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칼럼]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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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오건식 SBS 뉴미디어개발팀 부국장] 칼럼의 주제 찾기를 포기했다. 촛불이 횃불로 바뀐 지금, 무슨 주제를 다룬들 관심을 갖기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작성하기도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논어, 맹자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심지어 삼척에서 멧돼지가 주민을 공격해서 주민이 사망했다는 고인돌 시대 같은 쇼킹한 뉴스도 묻혀버리는 현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번 칼럼은 ‘여기서 끝’. 이렇게 하고 싶지만 ‘국정 농단’에 이어 ‘칼럼 농단’이란 비난을 받을 것 같아서 계속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ㅠ.ㅠ

요즘 들어서 ‘기호 1번’을 찍은 사람들이 ‘내가 이러려고 1번을 찍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2012년으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들 한다. 아 정말 살다 보면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하는 순간들이 가끔 있다. 소싯적 연애 시절 한때, 사귀던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하게 됐던 적이 있다. 그때 몰던 차의 주행거리가 약 20,000km였는데, 10,000km였을 때는 사이가 무척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10,000km를 후진으로 주행하면 혹시 관계가 복원될까 하는 유치찬란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일종의 후진(?) 후진(後進) 타임머신 개념이다. 지금도 가끔 계기판을 조정해 주행거리를 축소 조작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미련함의 어원은 혹시 ‘미련이 남다’에서 온 것이 아닐까?

‘타임머신’이란 주제는 예전부터 물리학뿐 아니라 소설·문학으로도 등장했다. 최초의 소설 ‘타임머신’은 1895년 Herbert George Wells에 의해 빛을 보게 된다. 조지 오웰이 아니라 조지 웰스. 이 소설에는 시간여행자가 약 80만 년 후의 시대에 떨어져서 겪는 일을 그린 것으로, 미래를 Utopia가 아닌 Dystopia로 그린 좀 우울한 작품이다. 소설뿐 아니라 시간 이동에 관련된 영화는 수도 없이 많이 나온 것 같다. ‘Back to the Future’ 시리즈부터 ‘The Visitor’, ‘나비효과’, ‘시간여행자의 아내’, ‘Interstellar’ 등등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물리학적으로는 타임머신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이 갈리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이미 시공간 저 너머에 있다. 인터스텔라에서도 표현이 됐지만 대체적으로 시간 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과거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돼 있다. 기록 방식으로 비교하자면 ‘Read Only’. 다만 암시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끔 예지몽을 꾸었다는 정도로 해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의 염원과 달리 우주는 절대로 쉽사리 그 기운을 모아주거나 도와주지는 않는 것 같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현재를 바꿀 수 없다면 책임자들을 찾아내서 그 책임을 확실하게 추궁하는 것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요즈음 상생의 의미로 좋게 사용하는 단어인 ‘Collaboration’은 프랑스어 사전에는 두 가지의 의미로 기록돼 있다. 1) 공동작업, 협력 2) (제2차대전 비시정부의) 대 독일 협력정책, 대 독일 협력. 따라서 2)번째 의미는 바로 우리가 소위 말하는 ‘부역자’나 부역스러운 행위를 말한다. 얼마 전 K본부의 라디오 아침 방송을 들으니, 프랑스에서 2차대전 때 나치에 부역했던 내용을 모은 역사 전시회인 ‘라 콜라보라시옹’이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일제 강점기 친일 부역자 관련 전시회를 프랑스 파리 시청에서 여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철두철미하다. 그네(진짜 ‘그들’이란 뜻)들 말로는 톨레랑스는 서로 다름에 대한 무차별 관용의 개념이지, 부역자 책임 추궁에는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 한다. 즈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명품 가격을 심하게 차별하면서.

되돌아보면 20세기 들어서 방송기술계의 가장 큰 사건은 DTV 방식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방식인 DVB냐 미국 방식인 ATSC냐 하는 논쟁이 대표적이었다. 10여 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지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함께 지금은 ‘완장 달고 취재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어느 방송사만큼은 일관되게 유럽식을 주장했다. 장단점이 분명 존재했으므로 지금에 와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유럽식으로 결정했더라면 DMB 방송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나라는 자뻑스럽지만 HDTV 선진국이 못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 UHD TV의 표준이 ATSC3.0으로 결정되는 과정과 같이 유연한 협의 과정이 결여됐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UHD TV 주파수 문제가 확대되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8VSB 방식을 주장하면서 정말로 영혼을 가지고 주장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정부나 가전사에서 원하는 대로 별 생각 없이 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결정 후에 유럽 방식을 주장했던 엔지니어들이 마음 편하지 못하게 지내왔던 세월을 돌아보면 기분이 좀 짠하다. 역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 법인가 보다. UHD TV 표준이 합의에 의해 정해진 요즈음 부쩍 나전칠기 전통 공예품이 마음에 든다. 그런 ‘자개감’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