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 분야 업무보고에서 “유료방송 대기업 독과점을 우려한다”는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은 “방송시장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수직 계열화를 통해 방송채널을 늘리는 등 영향력을 상당히 확대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중소 프로그램 제공업체의 입지가 좁아져 방송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유료방송에 대한, 특히 케이블 업체에 대한 과도한 규제 완화에 제동을 거는 한편 방송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후폭풍은 거세다. 업계에서는 비록 박 대통령이 특정 업체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다수의 케이블 방송을 보유하고 있는 CJ와 태광계열의 티브로드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본다. 실제로 MSO인 CJ 헬로비전은 공격적인 지역 SO 합병을 통해 400만 가입자를 확보하며 명실상부 최대 MSO로 급부상했다. 또 티브로드는 CJ와 더불어 최근 매물로 나온 수도권 최대 MSO ‘씨앤앰’의 잠재적 인수 대상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티브로드보다는 CJ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는 정무적인 판단도 섞여 있다. 집권 초 CJ를 겨냥한 기업인 수사에 현 정부가 상당한 공을 들인 만큼, 비록 당시 수사 정국이 최근 법원 판결로 수습국면에 들어갔으나 아직 완전한 상황종료라고 보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무적인 판단을 차치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이 유료방송 독과점을 경계하며 CJ를 정조준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현재 CJ는 16개 TV 방송 채널을 운용 중인 국내 최대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인 CJ E&M과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CJ 헬로비전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CJ E&M과 CJ 헬로비전은 모두 PP와 SO업계의 절대권력이다.
특히 CJ 헬로비전은 최근 정부의 시장 점유율 규제 완화, 즉 권역별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케이블 업계는 물론 유료방송 시장 전체에서 막강한 슈퍼파워로 급부상했다. MSO가 400만을 넘어 800만에 육박하는 가입자를 보유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CJ 헬로비전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외연확대를 통해 급성장하는 IPTV의 공세를 차단하는 한편, 전체 방송 시장의 맹주로 군림할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다만 CJ E&M은 사정이 다르다. CJ 헬로비전은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며 발전의 기회를 잡았지만 MPP인 CJ E&M은 아직 규제 완화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에는 1개의 PP가 전체 PP 매출의 33%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CJ E&M의 매출비율은 20% 후반이다. CJ 헬로비전처럼 몸집을 불리고 싶어도 매출 상한선인 33%에 걸려 공격적인 외연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PP의 매출 상한선을 33%에서 49%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CJ E&M과 같은 거대 MPP의 성장을 더욱 보장하자는 취지다. 그리고 이러한 MPP 규제 완화 정책은 MSO 권역별 규제 완화에 이어 실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통칭 CJ 특별법이라 불리던 MSO 권역별 규제 완화와 MPP 매출 제한 규제 완화가 현실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2월 17일 박 대통령은 방송의 독과점을 우려한다는 발언을 통해 사실상 CJ의 비원을 경계하고 나섰다. 이는 이미 추진된 MSO 권역별 규제 완화보다는 추진될 예정이던 MPP 매출 제한 규제 완화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업계에서는 박 대통령의 유료방송 독과점 경계 발언에 따라 PP 매출 제한 규제 완화는 사실상 구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미 FTA라는 변수가 있다.
내년에 한미 FTA가 정식으로 시작되면 유료방송 콘텐츠 시장은 외국에 전면 개방된다. 협정에 따라 외국기업이 보도, 종합편성, 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일반 채널에 대한 간접투자 비율이 49%에서 100%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막강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하는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가 국내 방송 시장에 편입될 경우, 토종 콘텐츠 산업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의 ‘방송 독과점 우려’를 ‘우려’하는 진영에서는 한미 FTA를 통해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의 공습이 예상되는 만큼, PP 매출 제한 규제 완화를 통해 토종 콘텐츠 산업의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의 ‘방송 독과점 우려’를 ‘우려’하는 진영은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에 대항하기 위해 CJ에 집중한 역량을 바탕으로 국내 중소 PP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그런데 다분히 전략적인 이유로 다양성의 상징인 군소 PP를 말살시키고 CJ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 방송사 구조로 새판을 짜자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CJ를 비롯한 대형 MSO들이 SO+PP의 형태인 MSP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군소 PP의 입장에서는 의무재송신 채널 박탈을 비롯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차라리 한미 FTA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대형 MSO-MPP와 군소 PP가 상생을 바탕으로 참여하는 연합전선이 구축되어야 하며, ‘다양성’을 바탕으로 국내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등 하는 PP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군소 PP의 희생을 전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케이블TV협회가 유료방송 독과점 방지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공문을 국회에 발송해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이 방송, 더 정확히 말해 케이블 독과점을 경계한다는 발언을 하자 케이블 협회가 ‘유료방송 독과점 방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피력한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케이블 협회의 ‘독과점’은 첨예하게 갈린다. 박 대통령은 케이블의 과도한 규제 완화를 경계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주문한 반면, 케이블 협회는 경쟁자인 위성방송(IPTV도 포함) 업체의 독과점을 막아달라고 국회에 탄원했기 때문이다. 즉, 박 대통령이 방송 독과점의 원흉으로 케이블 업체를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케이블 업체는 그 원인을 위성방송에 돌린 셈이다. 그렇다면 케이블 협회가 왜 미래부나 방통위가 아닌, 국회에 공문을 보냈을까?
현재 국회에는 위성방송 몸집 불리기를 가로막는 규제 법안들이 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IPTV 법 개정안’과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두 법안 모두 유료방송 매체 중 유일하게 가입자 상한규제를 받고 있지 않은 KT 스카이라이프 가입자를 점유율 규제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리하자면, 점유율 규제를 받지 않는 위성방송을 규제에 포함시키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경쟁자인 케이블 협회는 조속히 경쟁자를 규제의 틀로 잡아 세우기 위해 조속한 법안 처리를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는 뜻이다. 물론 위성방송의 점유율 규제 포함은 KT의 사례로 보아 조속히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에 중론이 쏠린다. KT는 위성방송과 IPTV, 여기에 통신과 망을 조합해 유료방송 업계의 포식자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평규제의 틀 안에서 위성방송이 규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케이블 협회의 공문은 DCS 문제에서 첨예하게 얽혔던 케이블-위성방송(통신사)의 힘겨루기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MSO 권역별 규제 완화가 이뤄지고 IPTV를 겨냥한 유료방송 점유율 합산 제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케이블 업체에 대한 규제 완화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KISDI가 대기업 수직계열화 방송경쟁평가를 발간한 것도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PP 매출 제한 규제 완화에 제동을 걸었던 바로 그 날, 케이블 협회는 자신들의 경쟁사인 위성방송을 겨냥해 국회에 공문을 발송했다. 과연 타파되어야 하는 독과점의 주체는 누구인가? 케이블인가? 아니면 위성방송인가? 물론 박 대통령은 특정 기업을 겨냥한 발언은 아니라고 했지만, 또 위성방송 규제포함도 꽤 중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결론은 어차피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