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씨는 2016년 약 500만 원의 거금을 들여 삼성전자의 UHD TV(모델명 65ks8500)를 구입했다. 조금 비싼 감이 있었지만 매장에서 본 선명한 화면이 잊히지 않았고, 내년부터 지상파 UHD 본방송이 시작된다고 하니 이왕 구매할 때 좋은 것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지상파 UHD 본방송이 시작됐지만 A씨의 TV로는 UHD 방송을 볼 수 없었다. 2016년도 모델이라서 별도의 셋톱박스를 구매해야만 했다. 뭔가 속은 것 같았지만 UHD TV가 아까워 셋톱박스를 구입키로 했다. 동네에 있는 삼성프라자를 방문한 A씨. 하지만 A씨의 바람과 달리 셋톱박스는 매장에 없었고, 주문을 해야 구입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안테나였다. 셋톱박스만 구입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A 씨의 바람과 달리 지상파 UHD 방송을 보려면 셋톱박스와 극초단파(UHF) 안테나를 같이 구입해야만 했다. 결국 A씨는 지상파 UHD 방송을 포기하기로 했다.
#2. 최근 LG전자의 UHD TV(모델명 55B7K)를 구매한 B씨는 자연스럽게 지상파 UHD 방송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17년 모델이기에 안테나만 구입하면 UHD 방송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B씨의 집이 문제가 됐다. 아파트 저층에서는 실내 안테나로 수신이 불가능했다. B씨는 이와 관련해 KBS와 LG전자에 문의했다. KBS에서는 실내 안테나가 아닌 실외 안테나를 아파트 옥상에 설치하면 된다고 했으나 B의 아파트 옥상에는 안테나를 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LG전자에서는 실내 안테나의 수신 여부는 확인해줄 수는 있으나 실외 안테나 관련해서는 따로 해주는 부분이 없다고 했다. 결국 B씨는 구입한 안테나를 반품하고, 지역 케이블 방송의 UHD 상품을 구입했다.
#3. 지상파 UHD 방송을 보고 있는 C씨는 ‘UHD 방송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2016년에 삼성전자의 UHD TV를 구입한 C씨는 별도의 셋톱박스와 안테나까지 구입해 지상파 UHD 방송을 보고 있다. 하지만 화질도 기대한 것과 달리 큰 차이를 못 느끼고, 프로그램 역시 다큐멘터리와 몇몇 드라마뿐이어서 크게 실망한 상태다.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전숙희 기자] KBS‧MBC‧SBS 등 지상파 3사가 수도권 지역에서 지상파 초고화질(UHD) 본방송을 시작한지 40여 일이 지났다. 지상파 UHD 방송은 지난 2001년 디지털 방송 도입 후 16년 만에 새롭게 시작되는 방송 서비스로, 기존 고화질(HD) 방송보다 4배 이상 섬세하고 선명한 화질과 입체적인 음향을 제공한다. TV에 인터넷이 연결되면 IP 방식 기반의 다양한 양방향 서비스도 구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과 같은 이슈가 되지는 않고 있다. 심지어 지상파 UHD 방송을 보는 사람도 극소수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사실 이 같은 문제는 지상파 UHD 방송 시작 전부터 예견됐다. 본지에서도 지상파 UHD 방송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선 △시청 기반 확보 △콘텐츠 제작 및 수급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제언한 바 있다. 그러나 내장 안테나 장착이나 공시청 시설 구축, 안정적 제작비 확보 등은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에서 밀려나 논의선상에서 점점 사라졌고, 결국 지상파 UHD 방송은 아무런 대책 마련 없이 시작됐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하듯 지상파 UHD 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직접수신율이 5%대 수준이라며 직접 수신 가구가 없는 것을 지적한다. 물론 직수 가구가 없다는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지만 모든 원인을 직수율로 돌릴 수는 없다. 본지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지상파 UHD 방송에 관심이 있고, 약간의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더라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사례들 역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공유된 내용으로 댓글도 상당수 달려 있다. 직수율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A씨와 B씨의 사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신 기반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지상파 UHD 방송을 보려면 지상파방송 신호를 직접 수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①거주 지역이 수도권인지 확인 ②UHD 방송 표준인 ATSC 3.0이 적용된 UHD TV인지 확인 ③UHF 안테나(470~806㎒) 설치 ④자동 채널 설정으로 UHD 방송 채널 수신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위 과정을 차례로 살펴보자. 지상파 UHD 방송은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먼저 시작됐다. 1단계 진행 후 7월로 예정돼 있는 지상파 UHD 2단계 허가가 이뤄지면 오는 12월부터는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등 광역시권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지역인 평창‧강릉 일원에서도 지상파 UHD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각 시‧군 지역 등 전국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순차 도입은 지상파 UHD 방송 초기부터 논의됐던 부분으로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다.
