다. 그러나 ‘Copy Once’에 대한 사용자의 불만이 제기되어 2008년부터 지상파와 무료 위성방송의 경우 9번의 복사와 1번의 이동이 가능한 ‘Dubbing-10’으로 다소 느슨해졌다.

| 한국의 지상파 DTV 방송프로그램의 보호기술 현황


방송사 입장에서 지상파DTV 방송프로그램 보호기술을 적용하는 핵심은 방송 신호에 어떤 권리 내용을 어떻게 실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지상파 방송4사는 권리 내용을 정의하는 데이터 구조는 ‘프로그램 보호신호’(Program Protection Information. 이하, PPI)라고 명명되어 2008년 12월에 TTA에서 표준으로 제정되었으며, ‘지상파 DTV 방송프로그램 보호 송수신 정합 Part 1: 송신부’로서 2010년 9월 16일에 개정되었다. 보호신호를 수신하는 수신기는 보호신호에 지정된 권리 내용에 따라 출력을 제어해야 한다. 이에 대한 표준은 ‘지상파 DTV 방송프로그램 보호 송수신 정합 Part 2: 수신부’로서 2009년 12월 22일에 제정되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TTA의 홈페이지에 공개되어있는 표준 문서를 통해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이 송신부 표준에 의한 지상파 방송4사의 실험은 2009년 말과 2010년 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상태이다.

 

▲ 그림 4. 프로그램 보호신호 수신 실험

하지만 아직 어느 지상파도 프로그램 보호신호를 본방송에 적용하지 않고 있으며, 수신기 업체 또한 이 규격을 따르고 있지 않다. 이미 지상파 DTV 송출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은 시점에서 이를 적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프로그램 보호기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송사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새로운 방송 서비스에 저작권 보호를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시험방송 중인 3DTV와 활발히 연구가 진행 중에 있는 UDTV, 제주도에서 실험방송 중인 이동식 TV인 MPH, KBS가 추진하는 KoreaView 등, 준비 중이면서도 수신기가 출시되어있지 않은 이러한 신규 서비스는 보호기술이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기술 개발에 있어서 보호기술의 적용은 후순위에 밀려있다 하더라도, PPI 등 이미 연구된 기술을 적용하는 등 본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성들여 만든 고급 방송프로그램 콘텐츠가 꾸준히 가치를 유지하는 당연한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