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다 치열한 선거 개표 방송

[칼럼] 선거보다 치열한 선거 개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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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총선거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총 60% 이상을 당선시켜서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여당과 그럴 수는 없다는 야당(들)의 결기가 부딪치는 선거가 될 것 같다. 물론 선진화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 그대로 국회 선진화법이 무력화되면 혹시 후진 국회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행제도로는 매 10년간 대선, 총선 및 지방선거와 같이 큰 선거가 평균 7번이나 있게 돼서 방송사엔 나름 큰 부담이다. 이제는 지상파 3사뿐 아니라 YTN 및 종편 채널까지 가세해 선거 개표 방송은 질뿐 아니라 양적인 면에서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게 됐다. 각 사는 선거일 최소 약 6개월 전부터 선거 방송 TF를 결성해 개표 방송에 대비한다. 어떻게 보면 국가적으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지만 좀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다. 10여 년 전부터는 개표실황 방송뿐 아니라 결과 예측을 위해 출구조사를 하고, 출구조사 결과를 투표 종료 시에 그래픽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출구조사의 응답률, 응답자의 응답 성향 및 투표 막판의 투표 성향을 반영하기 어려운 점들로 인해 출구조사 결과가 개표 결과와 달라서 가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부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지난 선거 중에서 1987년 대선은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선거였다. 1987년도 대선에서 1등, 2등 및 3등을 한 후보가 각각 1988년, 1993년 및 1998년에 대통령 취임을 순서대로 하는 진기록을 연출한다. 결과론이지만 아마도 전 세계에 선거 득표순으로 세 후보가 줄줄이(?) 대통령이 되는 기록은 우리나라 빼고는 없을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었던, 나름 공정한(?) 시기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중국의 전인대에서 차세대 지도자를 미리 뽑는 것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1987년 대선 개표 방송에서 특이한 점은 선거 약 보름 전쯤에 갑자기 합동 방송으로 바뀐 것이다. KBS와 MBC는 각각 대선 개표 방송을 준비하던 차에 갑자기 KBS가 키가 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서로 칼(?)을 갈던 양사가 같이 칼을 쥐어야 하는 처지가 돼서 내심 껄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거의 ‘적과의 동침’ 수준이랄까. 그 당시에는 경쟁을 위해 각 사별로 선거 개표 방송을 위해 특화된 문자발생기를 개발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됐었다. 지금보다 CG 화면이나 애니메이션 품질의 H/W 성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시대였으므로.

2000년대 중반까지는 각 사가 선관위 데이터를 보다 빨리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았던 때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집에 TV를 3대 이상 놓고 각 사의 개표 방송을 동시에 비교하는 것도 아닌데, 서로가 자사의 집계 데이터가 타사에 비해 빠르다고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선관위 공식 집계 데이터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계를 하기 위해 각 사는 전국의 개표소에 자사 직원을 파견하던 시절이었다. 각 사간 개표 데이터 집계시간의 차이는 길어야 불과 1분도 차이 나지 않았지만 종종 이러한 과열은 선관위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도토리끼리 키 재기 하면 혼난다고.

선거 개표 방송은 방송사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프로그램이다. 당연하게 다양한 코너 및 볼거리가 사전에 준비된다. 그래서 개표 방송 진행을 위해 콘티를 정성스럽게 작성하지만, 선거 개표 방송만큼이나 콘티가 초반부터 무너지는 프로그램도 드물 것 같다. 특히 당선자가 많은 총선의 경우 수많은 속보나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공들인 사전제작물이 빛을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가상스튜디오 코너는 어느 방송사나 들인 노력에 비해 사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 같다. 속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편리성 때문에라도 전체 개표 방송 시간의 80% 이상을 CG 화면이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각 사는 제일 먼저 차별화된 CG 화면으로 경쟁을 하고 있다. 한때는 엄숙하게 실시간 3D CG 화면으로 승부하기도 했으나 생각만큼 시청자들의 반응이 크지 않았었다. 요즈음은 선거 개표 방송 자체가 보도 프로그램이라고 하기보다는 예능 프로그램화돼서 코믹하거나 게임을 연상시키는 화면이 대세인 것 같다. 그리고 메인 화면과는 별도로 상시 표시되는 하단 자막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특히 모 본부의 주유 미터기를 연상시키는 하단 화면은 선거 개표 방송 화면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도 있다. 심지어 하단 화면은 광고 방송 중에도 표출이 되기도 한다. 광고주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광고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선 방송의 경우 당선인이 확정되면 당선인의 동선을 담고자 이동 통신망을 이용한 오토바이 등의 중계가 이뤄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위험하지만, 선거 개표 방송이 모바일 중계 기술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한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바일 중계를 통해 대선 당선인은 꼭 야밤에 안자고 어디론가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끔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심각하게 서로가 잘났다고 하지만, 구경하는 어른의 경우에서 보면 유치해 보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별것도 아닌데, 각 사는 선거 개표 방송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나고 나니 싸우면서 많이 큰 것 같다. 이전에는 선거 개표 방송을 위해 일종의 ‘신사유람단’을 꾸려서 해외견학을 갔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선거 개표 방송이 ‘한류’ 콘텐츠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선거 개표 방송에 각 사는 또 어떤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나올지 궁금하다. 각 사간 선거개표방송 경쟁과는 별도로 이번 총선에서는 방송과 방송 기술을 이해하는 진실한(?) 사람들이 당선됐으면 좋겠다. 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