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꺼내든 ‘수신료 분리징수’…대통령실 권고를 시작으로 일사천리 진행
김의철 KBS 사장, 대국민 호소문 발표…“KBS 존재가치 증명하지 못해” 사과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고지‧징수하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가함에 따라 7월 12일부터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행된다. 김의철 KBS 사장은 이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 KBS가 존재가치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지난 1981년 당시 신문의 월 구독료를 고려해 2,500원으로 책정된 수신료는 40년 동안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고, 수신료 분리징수도 화제에 올랐으나 정치권의 입장 차이와 신문‧종합편성채널‧공영방송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던 중 정부는 3월 9일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전기요금 항목에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납부하는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수신료 분리징수 이슈를 꺼내 들었다. 논란으로만 멈춰있을 것 같던 수신료 분리징수 이슈는 대통령실이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를 하면서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수신료를 분리징수하기 위해선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 한국전력공사 약관 중 하나를 개정해야 한다.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했다.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에서 방송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한전 약관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KBS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방통위는 6월 14일 현행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2항 ‘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 업무와 관련된 고지 행위와 결합해 이를 행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부분을 ‘지정받은 자가 자신의 고유 업무 관련 고지 행위와 결합해 수신료를 고지‧징수할 수 없도록’ 개정해 안건으로 접수했고, 2일 뒤인 6월 16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권고한 지 11일만이다.
시행령 개정은 법령안 입안, 관계기관 협의, 사전영향평가, 입법 예고,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심의,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공포 등의 절차를 거치는데 방통위는 입법 예고 기간을 10일로 정했다. 통상적으로 입법 예고 기간은 40일이지만 긴급한 사안의 경우 법제처와 협의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방통위 설명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언론현업단체 등에선 이 부분을 지적하며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방통위는 입법 예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을 진행했고,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까지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모든 진행과정은 막힘없이 이뤄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7월 11일 현지에서 전자결재 방식으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가했다. 정부는 다음 날인 12일 오전 관보에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게재했고, 이에 따라 수신료 분리징수는 오늘부터 시행된다.
김의철 KBS 사장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김 사장은 “막무가내식 개정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지만 문제점을 밝히는 일에 앞서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한다”며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 KBS가 존재가치를 국민들께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김 사장은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선포했다며 “스스로 개선하고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외부에서 지적받고 있는 공정성과 경영 효율화에 대해 부족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고쳐나가겠다”며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우리 사회에 능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다만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지난 35년간 바뀌지 않은 방송법을 달라진 사회 환경에 맞게 개정하는 게 시급하다”며 “그간 KBS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부합하는 사회적 역할과 공적책무, 서비스 범위, 그에 걸맞은 재원조달 방식에 대한 제도변화를 꾸준히 요청해 왔지만 정부는 그런 방송법을 방치한 채 수신료 통합징수 제도만 초고속으로 폐지했다”고 지적했다.
KBS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한다는 방침이다. 김 사장은 이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제한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2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을 담아 헌법소원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법률 대응을 통해 정부가 강행한 수신료 분리고지 조치가 공영방송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지 확인하고, 어떤 형태의 수신료 징수방식이 국민 대다수에게 이익을 드릴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고 말한 뒤 “헌재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신료 분리징수로 인한 불편과 혼란이 있겠지만 KBS는 국민 여러분이 입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한전과 협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