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프로그램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넣는 간접광고(PPL)와 협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PD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영돼 신드롬적인 인기를 끌었던 KBS <태양의 후예>는 총 16부작을 제작하는데 130억 원이 들었다. 회당 약 8억 원으로 국내 대작 드라마의 일반적인 제작비인 3~4억 원의 두 배다. <태양의 후예>뿐 아니라 최근 방송 중인 SBS <보보경심> 역시 20부작 제작에 150억 원이 투입됐다. 이처럼 프로그램 제작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기존 광고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PD 등 제작진들은 PPL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방송사 관계자는 “예산이 충분해야 양질의 프로그램이 가능하니 더 비싼 출연자, 더 좋은 장비를 쓰기 위해 PPL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기본 제작비로 진행할 수 없는 프로젝트는 PPL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청자들 역시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위해선 PPL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이해하고 있다. 얼마 전 방송된 에 대해 네티즌들은 ‘사리사욕 챙기고자 하는 PPL이 아니라 작품성을 올리기 위한 선택이니 더 노골적이어도 참을 만하다.’, ‘몇 년째 늘지 않는 제작비 채우려고 PD랑 작가들이 PPL 선정하는데 아예 하루를 뺀다는 거 알 사람은 다 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프로그램의 흐름을 방해하는 PPL이 많아지고 있어 PPL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방송사 내부에서도 PPL이 악순환을 낳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PD연합회는 “PD가 협찬을 유치하면 회사는 이에 편승해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원래 제작비를 여유 있게 책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자꾸 협찬에 의존하고 되고 그 결과 자체 제작비는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는 악순환이 구조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PD연합회가 지난 9월 21일부터 30일까지 KBS, MBC, SBS 등 3사 서울 지역 PD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327명 중 300명(97.1%)이 ‘PPL‧협찬 확대가 제작 여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301명(92.1%)이 지난 5년 동안 PPL과 협찬의 영향이 더 심해졌다고 답했다. PD가 직접 PPL이나 협찬을 유치하기 위해 뛴 적이 있다는 응답도 43.7%(143명)나 됐다.
문제는 PPL이나 협찬이 프로그램 완성도 및 제작진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PD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PD들이 PPL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내용을 수정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협찬처와 계약 조건을 맞추기 위해 원래 구성에 없던 인서트 컷을 넣거나 출연자가 해당 상품을 부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장면을 넣어야 했다”며 “예능의 경우에도 맥락과 관계없이 제품을 홍보해야 하니 출연자 캐릭터를 즉흥적으로 바꾸고 맞지 않는 내용을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협찬처의 요구가 증가하고 구성에 자꾸 관여하니 아이템 선정의 자유가 제약되고, 내용이 왜곡된다”며 “PD 자율성이 훼손되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했다.
PD연합회는 PPL이나 협찬이 방송의 공정성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채훈 PD연합회 정책위원은 “협찬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예정에 없던 아이템이 기획되고 방송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시청자 보다는 협찬처인 기업이나 정부의 시각이 프로그램에 반영된다”며 “기업이나 정부의 의도가 방송에 관철되면 프로그램의 공영성이 저해된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 눈에 띄는 점은 상당수 PD들이 PPL이나 협찬에서 기인하는 문제를 지상파 중간 광고 허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동의했다는 것이다. 응답자 중 279명인 85.3%는 ‘PPL과 협찬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상파 중간 광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제작비가 부족해 PD들이 PPL이나 협찬 유치로 내몰리고 있기에 중간 광고로 이를 타개해야 한다’, ‘프로그램과 광고를 명료히 구분하려면 PPL이나 협찬보다는 차라리 중간 광고가 낫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갈수록 첨예화되는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제한된 광고 시장에서의 사업자 간 이해 대립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서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상파방송은 광고 수익의 추가 재원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중간 광고 허용을 포함한 규제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