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흰쥐의 해 방송계 이슈

[신년특집] 2020년 흰쥐의 해 방송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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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 SBS홀딩스 출범(2008.03.03.)

SBS홀딩스(현 SBS미디어홀딩스)가 2008년 3월 3일 창립이사회를 열고 SBS 지주회사로 공식 출범했다. 당시 SBS홀딩스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소유‧경영 분리의 제도화 △SBS와 계열사 간 내부거래 투명성 증대 △콘텐츠 경쟁력 강화 및 사업 경쟁력 제고를 표방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한나라당 언론관계법 저지 총파업 (2008.12.26.)

전국언론노동조합은 “한나라당이 언론장악 7대 악법을 포기할 때까지 언론노조 전 조합원은 언론악법 관련 보도와 제작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거부한다”고 선포하고, 대기업의 방송 진입 허용, 신문의 방송교차 소유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미디어법’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을 2008년 12월 26일 새벽 6시부터 시작했다.

이 파업에는 MBC, SBS, CBS, YTN 등의 방송사와 부산일보, 대구매일신문, 경인일보 등의 지방 주요 12개 신문사와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하는 지면 파업을 벌였다. 많은 시민단체의 지지도 받아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산하 금융노조는 “파업을 지지하고 관련 법안의 강행 처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으며, 참여연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여성단체연합,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민주언론시민연합 등도 파업을 지지하며 언론관계법 개정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2009년 1월 8일 파업을 잠시 중단했지만, 이후 2차례 더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계속되는 갈등과 투쟁의 시작이었다.

◇ 1996년
•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 첫 방송(1996.01.24.)

최고의 업적을 세운 걸작 사극이라는 평을 듣는 KBS ‘용의 눈물’이 1996년 1월 24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용의 눈물’은 의상비에만 10억 원을 사용하는 등 총 1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으며, 출연자 7,950명, 엑스트라 5만여 명이 등장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다. 또한, 규모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건국 초기 조선의 혼란과 정변을 다룬 정치 드라마이자 태조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의 반목과 화해 등을 그린 인간 드라마로, 철저한 고증과 탄탄한 스토리에 대한 평가가 높아 최고의 사극으로 손꼽힌다. 처음 기획 당시에는 104부작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1998년 5월 31일까지 총 159부작으로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 MBC, 강성구 사장 연임 항의 파업(1996.03.14.)

강성구 사장의 연임이 결정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MBC노동조합은 노조원 95.6%가 참여한 파업찬반투표에서 80.8%의 찬성을 받아 1996년 3월 14일 오전 5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했다. MBC노조는 △사장 임명방식의 비민주성 △재임 중 불공정 보도를 주도해 방송을 정권 홍보 도구로 전락시킨 강 사장의 연임 △총선용 정략적 목적에 의한 사장연임에 항의한다고 밝혔다. 결국 24일간의 파업 끝에 6월 강 사장은 사퇴했으며, 7월 이득렬 사장이 취임했다. 이후 강 사장의 연임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가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 SBS, 국내 언론사 최초 토요격주휴무제 시행(1996.04.20.)
SBS 1년여에 걸친 사내 여론 수렴과 노사협의 과정 등을 거쳐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토요격주휴무제를 1996년 4월 20일부터 시행했다. 당시에는 언론사의 토요격주휴무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때로, SBS의 첫발을 시작으로 차츰 언론사의 토요격주휴무제 도입이 늘어 정착됐다.

• SBS 라디오, 국내 최초 ISDN 이용 스테레오 방송(1996.04.20.)
SBS는 국내 최초로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이용해 프로야구 경기중계를 스테레오 방송으로 내보냈다. ISDN은 기존 공중전화망 인프라를 통해 고속 디지털 통신을 하기 위한 통신 규약으로, 최대 128kbps 당시로는 초고속를 자랑했다.

• KBS, 국내 최초 위성 방송 시작(1996.07.01.)

KBS는 1996년 7월 1일 무궁화 위성을 이용한 위성 시험 방송의 첫 전파를 발사했다. 준비를 위해 약 2년이 걸렸으며 세계에서 3번째로 시행한 디지털 위성방송이다. 중국 산둥반도에서부터 일본 일부 지역까지 시청 가능하며 일반 TV 수상기에 수신기를 달아야 볼 수 있는 SHF(Super High Frequency) 방식을 사용했다. 채널은 종합채널과 문화·예술·스포츠채널 등 2개 채널이다.

