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 먹는 재미

[칼럼] 골라 먹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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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방송사에 있어서 선거 방송이란 일종의 계륵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대략 반나절의 방송을 위해서 몇 달 이상을 준비해야 하고,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는 크게 빛나지 않는 프로그램이 선거 개표 방송인 것이다. 필자가 ‘해 봐서’ 조금은 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개표 방송을 보면서 이전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총선거 개표 방송에 지상파 및 종편 각 사가 나름 기술적인 준비를 많이 했다. 그 결과로 화면에는 로봇 팔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삼국지나 유명 영화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고, 정통파 스타일의 친숙한 개표 화면을 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각 사 엔지니어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선거 후보자 등록 막판까지 후보자가 결정되지 않았거나, 소위 ‘옥새가 나르샤’로 표현되는 사건 등으로 선거 개표 방송 시스템을 Field Test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적었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경의를 표한다. 시청자들은 공천 과정의 혼란을 즐겼을지 모르겠지만 방송 Staff들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리라.

그런데 이번 총선 개표 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채널별로 선호도가 확실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어느 채널이 더 좋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채널별로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전같이 치열하게 경쟁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개표 예측이나 결과를 전하는 포맷의 차이가 연령별, 지역별 시청선호도의 차이를 나았다. 같은 포맷을 사용하면 경쟁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장르라고 하면 굳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같은 개표 결과를 가지고 전달하는 방식을 어느 채널은 보도로, 어느 채널은 예능으로, 또 어느 채널은 보도 제작으로 접근했으니 시청자는 골라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 사 간 선거 개표 방송의 시청률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는 드라마와 다큐를 같은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심지어 기본적인 Stance마저 장르를 달리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보도라면 공정성이 주된 Stance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능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약간 다른 Stance가 허용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스포츠에선 편파적인 중계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다. 크게 보면 전 우주를 통틀어서 정말로 ‘공정함’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한일전 스포츠 중계방송은 전 우주적으로 보면 당연히 편파 방송이다. 이러한 면에서 선거 개표 방송도 볼거리에 비중을 두다 보면 일정 부분 편파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개표 방송 Staff 중 일부는 준비한 메뉴 중에서 ‘보다 센(?)’ 것들이 방송을 타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총선 개표 방송은 이전의 서로 유사한 보도 형태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전체적인 판세나 득표 현황이 궁금한 시청자가 선택하는 채널과 다른 시각과 분석을 제공하는 채널이 공존하는 다양성이 좋지 않은가? 이렇게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송이 돼야 할 이유는 많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시청자층이 세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SBS 초창기에 ‘대결, 20 vs 40’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20대 여러 명의 패널이 한 편, 40대 여러 명의 패널이 또 다른 한 편으로 나와서 퀴즈 등의 대결을 하는 예능 프로였다. 나름 세대 차이를 반영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로부터 20년 정도 흐른 지금은 노령화와 SNS 등장 등의 이유로 당연히 나이대별 구분을 더욱 여러 개로 해야 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애늙은이들’만 따로 구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전같이 간단하게 중장년 대 청년의 구도가 아니다.

다만 대체로 젊은 세대는 능동적이라서 개표 현황을 보고 싶은 지역구가 있으면 선관위 홈피에 접속해서 바로바로 알 수가 있고, 나이 든 세대는 방송에서 보고자 하는 지역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방송사끼리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번 선거 개표 방송은 채널 간 역할 분담이 비교적 잘 된 모범적 경우가 됐다.

앞으로 선거 개표 방송이 보도 프로그램인가, 스토리를 갖는 다큐인가에 대한 시각 차이가 선거 개표 방송의 장르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가 향후 선거 개표 방송에서 메뉴 및 화면 개발의 경향을 결정지을 것 같다. 분명히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취향의 Spectrum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심지어 ‘19금’ 선거 개표 방송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칼럼 쓰시는 분들 중에 마무리를 어떤 식으로 할지 고민인 분들의 공통적인 방법을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