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2인 체제에서 업무할 수 있게 판단 내려준 결과”
시민사회단체 “탄핵 기각이 면죄부는 아니다”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이 위원장은 탄핵소추된 후 5개월(174일) 만에 업무에 복귀하게 됐다.
헌재는 1월 23일 오전 10시 대심판정에서 이 위원장의 탄핵심판 청구 사건을 선고했다. 재판관 8인 중 김형두·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기각 의견을, 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계선 재판관은 인용 의견을 냈다. 동수로 의견이 엇갈렸지만 탄핵을 인용하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탄핵소추는 기각됐다.
기각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방통위 5인 위원이 모두 심의‧의결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나 2인 간에도 의견 교환이 가능하고, 재적위원 2인으로만 개최되는 회의에서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헌법상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반명 인용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2인의 위원만 재적한 상태에서는 방통위가 독임제 기관처럼 운영될 위험이 있다고 이는 방통위를 합의제 기관으로 설치한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국회는 지난해 8월 2일 본회의에서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새로운미래‧기본소득당 등 야당은 “이 위원장이 방통위원장 임명 당일 회의를 열고 2인 체제로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의결한 것은 방통위 설치법을 위배한 것”이라며 “자신에 대한 기피 신청에 대해 스스로 의결에 참여해 기각한 것 역시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탄핵 사유를 밝혔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헌재는 180일 이내 처분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재판관 9명 중 3명이 퇴임하면서 헌재법 23조가 규정한 심판 정족수 ‘7인 이상’을 채우지 못해 심리가 늦어졌다. 이에 이 위원장이 해당 법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6인 체제로 심리에 들어갔다.
헌재는 두 번의 준비기일과 세 차례 공개 변론을 통해 국회와 이 위원장 측 주장을 들었다. 세 차례 변론에서 양측은 방통위 2인 체제 아래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의결한 것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국회는 2인 체제 의결의 부당성과 이 위원장의 편향적 인식 등을 주장했고, 이 위원장은 2인 체제의 적합성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헌재의 결정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 결정은 굉장히 의미 있는 중요한 결정”이라며 “2인 체제에서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판단을 내려준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이 남아있고 해외 거대 기업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 이슈도 있다”며 “직무에 복귀해서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과를 주장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당연한 결정”이라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무리한 탄핵소추를 한 민주당은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억지 탄핵을 해서 방통위를 장기간 마비시켜 놓은 민주당은 사과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국회의 권력을 활용, 무자비하게 탄핵의 칼을 휘두른 것은 유감이고 기각이 된 만큼 지금이라도 방통위가 정상 업무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는 “헌재의 탄핵 기각이 면죄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오늘 헌재의 결정이 재판관 6인의 인용이 필요한 탄핵 요건을 채우지 못했더라도 8명 중 절반인 4명의 재판관이 2인 체제의 위법성을 명확히 하고, 이진숙 파면 의견을 제시했다는 데에 강력한 시사점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고, 언론개혁시민연대는 “헌재의 기각이 곧 이진숙 위원장의 행위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다”라면서 “2인 체제 방통위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여러 쟁송에서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기도 하고, 방통위의 2인 체제 의결의 위법성은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이 복귀하면 방통위는 다시 2인 체제가 된다. 현재 방통위는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1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13조에 따르면 ‘위원회의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1인 체제에서는 심의 및 의결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하면 KBS‧MBC 등 국내 12개 사업자 146개 채널에 대한 재허가와 구글‧애플 인앱결제 과징금 부과, 대기업의 방송사 소유 제한 지분 규제 완화 시행령 개정 추진 등 시급한 현안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