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박종원 전 KBS춘천방송총국장, 정책학 박사]
대변혁기를 맞이한 공영방송
공영방송은 전례 없는 변혁기를 거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과 내란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들은 공영방송 KBS의 공론장 역할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또한, 인터넷이 방송을 대체하는 시기에 공영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5년 만에 개정된 ‘방송 3법‘은 공영방송 체제에 중대한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 법제화, 방송편성규약의 실효성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이사회를 구성하는 지배구조의 정치 종속성을 최소화하고, 사장 후보 추천과 임명 절차를 국민 참여와 면접 과정을 거치도록 개선한 것이 그 핵심이다. 이러한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정권의 ‘낙하산 사장’ 임명을 방지하고, 방송편성규약의 실효성을 확보함으로써 현장 제작자들의 자율성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공영방송은 자신의 공적 책임과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았다. 민주주의 위기 국면에서 국민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공영방송은 제도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적 정당성과 사회적 신뢰를 증명해야 할 책임이 막중해졌다.
기존 방송법의 문제와 공영방송의 현실
윤석열 정부에서 불거진 낙하산 사장의 임명, 노사 단체협약에 명시된 국장 임명동의제 무력화 시도, 제작진과 협의 없는 방송 프로그램의 변경, 앵커 교체, 제작 중인 프로그램의 일방적 폐지 등 다양한 형태로 공정성 및 제작 자율성 침해가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의 낙하산 사장을 통한 공영방송의 장악 실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시급성과 방송편성규약의 제도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박민 사장 재임 시기 ‘편성규약’ 및 ‘단체협약’ 위반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국민 감사 청구와 함께 노동위원회, 검찰청, 고용노동부 및 법원에 고발과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과 행정당국은 경영진의 인사권, 경영권, 편성권 주장을 폭넓게 인정해 공정방송 훼손 논란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는 KBS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특히 방송편성규약과 단체협약의 위반 사례는 이승만 다큐멘터리와 같은 이념적으로 편향될 우려가 있는 방송으로 이어지며,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의 훼손과 정권의 홍보 도구화 비판을 낳았다.
공영방송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선거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한다. 헌법은 이를 위해 공영방송에 방송의 자유라는 기본권적 지위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공영방송 저널리즘 기능의 훼손은 공영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며,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더욱이 유튜브·SNS 등 사적 미디어가 급성장하면서 허위조작 정보가 신뢰 가능한 정보를 대체하고 있다. 확증 편향과 필터-버블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공영방송은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채 플랫폼 지위를 상실했다. 종합편성채널과 다양한 매체의 부상은 공영방송의 위상을 약화시켰고, 정치적 정파성 논란이 재연되며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쳤다. 유튜브 시사 프로그램과 넷플릭스 드라마의 성장으로 인터넷 매체가 공영방송의 기능을 대체하고, 뉴스 유통은 네이버 등 포털 중심으로 이동했다. 시청률과 광고 수입이 급감하면서 공영방송의 정당성이 도전받고 있다. 결국 정치적 종속과 내부 자율성 상실은 공영방송 무용론을 확산시키며, 제도적 위기를 초래했다.
네트워크 시대, 공영방송의 정당성
방송 3법 개정으로 사장, 이사회 등의 지배구조가 불안정한 시기에, 공영방송 KBS가 혁신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가운데, 최근 MBC 공영미디어연구소에서 ‘공영방송 제도 혁신과 재원구조의 재설계“라는 주제로 세미나 개최하며 공영방송 혁신 논의를 촉발했다. 인터넷이 방송을 대체하고, 공영방송의 신뢰가 바닥인 시기, 공영방송 무용론이 제기되는 네트워크 확장의 시대에 가짜뉴스, 필터-버블, 파편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영방송은 공영미디어로 진화해야 하며, 민주 사회에서 공론장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조항제, 2025)하다. 특히, 세미나에서 제안된 공영방송 협약제도 도입, 공영방송재정위원회 법정 기구 기구화 설치 등 다양한 공영방송 혁신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공적 책무와 공적 재원을 일치시키는 규제 체계
현행 방송평가와 재허가 제도는 공영방송에 요구되는 차별적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고 공영방송이 자신의 공적 목적에 복무하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사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영성과 그에 부합하는 공적 목적,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역할 수행에 적절한 재원 규모 및 조달 방식을 결정하며, 성과 평가와 환류(feedback)에 이르는 과정을 총괄하는 총체적인 제도 개편 필요성을 제안했다. 공영방송 협약제도는 민영방송과 차별화되지 않는 공영방송의 재허가 제도를 개선하고,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의 목표에 대해 정부와 협약을 통한 이행 점검으로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을 제고하자는 취지다. 공영방송은 협약 기간 동안에 법적인 의무 사항과 자율적으로 설정한 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독립성을 보장받고 불필요한 정쟁에 휘말리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며, 동시에 책무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보장받는 대신 재원 사용의 투명성과 설명책임을 다하는 식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협약의 핵심 목적은 공적 책무를 이해하기 위한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수신료 등)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데 있다(홍종윤, 2025).
