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에 이어 이번엔 ‘아마존’

[기획] 공룡에 이어 이번엔 ‘아마존’

3512

[방송기술저널=전숙희 기자] 미디어 공룡에 이어 이번엔 아마존이다. 지난해 12월 14일(현지시각) 아마존은 자사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를 전 세계 200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서비스 지역 확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즐길 수 있게 됐으며, 지상파방송의 약세와 OTT 서비스의 빠른 성장,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아마존의 행보가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이미 지난해 1월 7일 정식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초반의 화제성만 보자면 확연한 넷플릭스의 승리다. 해외 OTT의 첫 진출이었다는 점,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오리지널 시리즈의 인기로 이미 한국에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는 점 등 넷플릭스에 유리한 조건은 많다. 그러나 이를 차치하더라도 아마존의 한국 진출은 화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밀히 말해 ‘한국 진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아마존 프라임이라고 하는 아마존 유료회원에게 주어지던 혜택 중 일부였다. 1년에 99달러(약 11만 원)를 내고 프라임 회원이 되면 무료 배송, 프라임 비디오, 프라임 뮤직 등의 혜택이 제공된 것이다. 이를 분리시켜 프라임 비디오 이용 요금을 따로 책정한 것이 지난해 4월로, 아마존이 OTT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사실상 1년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12월 아마존은 서비스 지역을 세계 200여 국으로 확대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서비스 지역 확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에 한국에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이용하려 하면 ‘Service Area Restriction(서비스 지역 제한)’이라는 알림이 뜨며 접속이 불가능했다.

아마존01_지역제한

이번 아마존 행보가 한국 진출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이 지역 제한을 해제한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를 보더라도 번역기를 돌린 어색한 한국어 하나 보이지 않는다. 넷플릭스의 프로그램 특징에서 볼 수 있는 ‘위트 있는’, ‘지적인’ 등의 영어식 형용사의 귀여움은 기대할 수 없다. 그나마 고마운 것은 로그인 후 오리지널 시리즈에 이어 한국어 자막 콘텐츠를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해준 배려일까. 비록 7개밖에 되지 않는 콘텐츠라 해도 말이다. 그중 5개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위트 있는 점이다. 물론, 자막 싱크가 맞지 않는다는 점은 위트 있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재미의 유무를 떠나 아마존이 한국어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한국의 콘텐츠, 한국어 자막 콘텐츠를 다량 업데이트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넷플릭스의 행보를 살펴봐도 분명하다. 한국 서비스 개시 전 넷플릭스는 몇몇 통신업체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진출에 있어 넷플릭스의 약점으로 지적된 것이 한국 콘텐츠의 부족이었던 만큼 어느 업체든 손을 잡고 이를 보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협의 단계에서 넷플릭스가 꽤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소문’이 있었고, 결국 홀로 모습을 드러낸 넷플릭스는 역시나 한국 콘텐츠가 빈약했지만, 마치 이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넷플릭스에는 한국 콘텐츠로 <꽃보다 남자>가 상위에 떡하니 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넷플릭스는 정말 한국 콘텐츠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MBC의 <무한도전>이나 KBS 2TV의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볼 일은 없을 것이며 이는 아마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당당하게 만드는 것일까? 답은 모두 예상하다시피 ‘오리지널 콘텐츠’다. 이 부분에서 넷플릭스는 확고한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다. 여기서 다가 아니다. 부족한 한국 콘텐츠는 ‘한국 맞춤형’ 오리지널 콘텐츠로 극복하려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일본 동명 만화 원작의 <심야식당>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돌아왔다. 출연진에는 영화 <괴물>로 이름을 알리고 충무로의 샛별로 탄탄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배우 고아성도 포함돼 있어 콘텐츠 타깃에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도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진짜’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다. 봉준호 감독, 600억 원의 제작비, 틸다 스윈턴, 제이크 질렌할. 이 가슴 뛰는 모든 단어의 조합은 올여름 선보일 영화 <옥자>다.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고 <설국열차> 이후 봉준호 감독이 선보이는 이 영화가 바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비 전액을 넷플릭스가 투자했다. 극장에서도 개봉할지 등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옥자>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에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넷플릭스02_옥자
넷플릭스와 비교하자면 아마존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부족해 보인다. 일단 수적인 면에서도 채 열 손가락이 꼽히지 않는다. 그러나 원래 프라임 회원에 대한 혜택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제공하는 서비스였다는 점,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시간이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존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특히 아마존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콘텐츠, <The Grand Tour>를 보면 더욱 그렇다. <The Grand Tour>라는 제목이 낯설다면 <Top Gear>는 어떤가? 제러미 클락슨은?

아마존04_그랜드투어

<Top Gear>는 1977년부터 영국 B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자동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2002년 지금의 포맷으로 변화한 후 동시간대 TV 시청률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이 인기 프로그램은 2015년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바로 이 방송 인기의 이유이자 메인 MC를 맡고 있는 제러미 클락슨이 프로듀서를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인종 비하 발언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Top Gear> 안에서 그의 입지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BBC는 결국 진행자 교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내쳐진 클락슨을 받아준 것이 바로 아마존이다.

클락슨이 없는 <Top Gear> 시즌 23의 마지막 에피소드 평균 시청률은 190만 명으로 클락슨이 이끌던 시절 640만 명에 비해 초라한 숫자를 기록했으며, 클락슨의 뒤를 이어 메인 MC를 맡았던 크리스 에번스가 방송을 하차하는 등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The Grand Tour>는 자동차라는 주제부터 출연진, 제작진까지 <Top Gear>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클락슨이 이끌던 <Top Gear>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클락슨에 버금가는 <Top Gear>의 상징인 ‘스티그’도 없고 인기 있던 몇몇 코너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이를 아쉬워하는 팬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히 영국에서 BBC를 떠나 무엇을 할 수 있겠냐 내심 속으로 생각했을 사람들에게는 클락슨의 행보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지상파방송의 경쟁자는 이제 종편이나 케이블만이 아니다.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 OTT 사업자, 이들이 자신만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과 이를 시청자들이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아마존에는 또 다른 무기가 하나 있다. 넷플릭스가 비디오 대여 사업체일 때부터 쌓아온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존에는 IMDb가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가장 대표적인 영화 사이트이자 압도적인 양의 영화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한 IMDb는 1998년 아마존에 인수됐다. 덕분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콘텐츠에는 IMDb 평점이 함께 제공되며, ‘X-Ray’라는 아마존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인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배우와 음악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아마존05_XRay

모든 것이 합쳐지고 통합되리라 여겨졌던 OTT 시장은 예상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너도나도 비슷비슷한 모습을 버리고 확실한 개성을 가진 특별한 내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내보이고, 내 취향과 내 욕구에 적극적인 오늘날 대중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지상파방송의 중간 광고에 대한 한 설문조사에서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질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그저 틀어주면 보던 시대는 끝났다. 내 취향의 콘텐츠가 있다면 국가를 망라해 찾아보고,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기까지 하는 진취적인 소비자. 아마존과 넷플릭스는 이에 응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