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박재성 싱타 대표] 어떠한 관념 중에 컨테이너로 정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해당 관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목적과 정의를 만든다면 컨테이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이 그러하다. 책은 관념적으로 컨테이너다. 해당 컨테이너 위에서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 하위 콘텐츠가 존재한다. 책이라는 관념적 컨테이너 위에서 소설, 시, 잡지, 만화 등 각자 정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존재한다. 책이라는 컨테이너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하위 콘텐츠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상도 마찬가지이다. 최초의 영화를 ‘전함 포탬킨’이라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 이전에 관념적 컨테이너인 영상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면 하위 콘텐츠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뉴스와 같은 각자의 영역을 정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게임은 역사가 짧고 아직 컨테이너에 대한 관념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 관념이 지금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앞으로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 필요가 없는 부분일 것이다. 지금까지 소비자 중 누구도 노력해서 책이나 영상이라는 관념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콘텐츠를 담는 컨테이너는 그저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다. 생각해보자. 게임을 즐긴다고 하는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관념적 컨테이너가 있는가? 대부분의 일반 소비자는 잘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엔지니어들은 아마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 그 답은 다양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을 왜 던지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관념이 형성돼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필자는 좀 다른 방향으로 게임과 컨테이너를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학적 호기심으로 게임이 속한 컨테이너를 정의 내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게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책이나 영상처럼 관념적으로 컨테이너화돼간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질 것이다. 최초의 영화 ‘전함 포템킨’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영화라는 콘텐츠를 바로 정의할 수 있었을까? 그 시기에는 해당 콘텐츠를 통해 영상이라는 관념이 소비자에게 먼저 자리 잡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관념을 바탕으로 수많은 장르의 영상물이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산업화되고 소비됐다.
게임이 영상과 다른 것은 관념이 자리 잡기 전에 콘텐츠가 급속도록 발전하고 산업화했다는 점에 있다. 마치 영상의 전부가 영화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관념 전부가 현재의 장르적 게임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게임이 게임이지 무엇이냐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할 것 같다. 지금은 맞는 이야기이다. 영상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관념화하는 과정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컨테이너와 대상이 개념적으로 혼재돼 있다. 빠르게 자본화돼 가면서 당장 돈이 되는 정의 이외에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 왔다. 게임 산업은 위기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부분은 산업의 관점에서도 중요해지고 있다. 게임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념적으로 컨테이너화돼 갈 수 있으면, 그 과정에서 제작과 소비의 방향성이 훨씬 다양해지고 폭도 넓어질 것이다. 게임을 RPG, 액션, 어드벤쳐 등으로 정해버리는 공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비자는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것이지 재미의 공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을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게임의 정의는 점점 컨테이너화될 것이고, 해당하는 새로운 경험을 주는 콘텐츠가 등장해서 정의돼 갈 것이다. 지금의 여러 게임 회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새로운 회사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정립돼 갈 것이다.
최근 여러 영역에서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통해 세상을 혁신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혁신과 성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의를 계속 써 내려갔다. 게임도 새롭게 쓰이고 있는 정의다. 게임 제작을 꿈꾸는 엔지니어라면 새로운 역사를 쓸 기회가 있고, 그런 도전만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래에는 단지 게임 회사라 불리는 조직도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게임이라는 컨테이너 위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회사가 수없이 생겨날 것이다.
물론 스토리와 영상으로 무장한 방송사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