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2018년은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다. 시작부터 화려했다.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과 5G 이동통신을 앞세운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정보통신기술(ICT)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전 세계 모든 관심이 대한민국으로 집중됐다. 이어 6‧12 전국동시지방선거, 6월 러시아 월드컵,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그리고 9월 평양 정상회담까지 굵직한 행사들이 연이어 진행됐다. 뿐만 아니라 연말에는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의무전송 폐지 등 정책적 열매도 맺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이룬 만큼 아쉬움도 컸다. 남과 북이 손을 잡았지만 여전히 후속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지상파 방송사의 하락세도 지속되면서 고강도 자구책들이 쏟아졌다. 또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그동안 특례업종에 속했던 방송사들의 밤샘 근무가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촬영 스태프의 죽음으로 제작 현장을 바꿔 달라는 국민 청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 부분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KT 화재 사건은 IT 강국이라던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해묵은 정책 과제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손도 못 댄 채 국회 일정이 마무리됐다. 이에 본지에서는 2019년 방송계의 이슈를 간략히 짚어보고, 각각의 이슈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살펴봤다.
◊ 이제는 지상파 UHD 재난 방송
지난해 말 발생한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는 재난 상황 발생 시 이동통신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서대문과 마포, 중구, 은평구 등 화재가 난 지역 인근 시민들은 통인 장애는 물론 은행, 병원, 약국, 음식점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 이에 화재는 물론이고 태풍이나 홍수 지진 등에서 보다 안정적인 매체인 지상파를 재난 시 좀 더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FM 라디오의 경우 이동통신과 달리 병목현상도 없고, 데이터 스트리밍 방식보다 3~6배 정도 배터리 효율성이 높다. 이 때문에 관련 학계와 업계에서는 “수신칩 탑재 의무화 및 활성화 등 법‧제도적 지원이 조금만 뒷받침되면 재난 시 그 어떤 매체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시작된 지상파 UHD 방송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지상파 UHD 방송에는 재난 정보 알림 서비스 기능이 있어, 여기에 수신 성능이 뛰어난 UHD 모바일 서비스가 결합된다면 안정적인 재난 경보 방송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난 정보 알림 서비스는 재난 발생 시 TV나 모바일 수신기 등이 자동으로 켜지면서 위급 상황을 알려주는 기능으로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인 미국식 표준(ATSC 3.0)에 웨이크업(Wake-Up) 기능으로 포함돼 있다. 연합회는 “UHD 모바일 서비스를 위해서는 스마트폰에 ATSC 3.0 수신칩을 내장해야 하는데 현재 가전사나 정부 그 어느 쪽도 UHD 모바일 서비스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이번 사건을 발판삼아 정부가 소극적이고 안일한 대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UHD 모바일 서비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드디어 시행되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12월 12일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에도 유료방송과 동일한 수준의 중간광고가 허용된다. 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는 지난 1974년 3월 석유파동 당시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지난 1994년 당시 경제기획원도 ‘광고 산업의 불합리한 관행’ 중 하나로 지상파 중간광고 금지를 꼽았다. 하지만 지상파 중간광고 금지에 대한 규제 완화는 종편의 모기업인 신문 업계 등의 반대로 10여 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하다 이제야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방통위는 “최근 유료방송의 광고 매출과 시청률은 크게 증가한 반면 지상파방송 광고 매출은 급감하는 등 방송 환경이 변화한 만큼 매체 간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지상파방송의 공적 기능 및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 등을 위해 중간광고에 대한 차별적 규제 해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1월 말까지 입법예고 및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거친 뒤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의 과정을 거쳐 상반기 중 공포‧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의 반대와 한국신문협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잦아들지 않고 있어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국당 의원들은 논평을 통해 “편파방송 경영부실 KBS 살만 찌우는 중간광고를 즉시 중단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회 상임위 차원 대응, 당 차원의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 등 다양한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강효상 한국당 의원은 지상파 중간광고를 금지하고, KBS 수신료를 전기료와 분리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며, 박대출 한국당 의원도 12월 31일 수신료 납부 방식을 시청자가 선택하고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시 국회 승인을 얻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 ‘종편 특혜 환수’ 시작은 ‘의무송출’ 폐지
방통위는 12월 말 열린 전체회의에서 지상파방송과 종편 채널사용사업자(이하 PP) 간 규제 체계의 차별 해소를 위해 종편의 의무전송 특혜를 폐지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방송법 70조 제1항의 의무송출제도는 상업적 논리로 채널 구성에 포함되기 어려운 공익적 채널 등을 배려하기 위한 제도로 종편PP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종편의 과도한 특혜를 지적하며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특혜 없이 지상파와 종편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종편의 의무송출 폐지를 시작으로 특혜 환수가 이뤄질 것인지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종편은 뉴스 보도, 시사‧교양, 드라마, 오락, 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방송할 수 있는 채널로 지상파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케이블과 위성방송, 인터넷TV(IPTV)를 통해 송출하기 때문에 유료방송 가입 가구에서만 시청할 수 있지만 유료방송 가입률이 90% 이상인 상황에서 그 차이는 무의미하다.
