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허를 찔렸다. MBC가 자사 뉴스를 통해 해직 언론인 문제를 보도하자 시민사회단체가 방심위에 공개적으로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7일 서울남부지법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정영하 전 위원장 등 44명이 MBC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해고와 징계는 모두 무효”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는 활동이 종료된 국회방송공정성특위의 해직 언론인 문제 해결을 위한 여야 결의문 채택과 더불어 당시 MBC 노조 파업이 정당했음을 반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진다.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 MBC 노조의 파업이 정당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MBC 사측은 판결이 나온 직후 즉각 항소의 뜻을 밝히는 한편, 다음날에는 김종국 사장 명의의 해명 보도자료 배포와 신문사 광고까지 불사하며 판결의 억울함을 피력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MBC가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측의 입장만 담은 <언론사 파업 ‘공정성’ 내걸면 합법? “논란 부른 판결”>이라는 보도를 내보내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는 방심위가 방송심의규정 11조를 통해 처벌하는 주요근거이기 때문이다.
작년 KBS 추적 60분이 <서울시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을 방송하자 방심위는 즉각 중징계에 해당되는 ‘경고’를 의결했다. 해당 프로그램이 방송심의규정 11조인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한 방송제한’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방송심의규정은 시사 프로그램의 근간을 뒤흔드는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이 상존한다. 그런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는 당시 방심위의 중징계를 비판하며 이를 철회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BC가 해직 언론인 문제와 관련해 사측의 입장을 담아낸 뉴스데스크의 보도를 내보내자 언론시민사회단체는 즉각 방심위에 공개민원을 제기했다. 작년 KBS 추적 60분 <서울시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이 방송심의규정 11조 위반을 이유로 중징계인 경고를 받았으니, MBC 뉴스데스크에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인총연합회,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월 2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 뉴스데스크를 방송심의규정 11조에 의거해 처벌해야 한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물론 여기에는 방송심의규정 11조가 여전히 독소조항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려있다.
동시에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MBC 해직 언론인에 대한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이 나온 1월 17일은 뜻깊은 날이었다”며 “하지만 MBC는 김종국 현 사장과 김재철 전 사장의 입장을 담은 뉴스를 내보내며 자신들의 입장만 강변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현재 MBC 해직 언론인 문제는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이고, 이를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는 당연히 방심위의 중징계를 받아야 한다”며 “정치심의를 일삼는 방심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정말 궁금하다”고 말했다.
방송인총연합회를 대표해 참석한 김광선 PD연합회 정책국장은 “방송심의규정 11조는 여전히 독소조항이며, 이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방심위가 같은 현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해당 규정이 독소조항은 분명하지만, 이를 고수하고 있는 방심위가 KBS 추적 60분 <서울시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과 MBC 뉴스데스크 <언론사 파업 ‘공정성’ 내걸면 합법? “논란 부른 판결”>에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면 반드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이 종료된 직후 곧바로 방심위를 찾아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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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리던 시각, 방송회관 1층에서는 보수성향의 학부모 단체가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막말 트위터 논란을 빚고있는 임순혜 방심위 보도교양방송특위 위원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막말하는 비정상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 방송 콘텐츠의 공정성을 심의·감독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임순혜 위원은 즉각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방심위 입장에서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각기 다른 지향성을 가진 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은 셈이다.
현재 박만 방심위원장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임 위원의 해촉을 논의할 방침이다. JTBC 및 CBS 보도에 대한 방심위의 중징계 결정이 연이어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향후 방심위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