또한, 공영방송의 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영방송의 재정수요에 따라 수신료가 합리적으로 산정되고 배분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법제화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수신료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수신료 회계분리’를 도입하고 현행 가구당 TV수신기에 부과하는 수신료를 ‘이용기기’, ‘이용자’로 확대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그리고 지역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로 지역소멸 대응을 명시하여 지역 공영방송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칭 ‘공영방송재원위원회’(수신료산정위원회 수신료위원회, 공영방송수신료위원회 등) 설치가 제안되었다. ‘(가칭)공영방송재정위원회’는 방송법에 의한 법정 기구로 경영, 회계, 미디어산업, 미디어경영, 미디어기술 등 9인 이내의 전문가로 구성하며,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되,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TV방송 수신료 외에도, 공영방송 협약제도에 따른 공적 책무를 실천하기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재원(공적재원과 상업재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공영방송의 책무 이행에 필요한 공적재원의 적정 규모에 대한 산정 – 징수 – 배분, 평가, 관리 감독하는 역할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공영방송의 재원 산정은 공영방송협약 체결을 통한 책무 수행을 목적으로 지원되는 공적 재원, 상업활동(광고 및 협찬, 동산 및 부동산 수입, 투자 및 금융 수입 등)을 통해 확보한 상업 재원 등을 포함하는 전체 재정 상황을 파악하고 적정 수준의 공적 재원 규모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기 위함(최세경, 2025)이다. 또한 지역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에 ‘지역소멸 대응’을 명시하여 정부의 공적 재원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 MBC의 재난방송에 대한 수신료 지원 근거를 확대하자는 취지이다.
공영방송 협약 제도 및 공영방송재정위원회 설치 쟁점들
공영방송 협약 제도의 목적은 공영방송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민영방송과 규제 차별성을 확보함으로써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수행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수신료 등 공적 재원 확보하는 정당성을 높이고,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및 규제 체계를 현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궁극적으로는 협약을 통해 공영방송의 공적 콘텐츠의 사회적 확산을 촉진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며, 책무성을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 협약 제도의 취지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우려와 문제점도 적지 않다.
첫째, 협약제도는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협약 제도는 공영방송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항상 옳고 선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권위적이거나 공영방송을 통제하려는 세력에 의해 이용될 경우, 협약은 오히려 강력한 통제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정치 종속을 막기 위해 추진된 방송 3법의 개정조차 최소한 야당의 합의를 얻지 못했고, 여전히 야당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정치가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현실은 협약제도가 정권의 성향에 따라 언제든 강력한 규제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협약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의 경우, 대체로 다수결 정치보다 협치와 합의 정치가 더 발달한 국가들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협약제도는 정권의 성향과 정치 문화에 따라 공영방송을 지배하는 강력한 규제로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공적 재원 확보 과정에서 정치적 종속성 문제이다. 수신료나 시청각미디어발전기금 등 공영방송의 주요 재원을 증액하려면 여전히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설령 공영방송재정위원회를 통해 공적 책무가 명확히 규정되고, 재원 확충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이 정치권에 있는 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발표자가 지적했듯이,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수준과 재원 규모 간의 괴리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러한 불균형은 결국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치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재원 구조는 공영방송이 본래의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지속적인 제약이 될 것이다.
