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박종원 전 KBS춘천방송총국장]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방송3법 추진에 이어, 방송·통신 규제 체계를 정립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이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역대 정부는 미디어 규제 체계에 있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노무현 정부의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체제, 이명박 정부의 통합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박근혜·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분리 체제가 그것이다. 새로운 미디어 거버넌스 체계의 필요성은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에서 불거진 공영방송 등 공공미디어 장악 문제를 해결하려는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방통위는 KBS 이사장과 이사를 해임하여 이사회를 재편하고, KBS 사장까지 해임했다. 또한 대통령실의 지시로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을 일방적으로 강행하여 KBS의 운영 재원을 압박해 공영방송을 통제하기도 했다. 심지어 방통위원장이 특정 공영방송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직접 문제를 제기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당 방송사에 대한 심의 및 조치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전KDN, 한국마사회 등 공적 지분을 가진 YTN을 유진그룹에 매각하는 것을 승인하며 공적 미디어의 사유화를 주도했고, 서울시의 공적 미디어인 서울교통방송(TBS) 예산 지원 중단에 대해서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공성을 증진해야 할 방통위가 오히려 방송 장악의 전위대 역할을 자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여기에 미디어 콘텐츠 규제 권한이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화체육관광부로 나뉘어 있어, 각 부처의 관점 차이와 정책 목표의 불일치로 인해 효과적인 미디어 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 결과, 현행 미디어 거버넌스는 급성장하는 인터넷 미디어와 OTT 시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혁신을 저해하는 등 스마트 미디어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미디어 분야에 누적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 초기에 방송·통신 미디어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미디어 정책 및 규제 측면에서 살펴보면, 미국은 시장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반면 유럽은 공영방송에 대한 강력한 보호(규제)를 통해 국가 문화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사회문화적 목적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의 미디어 규제 원칙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여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최우선하고 있다. 공영방송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미디어 규제 체계는 유럽의 규제 방식에 더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미디어 규제 원칙은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여 민주주의 체제를 공공히 하고, 미디어 기업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여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며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 K-콘텐츠 산업의 기반을 조성하여 콘텐츠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해야 하는 과제 또한 포함된다.
최근 민주당 방송콘텐츠 특별위원회(이훈기 의원)는 미디어 관련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세 가지 안을 제안하고, 이를 국정기획위원회에 전달하였다.
– △미디어콘텐츠부 + 공영방송위원회 (미디어콘텐츠부 내 행정위원회): 현재 방통위 소관 업무를 미디어콘텐츠부에서 총괄하되, 공영방송 관련 규제 사항에 한해 부처 내 행정위원회인 ‘공영방송위원회’가 담당하는 방안이다.
– △미디어콘텐츠부 + 공공미디어위원회 (독립형 위원회):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화체육관광부에 분산되어 있는 방송·콘텐츠 관련 업무를 독임제 부처로 이관하고, 방송 관련 규제 기능은 신설되는 합의제 독립 위원회인 ‘공공미디어위원회’로 이관하는 방안이다.
– △확대형 방통위: 현행 방통위 업무에 과기정통부 내 유료방송 업무 등 ‘방송진흥정책관’ 업무를 이관하는 것이다.
개편안의 쟁점은 분산된 미디어 규제 기능을 통합해서 효율적 미디어 진흥을 위해 합의제 기구가 아닌 정부 부처로 해야 한다는 독임제 주장과 현재의 방통위에 미디어 관련 다른 부처의 기능을 통합하자는 합의제 기능을 확대하자는 주장으로 압축된다. 또한, 공영방송위원회만 별도로 위원회로 둘 것인지, 아니면 공영방송과 민영과 보도채널을 가진 종편을 포함하는 공공미디어위원회를 둘 것인지로 요약된다. 만일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정부 조직법 개편의 단기적 대안을 찾기 어렵다면 중단기의 미디어혁신 범국민협의체에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디어 규제 체계를 독임제+위원회 형태로 갈 것인지, 확대된 방통위 형태로 갈 것인지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 규제 특성과 거버넌스의 개념에 대한 이해로부터
미디어 거버넌스 체계의 난점은 헌법에 명시된 방송의 자유를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공고히 해야 하는 합의제적 기능과 미디어 관련 규제의 효율적 진흥 및 집행을 담당하는 독임제 부처의 역할이 조화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방송(미디어) 규제가 헌법에 보장된 필수 기본권인 방송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 거버넌스 규제 체계를 고려할 때 다음 사항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방송(미디어)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함께 헌법이 보장하는 필수 기본권이므로, 정부의 미디어 거버넌스가 함부로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 특수성을 가진다. 둘째, 방송의 자유 기본권을 수호해야 하는 규제기관의 역할과 규제 방식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개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통상 거버넌스란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형태의 네트워크와 토론의 장을 통해 의견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공공영역에서 집합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자, 참여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경제 정책이나 미디어 분야에서는 국가 중심의 역할이 점차 감소하고 사적 영역과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 세력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미디어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은 시민사회, 사회 운동, 그리고 능동적인 시민의 참여와 숙의적 의사결정 과정을 포함한다. 즉, 거버넌스는 단순히 ‘통치(Government)’가 아닌 ‘협치(Governance)’를 의미한다. 이는 국민주권이라는 정부 명칭에 걸맞게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미디어 규제 및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미디어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미디어 규제 체계가 협치나 이해 당사자 의견 조정을 통한 ‘거버넌스’라기보다 국가 주도의 ‘통제와 통치’에 가까웠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콘텐츠와 플랫폼의 산업적 측면에서는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여 신속한 결정을 통해 미디어 산업의 성장과 진흥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처럼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며,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측면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미디어 거버넌스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 거버넌스 체계 구축은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며, 이러한 규제 체계와 정부 조직 개편이 향후 미디어 발전에 어떠한 형태로 영향을 미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헌법적 가치를 보장하는 독립적 미디어 거버넌스 체계
방송(미디어) 규제는 국민의 방송 자유 보장, 미디어 산업 진흥,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출현에 따른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국민의 미디어 공공복리 증진을 이루는 미디어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헌법의 기본권인 방송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할 수 있는 미디어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가 방송의 자유를 수호하고, 방송 규제 기구가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없도록 독립된 행정위원회 형태의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방송의 자유 보장을 위한 미디어 거버넌스는 독립된 행정위원회 형태로 운용되어야 한다.
