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사고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칼럼] 방송 사고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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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오건식 SBS 뉴미디어개발팀 부국장] “The buck stops here”.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했다는 명언이다. 여기서 buck의 사전적 의미는 ‘포커 등에서 패를 돌릴 차례가 된 사람에게 두는 물건’이라고 한다. 아마도 Winner Deal이 아니라 Order Deal인 경우에 순서를 기억하기 위한 물건인 것 같다. 따라서 직역하면 “내 차례야”라고 해석이 되며, 의역을 하면 “내 책임이야” 정도의 뜻이 될 것이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이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정의 최종 책임자라는 트루먼 대통령의 철학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사건·사고는 갈수록 많이 발생하는 데 비해 사고 원인과 책임자 규명이 어려워지는 현재 상황에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문구인 것 같다. 국민의 세금이 엄청 들어갔지만 않느니만 못한 사업들, 심지어 원상 복구를 위해 세금이 더 들어가야 하는 사업들까지 벌어지지만 속 시원하게 누구누구의 잘못이라고 귀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혹자는 전관예우 때문이라고 하고, 혹자는 헬조선 때문이라고 하고, 혹자는 간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사회생활하면서 ‘내 책임이야’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심지어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누구 책임인지 모호한 경우도 많이 생긴다.

방송사 TV, Radio, DMB나 UHD TV 주조정실에 여러 번 있어 본 적이 있다. 근무한 것이 아니라 그냥 공간을 체험한 것이므로 참관 정도로 이야기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느낀 점은 주조정실 엔지니어들이 무척이나 바쁘다는 것이다. 운행은 대부분 자동화됐지만 부가적인 프로세스가 너무 많아져서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채널이 많아지면서 방송사 간 경쟁이 심화됐고, 그 결과 자뻑(?)을 위해 송출해야 하는 예고나 자막 등의 종류는 더 많아졌다. 자뻑은 주로 자사 관련 프로그램 홍보이긴 하지만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삽입해야 하므로 신경이 엄청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언뜻 화면만 봐서는 지상파인지 유료채널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이전의 운행에서는 콘텐츠가 거의 100% 방송용 테이프로 전달됐으므로 소스 자체는 차라리 단순한 면이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 스토리지 기반의 자동 송출 시스템으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콘텐츠 소스는 여러 가지로 많아졌다. 심지어 프라임타임 드라마의 경우 콘텐츠가 여러 개의 테이프로 나뉘어 오는 경우엔 스토리지에 인제스트 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서 송출 시 Back-up 재생이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Off-Road를 스페어타이어 없이 운전하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그런데 프로그램이 여러 개의 테이프로 나뉘어서 와도 시청률이 좋으면 그 책임 소재는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많다. 엔지니어는 이 경우에 허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주조정실 엔지니어가 시청률을 고려해 시청률 좋은 프로그램 송출에는 최선을 다하고, 그저 그런 프로그램 송출은 건성건성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주조정실 시스템이 복잡해진 만큼 사고의 위험도 커진다. 체크에 체크를 더하지만 사고 건수는 획기적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일단 방송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벌어진다. 원인 파악을 명확히 하기 위해 로그 파일을 분석하기도 하고, 심지어 스위처의 어떤 키를 어느 순간에 조작했는지를 알기 위해 스위처 키패드 부분만 상시 녹화된 동영상을 재생하기도 한다. (이 동영상에는 개인 프라이버시를 위해 손만 나온다고 한다 – 손을 잘 씻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유사한 방송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가기 위해 사고 원인 조사가 잘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의 바탕에는 선뜻 “내 탓이요” 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에 대해 최대한의 톨레랑스(관용)가 발휘되는 문화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올바른 원인 파악이 되고 그에 따른 유사 사고 재발이 방지된다. 얼마 전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누가 세계 최고 리틀야구를 울렸나’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가장 슬픈 장면으로 선수들이 실책을 하고는 바로 감독을 바라보는 부분이라고 했다. 실책 후에 다음 동작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에게 혼날 것이 더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나가는 글로벌 회사들은 실수나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공언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징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방송 사고대책회의에서의 기본 목표는 원인 분석이 징계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에 더 큰 무게가 있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징계의 비중도 만만하지 않기에 공익(?)을 위해서 ‘장비 노후화’ 등의 원인으로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방송 장비는 일반 가전제품이 아니므로 Mal-Function이나 노후화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하지만 장비의 문제 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올바른 원인 분석이 잘 되려면 엔지니어나 관리자의 책임 의식과 함께 톨레랑스가 필요해 보인다. 책임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Responsibility’는 ‘Response’와 ‘Ability’의 조합이다. 즉, 소통이나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책임인 것이다. 방송 사고를 줄이라고 지시했다고 방송 사고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단기적으로 win-win을 위한 공익(?)적 이유만 늘어날 뿐이다. 독일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권위와 강제력은 상반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강제로 명령하면 명령자의 권위는 오히려 떨어진다. 그러면 효과적인 원인 분석은 더욱더 멀어진다.

방송사 기술 부문 엔지니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방송 사고’일 것이다. 그래서 방송 사고 문제는 다루기 민감한 부분이 많다. 게다가 현업 경험이 일천한 필자는 아무리 상상을 해도 ‘일야조빵’이 얼마나 생체리듬을 파괴하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그러기에 제대로 파악 못 한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분석이 사이비처럼 보였다면 “The buck stops there”이다. 아~ 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