셋째, 공영방송재정위원회 도입은 공영방송의 옥상옥 규제가 될 수 있다. 현행 KBS 이사회 – 방통위 – 국회의 단계에서 공영방송재정위원회가 추가됨으로써 중복 규제의 우려가 있다. (가칭)공영방송재정위원회는 독일의 수신료산정위원회(KEF) 모델을 참고한 것인데,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공영방송 이사회가 직접 수신료 산정 책임을 맡고 있다. 수신료의 산정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만약 재정위원회가 공영방송의 수신료 산정·인상·평가를 포괄적으로 담당하게 된다면, 현행 KBS 이사회는 단순한 감독기구로 축소되거나, 경영진이 참여하는 집행이사회 형태로 개편되어야 한다. 현재 KBS 이사회는 공적 책무, 기본 운영계획, 예산 및 자본계획, 방송정책 등 전반에 걸쳐 포괄적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재정위원회가 수신료 산정권(예산, 편성, 정책)과 방송 정책 전반의 권한을 가진다면, KBS 이사회의 역할은 중복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넷째, 수신료(또는 시청각미디어기여금) 재원을 공적 콘텐츠 제작 실적에 따라 분배할 경우, 재원의 분절화와 비효율성이 발생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정부가 BBC 수신료를 분리하여(top-slice) 다른 공적 콘텐츠 제작자에게 경쟁적으로 배분하자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으나, 이는 BBC의 핵심적인 공적 콘텐츠 제작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이러한 경쟁적 배분 방식은 배분 대상의 공정성(공적 지배구조), 집행의 투명성, 성과 측정의 객관성 등에서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울러 이를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예: 재원위원회)을 운영해야 하므로, 행정적·관리적 비용이 과도하게 증가할 가능성도 크다. 결국 공영방송 재원을 경쟁적으로 분할하는 방식은 공적 가치 창출보다는 공공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발표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공영방송재정위원회는 재정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전체 수입 규모와 추세를 분석하여 경영 및 재정 전략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는 수신료를 비롯해 각종 기금, 정부 보조금, 광고 수입, 협찬, 프로그램 판매, 지식재산(IP) 수익, 금융 및 부동산 수익, 적립금 및 이월금 등 다양한 형태의 공적 재원이 포함된다. 또한 재정위원회는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과 상업적 활동(광고·협찬, 부동산·금융 수익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적정 수준의 공영 재정 규모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이 실제로 운영될 경우, 방대한 재정 자료를 관리하고 분석해야 하는 별도의 대규모 조직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행정 효율성 저하와 조직 비대화, 권한 중복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결국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
KBS는 낙하산 사장의 방송편성규약 및 단체협약 위반, 그리고 정부의 일방적인 수신료 분리징수 조치 등으로 인해 신뢰 하락과 재정 위기를 동시에 겪어 왔다. 그러나 최근 수신료 통합징수법의 통과와 방송 3법 개정을 계기로, 공영방송은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치에 종속된 지배구조를 넘어, 제작 자율성을 확대하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여전히 공적 콘텐츠를 제작할 만한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신료 인상 등 공적 재원을 확충하는 길도 멀기만 하다. 결국 공영방송의 핵심 과제는 공적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유지할 것인가이며, 이러한 문제의식이 공영방송 협약제도와 공영방송재정위원회 법정기구 설치라는 구상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협약제도와 재정위원회는 정권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이 있고, 중복 규제의 우려가 있어 제도적 측면에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공영방송의 재원 구조로는 넷플릭스나 대형 외주제작사 수준의 드라마·예능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렵기다. 단순히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제작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의 본질적인 혁신은 안정적인 공적 재정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향후 핵심 과제는 공적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공공미디어 영역에서 공적 콘텐츠의 질적·양적 생산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에 있다. 공영방송이 진정한 공공성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성과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의 확립이 동시에 보장되어야 한다. 결국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의 확립은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과 직결되어 있다.
방송 3법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속도의 개혁’이었다면, 공영미디어 제도의 개혁은 사회적 숙의와 협력이라는 ‘협치의 개혁’이 되어야 한다. 비판적이라도 건설적인 논의를 제안하는 학회와 시민사회를 배제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방송 3법은 야당의 반대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그 결과 정권 교체에 따라 법이 언제든 다시 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를 남겼다.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과 재원 보장은 특정 정당이나 집단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공감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 시민사회와 여당 주도로 이루어진 방송 3법 개정이 다수결로 통과되었다 하더라도, 건설적인 제안을 해 온 학계와 시민사회가 배제된 점은 분명히 되돌아봐야 한다. 앞으로의 공영방송 개혁은 정치적 이해를 넘어선 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공영방송은 정치적 개입으로 정체성이 훼손되고 신뢰도가 추락했으며, 수신료 인상의 잇따른 좌절과 징수제도의 변화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수신료 통합징수 제도 법제화와 방송 3법의 통과로, 공영방송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제 공영방송은 외부의 제도적 변화에 맞춰 혁신을 통해 신뢰와 품질로 국민에게 응답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정체성은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계엄과 내란을 거치며, 민주주의 체제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경험했다. 따라서 공영방송은 공론장의 핵심 축으로서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정체성은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고 사회적 통합과 공적 담론을 이끌어가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일은 공영방송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확립될 때 우리 사회는 갈등을 넘어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날 인터넷 중심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의 시청률이 하락하고 있는 지금, 모든 시민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양질의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콘텐츠의 도달률과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은 이제 단순한 ‘방송’을 넘어 공공서비스미디어(public service media)로 전환해야 한다.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과 디지털 환경 속에서 공영 콘텐츠가 쉽고 저렴하게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향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을 넘어 민주주의의 강화와 사회통합을 실현해야 한다. 방송 3법 개정이 외부의 제도 개혁을 통해 공영방송 혁신의 길을 열었다면, 이제는 공영방송이 스스로 정체성을 세우고 국민에게 응답해야 할 때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역시 공영방송이 혁신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변화의 시대에 공영방송이 존재 이유를 되찾는 길, 그것은 바로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