둘째, 거버넌스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 세력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방통위를 동원한 공영방송 장악의 폐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진정한 거버넌스 정신을 구현하려면 다양한 이해 세력이 참여하여, 정치가 주도해 온 ‘통제’의 개념을 ‘거버넌스’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가칭 ‘공영(공공)미디어위원회’는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다양성을 바탕으로 협치 정신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여기서 위원회의 위원 구성은 전문성과 다양성, 협치의 정신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 규제를 독임제로 한다거나 정부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 독임제 형태에서 독립된 행정위원회로 두자는 주장은 방송의 자유와 미디어 거버넌스 원리에 역행한다.
세 번째 원칙은 미디어 거버넌스가 국민의 미디어 공익과 복리 증진을 위한 것이라면, 공공영역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규제 이념과 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4개의 종합편성채널 허용, 통신기업의 IPTV 진입, 그리고 넷플릭스 등 OTT의 급성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공공미디어 영역은 쇠락했다. 공공미디어가 자본과 시장에 잠식당한 것은 공공미디어 철학의 부재이자 정부 규제의 실패를 의미한다. 특히, ‘지상파 독과점’이라는 프레임으로 지상파방송과 공영방송의 공공성 확장을 가로막는 규제 형태는 재조정되어야 한다. 공공미디어가 거대 미디어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수신료, 방송발전기금, 정부 예산, 광고 제도 등을 포함한 어느 정도의(최소한) 공적 재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결국, 공영방송(지상파방송 포함)의 공공 콘텐츠와 플랫폼이 확장될 수 있는 미디어 규제의 철학과 이념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목표 지향점이 뚜렷해야만, 그 규제 철학과 이념에 적합한 방향으로 법과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외국의 경우 규제(Regulation)를 해당 영역이나 분야를 보호(Protect)한다는 개념으로 인식하지만, 우리는 규제를 강화의 개념으로 공영방송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규제(보호)의 본래 의미를 살려, 공영방송과 지역방송처럼 공적 책임이 큰 미디어가 다른 상업 미디어의 영향력에 잠식되지 않도록 공공미디어의 공적 영역을 보호해야 한다. 공공영역을 보호하려는 관점은 공영방송을 포함한 공공 콘텐츠 및 플랫폼을 어떻게 보호할지 설정하는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와 설정은 그동안 제기되어 온 공영방송과 민영방송, 유료방송 간의 규제 차별화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독립된 공영방송위원회로 갈 것인지, 아니면 확대된 공공미디어위원회로 갈 것인지의 쟁점은 결국 방송의 자유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필수 공공영역으로서의 방송(미디어)을 어디까지 획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이는 미디어의 영향력 등을 고려한 공공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미디어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공정 경쟁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동안 미디어 규제 체계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미디어 산업의 혁신 성장을 촉진하지 못했다. 또한, 콘텐츠 및 플랫폼 관련 규제가 분산되어 정부 부처 간에 정책 이견이 발생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K-OTT 콘텐츠와 플랫폼의 글로벌 강국 도약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혁신 기업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규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미디어의 혁신 성장을 촉진하려면 과거의 사전 규제 방식(포지티브 규제)에서 사후 규제 방식(네거티브 규제)으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물론, 미디어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혁신 성장을 위한 네거티브 규제는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 혁신을 가로막지 않고 기존의 미디어와 공존할 수 있는(매우 이상적이지만) 경쟁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미디어 거버넌스 체계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기업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Governance)이 수반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원칙은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여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 기반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독임제 부처나 부처 내 행정위원회 형태로는 공공미디어의 방송 자유를 절대로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권위적인 정부 시절에 역사적으로 경험했다. 따라서 공공미디어에 대한 규제는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 체계에서 정치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다양성을 확보하여 협치의 정신으로 미디어 규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저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미디어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은 방송의 자유를 보장해 민주주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미디어 기업의 공정 경쟁을 유도해 국민의 미디어 복지를 증진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 목표, 원칙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거버넌스는 단순히 규제 기구와 규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버넌스는 국가, 공공, 사적 활동들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거버넌스는 어떤 공적 조직이 사회가 부여한 임무를 적절히 이행하고 더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해당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디어 규제 기구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미디어가 갖는 특수성과 함께 ‘협치’와 ‘조정’이라는 거버넌스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