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 훈/ 지역방송협의회 공동의장
방송국에 자신의 사연을 담은 엽서를 보낸다고 하자. 전국방송하는 프로그램에 보낼 때, 과연 쉽게 채택될 수 있을까? 반면에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지역방송국에 음악엽서를 보낸다면? 보나마나 사연이 채택될 확률은 훨씬 높을 것이다. 이처럼 지역시청자와 보다 많이, 또 보다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지역방송사의 수많은 존재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몇 년 전 KBS가 작은 도시의 방송국을 없앤 이후, 해당 지역민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론의 중심역할을 했던 방송국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지역민들은 지역방송국이 없어진 후 알았다고 한다.
최근 방송국이 앉았던 땅마저 팔겠다고 했을 때, 해당 지역민들은 강력한 반대의 뜻을 표했다. 지역방송국이 언젠가 세월 좋아지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마치 헤어진 연인 기다리듯 지역민의 애틋한 아쉬움들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 지역의 방송을 통해서 보지 못한다는 것,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뛰어난 미디어 시대에 말이다.
현재 지역방송사는 연간 천억여 원의 제작비를 들여 8천여 편(60분 기준)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이들 콘텐츠에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지역민의 삶과 민족문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역방송은 수도권시청자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콘텐츠의 또다른 세계다. 하지만 최근들어 지상파TV의 광고가 급감하면서 지역방송사의 수익 또한 급락하는 반면 DMB와 디지털투자비용은 빠르게 늘고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역방송에 대한 지원은 커녕, 지역방송 광고수익의 큰 몫을 차지했던 코바코의 연계판매는 물론 코바코 자체를 없애겠다고 한다.
애초에 지역방송은 번창해서 돈을 많이 벌라고 만들어진 방송국이 아니다. 비록 작은 방송권역이지만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지역여론을 이끌어 가라고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지역방송은 더이상 자생력이 없으니 시장에 맡긴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지역방송을 효율과 상업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 지역방송은 물, 공기, 햇빛과 같은 공공재(公共材)이기 때문이다.
요즘 지역방송은 한창 구조조정중이다. 올들어 벌써 지역MBC 2곳에서만 무려 29명의 구성원이 명퇴했다. 지역방송의 명퇴광풍은 이제 시작이다. 방송시장을 재편해서 일자리 창출하겠다는 이 정부의 외침이 한낱 허구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아닌가.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아지면 그 프로그램을 폐지시킨다고 한다. 국민들이 한가지 생각만을 하게 될 때 그런 국가가 가장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바로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그리고 퍼즐이 서로 맞춰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듯, 다양한 8도의 별(別)남들이 모여 한반도라는 큰 지도를 이루는 절묘함을 안다면 이 땅에 지역방송이 왜 튼튼히 존재해야 함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