문제는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도 불구하고 종편에만 △의무송출 △1사 1미디어렙을 통한 사실상의 광고 직접 영업 허용 △10번대 황금 채널 배정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종편 개국 당시 ‘후발 사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이라며 다양한 특혜를 부여했지만 ‘지상파 하락세-종편 상승세’가 시장 상황인 만큼 이제는 종편의 특혜를 거두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 역시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비정상의 정상화’ 구현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관련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의무송출 폐지를 시작으로 종편 특혜 환수 작업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5G On Air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지난해 12월 1일 0시를 기해 5G 네트워크 스위치를 올렸다.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 전파 송출과 모바일 라우터를 통한 기업용(B2B) 서비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오는 3월부터는 5G 스마트폰도 출시돼 일반 가입자들도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본격적인 5G 이동통신 상용화 시대가 열렸다.
5G는 이동통신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자율주행, 스마트공장 등 정보통신기술(ICT) 전반의 새로운 촉매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인 만큼 이 시장을 둘러싼 이동통신 3사의 경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신년회 자리에서 “올해는 5G와 AI를 중심으로 가시적 성과를 본격 창출하는 해”라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전혀 다른 업의 경쟁자와 겨루기 위해 더욱 강한 SK텔레콤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창규 KT 회장도 같은 날 5G 속도에서 압도적인 1등을 달성하자고 주문했다. 황 회장은 “기업 전용 5G 등을 통해 기업 인프라를 5G로 전환시키고 통합 오퍼링, 에지 클라우드(Edge Cloud) 등 KT만의 강점을 살려 초기부터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며 “5G에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을 더한 ‘지능형 네트워크’와 에너지, 보안 등 KT의 플랫폼 역량을 융합한다면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역시 5G 성공적 투자와 상용화로 통신 사업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자고 각오를 다졌다.
◊ M&A 물꼬 터지나?
지난해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던 이동통신 사업자의 케이블 인수전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이동통신 3사의 사업 매출을 보면 이동통신 사업의 수익은 하락세를 걷고 있는 반면 인터넷TV(IPTV)를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 사업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미디어 사업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앞으로 몇 년간 IPTV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케이블과 위성방송, IPTV로 나뉘어 있는데 IPTV가 ‘결합상품’이라는 막강한 마케팅 수단을 가지고 있는 만큼 케이블이나 위성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케이블 인수 합병 등이 이동통신사의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LG유플러스는 케이블 사업자인 CJ헬로와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몇몇 언론은 LG유플러스 고위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LG유플러스가 CJ헬로의 경영 자율권을 2019년~2020년 2년 동안 보장하는 조건으로 인수를 추진하기로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CJ헬로의 케이블 가입자는 416만 1,644명으로, 같은 기간 LG유플러스의 IPTV 가입자 364만 5,710명과 합할 경우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24%를 차지한다. 이럴 경우 합산규제 일몰 후 가입자를 크게 늘린 1위 사업자 KT와의 격차는 10% 수준으로 좁아진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인수합병 추진 상황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특정 업체에 제한하지 않고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내년 상반기에 가부를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KT도 위성방송 자회사인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해 딜라이브 인수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T스카이라이프지부는 지난해 12월 성명을 통해 “합산규제 재도입 논란 촉발하고 회사의 이익과 시너지 소명되지 않는 딜라이브 인수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를 추진하고, SK텔레콤이 지상파 방송사의 ‘푹’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연합을 구성한 데 대항하기 위해 KT도 딜라이브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딜라이브의 몸값은 여전히 부담이어서 KT의 딜라이브 인수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