ATSC 3.0 표준이 적용된 UHD TV 여부 확인부터 소비자의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지상파 UHD 방송을 보려면 2017년형 UHD TV를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2017년 이전에 구입한 UHD TV의 경우 대부분 DVB-T2라는 유럽식 표준이 적용돼 있어 이 상품으로 지상파 UHD 방송을 보려면 별도의 셋톱박스를 구입해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2013년형부터 2016년형까지 적용 가능한 지상파 UHD 수신 키트(모델명 SEK-M90/KR)를 6만9000원에 판매 중이고, LG전자는 4포트 HDMI 셀렉터에 웹OS 기반 스마트 기능까지 갖춘 지상파 UHD 셋톱박스를 6만 9000원에 판매 중이다. 두 회사 모두 6월 한 달만 3만9000원이라는 가격으로 할인 판매를 한다고 했는데 본지 취재 결과 7월 중순인 지금까지도 3만9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UHD 셋톱박스를 시중에서 구하긴 쉽지 않다. 본지에서 서울과 인천의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 하이마트, 이마트 등 삼성과 LG의 TV를 판매하고 있는 몇몇 곳을 돌아다녀본 결과 셋톱박스를 바로 구입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삼성디지털프라자의 경우 주문을 통해 택배로 받을 있었고, LG베스트샵에서는 LG전ᄌᆞ 서비스센터로 가보라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서비스센터 역시 바로 구매할 수는 없고 주문을 해야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LG베스트샵 서비스센터 직원은 “신청을 하면 구입할 수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아직 공급 일정이 나오지 않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정확히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이마트와 이마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지상파 UHD 셋톱박스라는 기기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LG전자의 경우 셋톱박스를 설치기사가 직접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설치기사와의 일정 조율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셋톱박스 적용도 삼성이나 LG 제품에만 해당된다. 저렴한 중소기업 제품이나 중국산 제품의 경우 셋톱박스가 출시되지 않기 때문에 지상파 UHD 방송을 볼 수 없다.
지난해 혼수로 UHD TV를 구입한 박모씨(34)는 “매장 직원이 TV의 경우 한 번 구입하면 10년은 써야 하기 때문에 최신형으로 사는 것이 좋다며 UHD TV를 추천했다”며 “가격 차가 커서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UHD 방송 시대라고 하길래 큰 마음 먹고 샀는데 셋톱박스도 또 사야 하고 뭔가 다른 TV와 별다른 차별점도 느껴지지 않아 속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제기됐었다.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은 “이미 판매된 UHD TV에 대한 셋톱박스를 무상 지급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은 약 17억 원”이라며 “이는 삼성전자가 미르재단에 기부한 60억 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돈”이라고 꼬집었다. 또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을 리콜했듯이 가전사는 UHD TV 방송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TV를 구매한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전혀 반영되지는 않았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디지털 TV 시장에서 UHD 제품의 판매 점유율은 51%로 전분기 대비 3%p 상승했다. 판매 금액으로는 전분기 대비 5%p 오른 77%를 차지했다. UHD TV가 고가이기 때문에 판매 점유율에 비해 판매 금액 점유율이 훨씬 높게 나온 것이다. 다나와 관계자는 “UHD TV 중에서도 대형 화면 제품의 인기가 상승 중”이라며 “제조사에서도 UHD TV 출하 비중을 높이고 있어 점유율 상승 추이는 당분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 UHD 방송이라는 이슈로 가장 득을 보는 곳은 삼성이나 LG 등 가전사”라며 “고가의 UHD TV를 판매하면서도 셋톱박스 비용은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준비도 제대로 안 해놓는 것을 보니 대기업의 이기주의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UHF 안테나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UHD 방송을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선 내장 안테나를 장착해야 한다고 수차례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일부 공동 주택의 경우 개별 동에 광대역 UHF 안테나가 설치돼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별도의 안테나 설치 없이 TV 벽면 단자를 통해 지상파 UHD 방송을 볼 수 있지만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단지에서 사용하는 헤드엔드(Head End) 시스템의 경우 2017년 2월 1일 이전 건축 허가 또는 신고해 건축됐다면 별도의 지상파 UHD 방송용 신호 처리기 설치가 필요하다. 