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지상파 초고화질(UHD) 본방송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본방송 일정 연기를 요청하고 나섰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이하 연합회)는 12월 12일 ‘‘지상파 UHD 방송’ 정부를 위한 것인가, 시청자를 위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세계 최초’라는 담론에만 매몰돼 무작정 일정 맞추기만 하지 말고 일정을 조금 늦추더라도 시청자들이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상파 UHD 방송을 하자”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2017년 2월 지상파 UHD 본방송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상파 UHD 방송 도입을 위한 정책 방안’을 발표했다. 미래부와 방통위 정책에 따르면 지상파 UHD 방송은 △2017년 2월 수도권 본방송 개시 △2017년 12월 광역시권(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과 강원권(평창‧강릉 등 평창올림픽 개최지 일원) 본방송 개시 △2020년부터 전국 시‧군 지역 본방송 순차적 도입 △2021년 지상파 UHD 전국 방송 완료 △2027년 HD 방송 종료 추진 순으로 도입된다.
이를 놓고 관련 업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촉박한 일정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제기했다. 올해 4월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김광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미국식 표준인 ATSC 3.0의 최종 승인이 2017년 상반기에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표준 및 방송 시스템은 그 이후에 이뤄지는 게 정상적”이라며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도입’이라는 담론 때문에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UHD 방송을 부실하게 시작하면 향후 더 큰 위험 비용을 감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5월에 열린 ‘UHD TV 방송 도입과 지상파 서비스의 미래’ 토론회, 6월에 열린 ‘시청자 중심의 지상파 UHD 방송 수신 환경 조성’ 토론회, 10월에 열린 ‘지상파 UHD 방송, 시청권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안’ 세미나, 11월에 열린 ‘온전한 지상파 UHD 서비스 도입을 위한 추진 사항 진단 및 정책적 제언’ 세미나, 오늘 열린 UHD 방송 정책 세미나까지 일 년 내내 정부 안대로 지상파 UHD 본방송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연합회는 “본방송이 2개월여 밖에 남지 않았지만 UHD 방송 제작과 송신 환경이 여전히 불완전하다”며 “아직까지 UHD 방송과 관련된 장비가 납품되지 않은 것도 있고, 납품된 장비 대부분도 완제품이 아닌 시제품으로 불안정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불완전한 제작 및 송신 환경 부분도 이번에 처음 지적된 사항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토론회와 세미나에서 매번 언급됐었다.
연합회가 두 번째로 시청자 수신 부분도 계속 논란이 된 문제다. 연합회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2014년부터 판매한 UHD TV는 유럽식인 DVB-T2 방식이 적용돼 있기 때문에 별도의 셋톱박스를 설치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정리되지 않았다”며 “지상파가 일정에 맞게 UHD 방송을 내보내도 볼 수 있는 시청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내장 안테나 장착 등을 제안했으나 이 역시도 아직까지 논의만 진행되고 있을 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연합회는 “우리는 이미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 급급했던 정부의 성급한 정책 시행으로 직접수신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실패를 경험했다”며 “일정만 맞춰 엉망진창인 UHD 방송을 시작할지 아니면 본방송 일정을 조금 늦추더라도 시청자들이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지상파 UHD 본방송 일정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해온 지상파 방송사가 본방송 일정 연기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합회 관계자는 “지상파 UHD 방송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을 연기함으로써 조금 더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것이 왜 책임 회피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준비 안 된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 책임 회피가 아닌가 싶다”며 “(방송사에서도) 지상파 UHD 방송을 앞두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청자분들에게 무료 보편적인 서비스를 문제없이 제공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지상파 UHD 방송’ 정부를 위한 것인가, 시청자를 위한 것인가
지상파 초고화질(UHD) 본방송이 약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방송으로 UHD 산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이지만 2개월여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비 개발도 완료되지 않아 불완전 시스템으로 구축되고 있다고 한다. 부실한 기술로 국가 브랜드를 훼손할까 우려된다. 이에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정부의, 정부를 위한, 정부에 의한’ 지상파 UHD 방송이 아닌 ‘시청자의, 시청자를 위한, 시청자에 의한’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 지상파 UHD 본방송 일정 연기를 요청하고자 한다.
지상파 UHD 본방송 일정 조정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본방송이 2개월여 밖에 남지 않았지만 UHD 방송 제작과 송신 환경이 여전히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직까지 UHD 방송과 관련된 장비가 납품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 현재 지상파 방송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UHD 방송 장비 대부분이 완제품이 아닌 시제품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송신 시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상파 3사는 올해 말까지 약 8개의 송신소를 구축할 예정인데 미국에서 ATSC 3.0 표준 확정이 지연되면서 관련 제품 출시 시기도 늦어지고 있다.
지상파가 일정에 맞게 UHD 방송을 내보내도 문제다. 당장 지상파 UHD 본방송을 볼 수 있는 시청자들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2014년부터 판매한 UHD TV에는 유럽식인 DVB-T2 방식이 적용돼 있기 때문에 기존 UHD TV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지상파 UHD 방송을 볼 수 없다. 이들이 지상파 UHD 방송을 보려면 별도의 셋톱박스를 설치해야 하는데 아직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또 일반적으로 가전사에서 신규 모델을 출시할 때는 테스트만 10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이 지난 7월 말에나 겨우 확정돼 내년 2월이라는 본방송 일정까지 신규 모델 출시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장 안테나 장착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학계와 업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지상파 UHD 방송을 무료 보편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해선 수신 환경을 개선하던지 아니면 내장 안테나를 설치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내장 안테나 장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사에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근 UHD 코리아가 자체적으로 지상파 UHD 방송 수신을 위한 전원 케이블 장착형 안테나, 초박형 내장 안테나, 금속 로고형 안테나 등 3종을 개발해 UHD 수신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으나 가전사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 역시 결론이 어떻게 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UHD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방송사는 가전사보다 더 난감한 상황이다. UHD 본방송을 앞두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데 콘텐츠 제작에 투입할 막대한 재원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지상파 UHD 정책 방안에 따르면 UHD 콘텐츠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은 지상파가 자체 조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콘텐츠 제작비에 UHD 장비 수급 부분까지 더해야 하는데 광고 수익은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진퇴양난(進退兩難)인 셈이다.
우리는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 급급했던 정부의 성급한 정책 시행으로 직접수신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세계 최초’라는 담론에만 매몰돼 무작정 일정 맞추기만 하지 말고 첫 단추부터 잘 꿰어 시청자들을 위한 지상파 UHD 방송을 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가 선택해야 한다. 일정만 맞춰 엉망진창인 UHD 방송을 시작할지 아니면 본방송 일정을 조금 늦추더라도 시청자들이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할지는 온전히 정부의 선택에 달려있다.
2016.12.12.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