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허위조작정보를 악의적으로 유통할 경우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이른바 ‘허위정보근절법’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과방위는 12월 10일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개최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라 불리는 개정안은 언론사나 유튜브 등이 타인을 해할 악의를 가지고 불법 및 허위조작정보를 고의로 유통하면 최대 5배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앞서 과방위는 지난 8일 소위에서 해당 개정안을 심사하려 했으나 국민의힘이 반발하고 조국혁신당에서 법안 보완을 요구하며 반대해 정족수 부족으로 논의가 불발됐다. 하지만 이날 조국혁신당이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소위에 이어 전체회의 의결까지 이어졌다.
이날 국민의힘은 여당의 강행 처리에 불만을 표하며 표결 직전 퇴장했다.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는 “과방위 전체회의 직전에야 법안이 성안됐다는 것은 과방위원들의 정상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날치기 처리의 증거”라며 “이 법안은 불법 정보의 범위로써 국가를 상대로 증오를 선동하는 내용을 금하고 있다. 인종, 신체, 성별, 지역 등에 대한 증오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몰라도 ‘국가’를 금지해야 할 증오 표현 대상으로 삼는 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야당 간사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표결 직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겠다는 독재적 입법”이라며 “본회의까지 상정된다면 필리버스터로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에 한민수 민주당 의원은 “허위조작정보를 막아야 한다는 간절함에서 이뤄진 개정”이라며 “악의적·반복적인 허위조작정보 유포를 막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동안 언론계는 대기업 및 공직자, 정치인 등 권력자의 손해배상 청구권 배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법원이 조기에 각하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전략적 봉쇄 소송(정당한 비판과 감시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의 소송) 방지에 관한 특칙’을 두기로 했다.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사람은 법원에 중간 판결(각하)을 신청할 수 있고, 법원은 배상 청구한 사람이 공직 후보자, 공공기관장, 대기업 임원 등일 경우 각하 판결 시 공표를 명령해야 한다.
디지털정의네트워크·미디어기독연대·언론개혁시민연대·오픈넷·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참여연대·커뮤니케이션법연구소·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표현의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한국여성민우회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즉각 “졸속 처리”라며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개정안은 모두 허위조작정보를 불법 정보로 규정해 행정규제와 손해배상 책임을 대폭 강화하려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의 기능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크다”면서 “개정안 내용을 일부 조정하였다고 하나 사실상 원안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근본적인 문제는 허위조작정보를 광범위하게 불법화해 유통을 금지하고, 행정기관 심의를 확대하며, 언론에 대한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국가 중심의 규제와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려는 데 있다”며 “비공개 협상으로 처리에 합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정해놓은 수순에 따라 절차를 마무리하려는 것은 명백히 졸속”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지난 10월 민주당에서 해당 개정안을 공개하자 “언론현업단체들이 일관되게 요구한 온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자격에서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기업 제외’가 포함돼 있지 않은 데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라고 했다. 언론노조는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 위축을 불러올 여러 조항이 포함됐다”며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에서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입증 책임 전환’ 조항을 ‘타인을 해할 의도 추정’ 요건이란 조항으로 그대로 옮겨왔고, 8개로 정리된 추정 조건엔 취재원 공개를 강제하거나 내부 제보를 위축시킬 조항 등이 포함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조급하게 당론으로 확정하지 말고 언론계와 시민사회 등의 논의를 통해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