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이상진 SBS 정책팀 차장] 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과 강릉 일대에 서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던 큰 산불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가히 국가 재난에 준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이 피해를 복구하는 데 아마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검게 타버린 주민들의 마음은 더더욱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 방송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흡한 대처로 지역 주민과 시청자들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공공 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지상파방송 의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다. 뒤늦게 재난 관련 특보 체제를 갖추고 뉴스를 전달했지만, 정작 필요한 대피 방법이나 구조의 진행 과정을 알리기보다는 산불의 규모나 참혹한 피해 상황을 중계하는 데 치중해 많은 비판도 받았다. 일부 지역은 통신마저 끊긴 상황에서 현장의 주민들이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교통이 차단된 도로는 어디 인지 신속히 알려주는 등 정확한 행동 요령을 전달하는 것이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 더 나은 길이었을 터다.
비단 방송사의 늑장 대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형 산불이 일어났음에도 정부가 마련한 재난 방송 온라인 자동 송출 시스템은 작 동하지 않았다. 정부의 재난 방송 온라인 자동 송출 시스템은 태풍, 지진, 홍수, 호우, 대설 등 자연적 재난과 일정 규모 이상의 사고, 폭발, 화재 등 사회적 재난이 발생할 경우 동작하게 돼 있었는데 이번 산불 같은 경우는 기준 자체가 모호해 경보를 발생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자동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으니 재난 방송 담당 부처에서는 재난 발생 5시간 반 뒤에나 방송사 담당자에게 스마트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으로 전달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방송사의 자구적 노력도 필요하고, 이번 사태에 잘잘못을 가려 엄중히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서 다시 는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의 긴급 재난 방송 시스템은 [그림 1]과 같이 구성돼 있다. 행정안전부, 기상청 혹은 각 지역의 홍수통제소 등에서 재난 통보가 내려오면, 방송통신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재난 방송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재난 관련 자막이나 방송을 시행하라고 방송사에 요청한다. 정부로부터 재난 방송 요청 통보를 받으면, 방송사는 입수한 통보문에서 재난 안내 문구를 자동으로 인식해 이를 추출한다. 추출한 재난 방송 자막 문구는 실시간으로 방송 중인 화면 위에, 지정된 규격으로 화면 하단에 자동으로 자막을 표출하도록 [그림 2]와 같이 자동 자막 송출 시스템이 구성돼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부의 재난 방송 규정에 의해 단계별로 재난 방송을 시행한다. 원칙적으로 재난 방송 단계는 자막과 스크롤을 넣는 1단계, 스크롤 방송과 뉴스 특보를 실시하는 2단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전면 재난 특보로 전환하는 3단계로 나뉘어 있다. 1, 2단계의 재난에서도 방송사는 자율적 판단에 의해 재난 방송을 실시할 수 있다. 이처럼 재난 방송과 관련한 현재 시스템과 관련 규정은 3단계를 제외하고는 방송사가 정규 편성을 중단하고 긴급 특보 체제를 갖춰야 할 지 고민을 해야 하고, 이마저도 현재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만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TV 시청 여부와 상관없이 이동통신사의 문자로 재난 발생 여부에 대해 국민 대다수에게 전달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과거 ‘포항 지진’이나 ‘아현동 통신구 화재’ 등의 경우와 같이 피해 지역의 통신망이 두절돼, 정작 도움이 필요한 지역 주민들에게 재난 정보가 늦게 전달되거나 아예 전달이 이뤄지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 또한, 재난 문자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제한돼 있어, 어느 지역에서 재난이 발생했다는 정도의 단순 알림 기능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 관련 정보(예를 들어, 어떤 재난이 발생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전달받는 데 소외되는 국민들이 없도록 해, 완벽한 안전장치로서 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재난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행히 이러한 필요성을 미리부터 인지해, 과기정통부 주도로 새로운 재난 경보 서비스의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장점을 살려 촘촘한 안전망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상파 UHD 방송망 기반의 재난 경보 시범 서비스’ 사업을 준비 중이다. 통신망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방송망으로도 긴급 재난 경보 알림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재난 발생 시 즉각적으로 방송 편성이나 방송 영상과는 무관하게 ‘재난 경보 신호’를 담아 주기적으로 송출하는 방법이다. 이 경보 신호 안에는 재난 발생 위치와 시각, 재난의 내용, 재난 시 대피 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면, 기존 단순 문자로만 받아보던 정보 이외에 구체적 재난 상황과 대피 방법 등을 알 수 있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지상파 UHD 방송 기술 표준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재난 관련 기능을 고민해 담아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우선 빌딩 옥상 등에 위치한 전광판과 같이 ‘공공 미디어 성격 의 디스플레이’에 표출할 수 있도록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점차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 있는 디스플레이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나중에는 스마트폰과 같이 개인 휴대용 단말까지 활용 분야를 넓힐 계획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UHD 신호가 안정적으로 수신이 잘 돼야 한다. 현재 4K UHD 방송만 송출이 가능한 규제로 인해, 이동 중에도 잘 수신이 되는 모바일용 신호를 송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함께 수반돼야 한다. 또한, 이 재난 경보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수신기 개 발과 보급도 필요한 상황이다. 단숨에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범 사업 단계부터 차근히 준비해 효과를 입증하고, 원래의 사업 목표대로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본고는 KOBA 2019 Daily News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