아직 변복 조형 UHD 신호 처리기가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경우 역시 각 세대에서 별도의 실외용 안테나를 설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거의 모든 가구에서 별도의 안테나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이 역시 셋톱박스와 마찬가지로 시중에서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본지에서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 하이마트, 이마트를 직접 방문한 결과 안테나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LG베스트샵 밖에 없었다. LG베스트샵의 경우 UHD TV를 구입할 경우 직원의 재량으로 안테나를 함께 제공하기도 한다고 했다. 삼성디지털프라자와 이마트에서는 각각 “마트에 가야 구할 수 있다”, “이마트에는 입점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위의 업체에 가격을 문의한 결과 UHF 안테나 가격은 4만~5만 원 수준이었다.
올해 이전에 출시된 UHD TV를 구매한 소비자라면 셋톱박스 6만9000원에, 안테나 4만 원 등 최소 10만9000원의 비용을 더 투자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여전히 내장 안테나 장착을 요구하고 있다.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이 부분을 지적하며 “UHD TV 내장 안테나 설치 의무화를 정부 입법으로 처리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유 장관은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내장 안테나 장착 문제가 해결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사에서 계속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겠지만 해외 수출 부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가전사에서 난색을 표하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최소 1~2개 모델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 역시 자정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톱박스나 안테나 문제가 해결돼 시청 기반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볼 만한 콘텐츠가 없다면 시청자들은 지상파 UHD 방송은 물론 끝내는 지상파방송 전체를 외면할 수도 있다.
C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지상파 UHD 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콘텐츠는 그리 많지 않다. 방송사들은 허가 조건에 따라 보도‧오락‧교양 등 다양한 분야의 UHD 프로그램을 올해 5%부터 시작해 매년 5% 이상씩 확대(2017년 5%, 2018년 10%, 2019년 15%)해 나간다는 계획이지만 그 만큼의 투자가 가능할지 여부도 아직 알 수 없다. 지상파 UHD 정책 방안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가 2016년부터 2027년까지 투자해야 하는 금액은 총 6조7,903억 원이다. 방송 광고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지난 5년 동안 약 25% 정도의 광고가 빠졌다”며 “내부에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진짜 재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 제작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알지만 UHD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비가 기존 보다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B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난시청 해소와 지상파 UHD 방송 상담 등도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 지상파 UHD 방송의 경우 수신 신호가 좋아 난시청적인 부분이 많이 해소됐다고는 하지만 도심 속 난시청 문제의 경우 상당 부분 해결이 어렵다. 이 경우 해결 및 대안을 위한 자세한 상담이 이뤄져야 하지만 상당수 소비자가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상파 UHD 방송 시작 전후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대다수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쪽으로 연락했다는 경우였다. 물론 지상파 UHD 본방송 시작 후 ‘지상파 UHD 방송 수신 가이드’가 배포됐지만 이 역시 관련 업계에서만 알고 있을 뿐 아직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지상파 UHD 방송은 이제 시작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저쪽에서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무조건적인 비판만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서비스도 한 번에 그리고 완벽하게 정착되는 것은 없다. 문제점을 검토한 뒤 해결하거나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상파 UHD 방송도 마찬가지다. 2021년 지상파 UHD 방송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이전에 그 과정들을 거듭해 나간다면 분명 몇 년 뒤에는 안정적으로 정착돼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수신 환경 개선, 내장 안테나 장작, 콘텐츠 투자 지원 등의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