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위기인가 기회인가 ...

한중 FTA, 위기인가 기회인가
‘시즌제’ 등 방송 산업의 선순환 구조 구축으로 ‘위기를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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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중국 거대 자본의 국내 유입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인지 올 한 해 방송 이슈 중 하나가 ‘차이나 머니’다. 제작비를 확보해야 하는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 차이나 머니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다수 업계 전문가들은 막강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로 국내 콘텐츠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차이나 머니가 ‘득’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공미디어연구소 주최로 열린 ‘중국 콘텐츠 산업의 굴기(崛起) 한국의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온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한중 FTA 발효로 중국에서 국내 방송 콘텐츠에 대한 투자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중국과의 공동 제작 및 지분 투입 등은 양날의 검”이라며 “오히려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기업과 한류 콘텐츠 발전에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한중 FTA가 콘텐츠 제작 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동안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일부 제작사들은 중국 시장 진출로 국내 방송 제작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국내 제작 인력의 중국 취업으로 방송 분야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며 장밋빛 전망만을 늘어놨다.

하지만 대다수 방송 전문가들은 “국내 제작업체들은 중국으로의 직접 진출을 희망하고 있지만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중국은 콘텐츠 제작 노하우와 제작 기반만 확보하면 경쟁우위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오히려 우리나라가 콘텐츠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방송 관련 규제기관인 광전총국의 콘텐츠 관련 주요 규제 예를 들면 △외국인 출자 금지 △해외 프로그램 방송량 제한 △해외 드라마 황금 시간대 방영 제한 등과 지난해 1월부터 시행 중인 해외 드라마 및 영화 등 외국 작품 쿼터제는 이 같은 우려를 현실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실제로 쿼터제 실시 이후 중국으로 수출된 국내 드라마의 판권 가격은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박 연구팀장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아시아권 국가들은 대부분 수입 총량제, 프라임타임 편성 규제 등 한국 콘텐츠의 수출을 어렵게 하는 규제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중국은 문화 산업 보호를 이유로 중국 내 한국 프로그램의 방영을 제한한다”며 “오히려 해외 자본에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의 방송 콘텐츠 시장이 중국 자본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중 FTA로 인한 역차별을 언급했다.

콘텐츠 역시 아직까지는 경쟁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김운호 도레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얼마 전 만난 중국의 한 제작사는 5년에 드라마 70편을 제작했다고 한다. 한국의 그 어떤 제작사보다 많이 제작한 것이다. 과연 중국의 콘텐츠 제작력이 우리나라보다 낮다고만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중국의 제작사들은 이제 더 이상 한류 콘텐츠의 리메이크에 관심이 없다. 이제는 중국을 위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팀장도 “중국 취향의 배우가 출연하는 데 이어 중국 취향의 드라마가 제작되고, 중국 상품의 광고가 확대되면 결국 한국과 중국 드라마를 혼돈하게 된다”며 “우리나라의 노하우와 중국 자본으로 성장한 콘텐츠 산업이 ‘한류(韓流)’에서 ‘한류(漢流)’로 교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와 학계에서는 해외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 내수 시장에서 초기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 대표 역시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보통 시즌제 드라마로 진행되는데 시즌제 같은 경우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수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3년 동안 1편의 드라마를 기획해도 딱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고 말아 제작사들이 큰 리스크를 갖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국내 콘텐츠 제작 시스템에 대해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즌제 드라마는 미국과 영국 드라마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안정적인 광고 수주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탄생하게 된 것도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수주와 연결돼 있다.

김 대표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리스크를 지고, 어떤 부분에서 리스크가 발생하겠구나를 명확히 알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며 “리스크를 스튜디오에서 지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모든 리스크를 제작사가 지고 있고, 그 리스크 마저 어느 정도 인지 모르는 채 시작하게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 대표의 지적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대다수 전문가들은 공감을 표했다. 또한 박 연구팀장은 여기에 더해 “중국 자본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자생적인 자본 유입 또는 투자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방송 산업 시스템의 청사진이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