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

[칼럼] C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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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오건식 SBS 뉴미디어개발팀 부국장] 기차표 고무신으로 유명한 동양고무공업은 꽤 오래된 회사이다. 1953년에 설립이 됐으니 사람 나이로는 환갑을 훨씬 넘긴 기업이다. 이 회사의 ‘검정 고무신’은 어르신들이라면 어려서 한 번쯤은 신어보았을 ‘물건’이다. 물론 당대 최고의 브랜드는 국제그룹의 전신인 국제고무가 만든 ‘왕자표’ 고무신이었지만. 동양고무공업은 세월이 흘러 ㈜화승으로 이름을 바꿨고, 1980년대에 ‘나이키’ 운동화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후 나이키사와 결별하면서 독자 브랜드인 ‘Le CAF(르까프)’를 론칭하게 됐다. 이 브랜드는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지금은 다른 이름의 회사가 된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와 함께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그런데 ‘Le CAF’를 브랜드 이름으로 정한 이유가 징하다. ‘Le CAF’는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이 한 말인 ‘Citius, Altius, Fortius(더 빨리, 더 높이, 더 세게)’의 앞 글자를 조합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30년 전이지만 나름 글로벌하게 브랜드 네이밍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요즘은 ‘답정너’도 브랜드 이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사기만 해.

뜬금없이 ‘Le CAF’ 이야기를 한 것은 다시 올림픽 시즌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Citius, Altius, Fortius’는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중계하는 방송사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방송사는 ‘Altius(더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기 위해 올림픽 중계를 타사에 비해 ‘Citius(더 빨리)’ 들어가고, 해설도 ‘Fortius(더 세게)’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시즌이 되면 스타급 앵커에 스타급 해설자가 동원되지만, 소위 말하는 ‘Unsung Hero’인 방송기술 엔지니어가 Back Stage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게다가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 기간을 방송 신기술을 소개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뉴미디어나 새로운 제작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방송기술 엔지니어의 숙명처럼 돼 있다. 올림픽 선발대는 올림픽 개최 수년 전부터 WBM(World Broadcaster’s Meeting) 회의 등에 참가하고, 올림픽이 열리기 최소 2달 전에 미리 가서 현지 IBC 내에 방송사별 중계방송센터를 구축한다. 종목별 HD 중계를 위한 방송센터를 구축하는 것도 힘든데, 인터넷 방송 등 뉴미디어나 각 사 아침 방송 등의 스페셜 프로그램을 위한 현지 생방송 시설이나 네트워크 환경도 만들어야 하는 등 추가적인 업무는 점점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최초로 올림픽을 생중계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지속적으로 방송 신기술이 적용되면서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의 업무는 점점 더 험난해지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일부 종목이 3D TV로 제작돼 국내에서도 별도의 주파수로 3D TV 중계방송이 이뤄졌다. 3D TV 중계의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방송사는 3D TV 편성에 맞춰 별도의 앵커 및 해설자를 동원해서 Off-Tube 형태로 제작 및 송출을 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일부 중계가 4K로 만들어져서 국내에서도 4K UHD로 송출됐다. 지금 열리고 있는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는 개·폐회식 및 몇몇 주요 경기를 8K UHD로 제작 중이고 미국 NBC의 자회사인 NBC 유니버설이 VR로 제작하고 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선수나 지도자를 태우고 ‘카퍼레이드’란 것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만큼은 올림픽 중계 Staff, 그 중에서도 선발대로 간 엔지니어들에게 카퍼레이드를 해주고 싶다. 올림픽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몇 달 만에 집에 돌아오면 아이가 훌쩍 큰 느낌을 받는다는 선발대 요원들 다수의 증언으로 미뤄 이들이 얼마나 올림픽 중계에 열과 성을 다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카퍼레이드는 아마도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을 터이니, 기술인협회 주관으로 자동차 선루프 열고 방송사 앞마당에서라도 해주면 어떨까?

이렇게 방송 엔지니어를 포함한 모든 중계 Staff들의 노력으로 다 같이 올림픽을 즐기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Le CAF 브랜드 이름 속의 그 숭고한(?) 이념을 알고나 있을까 싶다. 올림픽 시즌에는 나이키의 ‘에어포스 로우 올백 화이트’나 아디다스의 ‘이큅먼트 서포트 ADV’ 등의 운동화 보다 올림픽 정신을 계승한 르까프 운동화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참고로 필자는 ㈜화승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았으며, 이 글을 우연히 ㈜화승 관계자가 읽고서 연락을 해오면 흔쾌히 만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가능하면 ‘김영란법’ 발효 전에 빨리 연락 주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