• SBS, 방송 최초 시청자 시사회 개최(1996.10.26.)

창사 6주년 기념 특별기획 드라마 ‘임꺽정’의 첫 방송을 약 2주 앞두고 SBS는 방송 최초로 시청자 시사회를 개최했다. 시사회는 1996년 10월 26일 오후 6시 과천 서울랜드 삼천리대극장에서 열렸으며, 선착순 2천 명에게 티셔츠와 영상화보집을 증정하고, 주인공인 정홍채, 김원희, 송채환, 전무송 등의 팬 사인회와 전통무술 시범 등을 함께 진행했다.

‘임꺽정’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을 원작으로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쳤으며, 1995년 여름부터 촬영을 시작한 반사전제작 드라마다. 1996년 11월 10일부터 1997년 4월 6일까지 44부작을 방송했으며 충격적 연출과 철저한 시대 고증을 표방해 SBS 사극의 전성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1984년
• KBS, 새로운 심볼 마크 사용(1984.10.02.)

KBS는 디자인 전문 기업인 디자인포커스에 의뢰해 1984년 10월 2일 새로운 심볼 마크로 변경했다. 1960년에 나온 글꼴인 Handel Gothic을 약간 수정한 것으로, 현재까지 사용하며 KBS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1972년
• 남북적십자회담 실황 라디오 생중계(1972.08.30.)
1972년 8월 30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 1차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TBC, KBS, MBC, DBS, CBS 등 5개 방송사는 본회담 광경을 한국 방송 최초로 인공위성을 통해 일본,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 58.4%라는 높은 청취율을 보였으며, 그해 MBC는 보도국에 북한부를 신설하고 CBS는 관련해 철야 방송하는 등 한반도에 찾아온 평화는 방송계의 큰 화두였다.

• 한국방송공사법 제정(1972.12.30.)
국영방송이었던 KBS는 1972년 12월 30일 ‘한국방송공사법’이 제정됐다. 이를 통해 독립된 법인격을 갖추었으며, 국가 예산이 아닌 시청료를 징수해 운영하는 등 독자적 회계권을 행사할 기반이 마련됐다. 다음 해인 1973년 3월 3일 KBS는 공영방송으로써 첫발을 디뎠다.

◇ 1960년
• 방송 역사 최초의 중립화 선언(1960.04.26.)

1958년 12월 24일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대공 사찰 강화와 언론 통제를 내용으로 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야당 의원을 감금한 채 자유당만 출석한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2.4 보안법 파동의 여파는 1960년에도 유지되고 있었으며, 국영방송이었던 KBS의 사정은 여타 방송국보다 심각했다. 정부의 입장을 읽어 내려갔던 아나운서들은 국민의 빗발치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에 KBS 아나운서 28명은 사직을 불사한다는 각오로 △방송은 불편부당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 아나운서 일동은 방송의 중립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공정성을 잃은 모든 편파방송을 거부한다는 내용을 담은 방송 중립화 선언서를 정부에 전달했다. 10년 차 아나운서였던 황우겸은 거수기가 아닌 거구기 노릇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하고 경향신문에 장문의 글을 실어 방송 중립 선언을 대중에 알렸다.

◇ 1948년
• 최초의 해외 중계방송(1948.07.30.)

제14회 런던올림픽의 소식을 전하는 최초의 해외 중계방송이 1948년 7월 30일 방송됐다. 해외 중계방송이라고 해도 파견된 인원은 서울중앙방송국의 민재호 아나운서 1명이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단파로 인도를 경유해 11시 45분부터 자정까지 15분 동안 그날의 경기 소식을 전달했다. 사진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1948년 7월 16일 자 동아일보의 기사다.

• 대한민국 국영방송 발족(1948.10.07.)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이에 광복 후 미 군정청의 감독 아래 있었던 중앙방송국은 정부 수립을 계기로 조선방송협회의 후신인 대한방송협회가 정부 산하로 흡수되고 방송 사업을 정부가 국유화함에 따라 국영방송으로 발족과 동시에 이름도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