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최근 한국 미디어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그리고 전격적인 발표는 미디어 업계를 놀라움, 충격 속에 빠뜨렸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 기업 간의 인수·합병은 이미 해외에서는 빈번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해외 미디어 기업들은 사업의 다각화와 전략적 제휴, 인수·합병 등을 통해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초국적 자본의 형태로 국경과 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 걸쳐 미디어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미디어 기업들이 다른 상품·서비스 시장으로 진출할 때 활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인수·합병이다.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 진입의 시간을 절약하고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어 급변하는 환경에서 경쟁적 우위를 점하기 수월하다. 또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용이하게 실현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 기업들은 끊임없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향상시키고자 인수·합병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인수·합병은 1980년대부터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미디어 시장에서의 인수·합병은 거대 복합기업을 탄생시켜 소유 집중이나 사상의 자유로운 흐름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고, 적대적 인수·합병의 문제도 제기됐다. 그럼에도 인수·합병은 세계적으로 지속됐다.
미국의 미디어 산업에서는 1980년대부터 인수·합병이 활발히 일어났고, 1990년대 후반에는 거대 미디어 기업 간의 인수·합병이 일어났다. 이러한 인수·합병이 증가한 원인으로는 1996년 통신법 개정과 그 이후에 일어난 규제의 완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꼽을 수 있다. 2000년 발생한 Viacom과 CBS의 합병은 외형상 세계 제2위의 대형 미디어 기업을 탄생시켰고, 시청률 1위 방송사로의 상승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로 인해 Viacom은 세계 최대 규모의 광고 판매업체가 됐고, 제작과 배급의 자연스러운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2001년의 AOL과 Time Warner 합병은 인터넷이 미디어업계의 주류 비즈니스로 확실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두 회사의 결합이 거대한 언론의 독재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미국의 미디어 기업 인수·합병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AT&T이다. AT&T는 미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인수·합병을 수행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본격적인 미디어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AT&T는 2007년 6월, 무선 통신서비스 제공 범위를 확대할 목적으로 Dobson Communications Corporation과 인수·합병 계약을 맺었다. 이 합병으로 AT&T의 음성 및 데이터 서비스의 제공 범위는 미국 13,000여 개 시군, 2억 9천만 명으로 확대됐다. 또한 2005년 1월 31일 SBC는 자신의 모태인 AT&T를 160억 달러에 인수·합병한다고 발표했으며, SBC가 AT&T를 인수하고 미디어 사업자로 변신을 본격화한 2006년 AT&T는 BellSouth를 합병했다. BellSouth 인수를 통해 AT&T는 자신의 IPTV 서비스인 유버스(U-Verse)를 미국 남동부 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유럽에서도 미디어 기업 간에 ‘미국식 합병’이 발생했다. 국가 경제를 초월하는 세계 경제의 엄청난 힘과 인터넷의 위력 앞에서, 유럽의 미디어 회사들이 국경을 초월해 손을 잡은 것이다. 그 결과로 탄생한 유럽의 거대 방송사들은 미국의 세계 지배에 맞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힘을 축적하게 됐고, 광고주들은 보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유럽의 방송 구도 역시, 미국 방송계, 즉 소수의 거대 복합기업에 의해 TV 산업이 지배되는 모습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 유럽의 민영 방송시장에서 거대 미디어 그룹 간의 제휴가 활발히 이뤄졌고, 이러한 제휴에 따라서 방송사의 지분을 매매하고 있다. 또한 1997-1998년 미국통신 시장의 인수합병 물결은 1999년 유럽 통신시장으로 이어졌다. 1999년이 시작되면서 발표된 Vodafone의 AirTouch 인수를 시작으로 유럽 통신시장에서도 대형 통신사업자 간 인수합병이 연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유럽 통신사업자들의 이와 같은 인수·합병 전략의 원인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유럽시장을 선점하는 한편, AT&T 등 대형 미국 업체들과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쟁 확대에 따른 단일서비스 시장의 수익기반 약화를 경쟁력 있는 동종업체의 인수를 통해 창출되는 시너지 효과로 극복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 기업들은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의 규모를 확대하고 방송, 통신 및 융합 서비스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리를 통해 세계의 미디어 산업영역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 한다. 그러나 각국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바는 방송보다는 통신(혹은 융합 서비스)의 영역을 담당하는 사업자의 인수·합병 사례가 활발한 양상이다. 이는 소유집중규제가 상대적으로 방송사업자보다는 통신사업자에 완화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물론 한국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의 경우, 방송사는 제도적으로 지분의 인수나 미디어 기업의 교차소유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그러나 통신사업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완화된 제도적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00년 이후 통신서비스 산업에서 대규모 인수·합병이 증가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장포화로 선진국 시장 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기술 진보와 규제 완화로 국가 및 업종 간 경계가 철폐되면서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유선망 병행을 통한 포괄적인(comprehensive) 서비스며 통신업체와 케이블업체의 전략적 제휴, 점점 심화하는 통신업체들의 국제 분할과 공고화라는 특징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