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 지산밸리 Rock Festival 참관기

[여름특집] 펜타포트 & 지산밸리 Rock Festival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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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의 Rock Festival 속으로

 



SBS라디오기술팀 홍창훈

 

눈부신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그 위에 매달려있는 시커먼 스피커에서 엄청난 음압이 밀려온다. 드러머가 킥 드럼을 칠 때마다 마치 천둥과 같은 압력이 심장을 밀어낸다. 베이스 음이 지축을 울리며 발바닥을 흔들어 온몸을 들어 올려 뛰어 오르라 하고 귀를 찢을 듯한 기타 리프가 허공을 가른다. 여기에 보컬의 가슴 터질듯 한 열정과 자유가 흘러나오면 드디어 관객과 밴드는 하나가 되어 날아오른다. 모두들 온몸을 흔들어 대며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장소… 이곳이 바로 록 페스티벌이다.

페스티벌의 어원은 종교의식에 들어간다는 라틴어 페스투스(festus)와 일을 하지 않는다는 페리에(feriae)이다. 즉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종교적 의식에 들어간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는데 화려하면 화려한데로 정적이면 정적인 그대로 일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축하하고 여흥을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페스티벌 문화에 록이라는 저항과 자유의 문화가 합쳐진 것이 바로 록 페스티벌이다. 이런 문화를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경해 마지않는 필자는 올해도 어김없이 2010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을 모두 다녀왔다. 펜타포트는 SBS 라디오 실황 중계방송을 위해, 지산은 여름휴가를 대신하여 다녀왔는데 열정적인 두 공간을 다녀오면서 필자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그간 한국의 음악팬들은 한국 공연 문화의 고질적인 열악함에 대해 적지 않은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공연들을 열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한국에 오는 뮤지션이라 하면 보통은 한물 간 듯한 노장들이었고 그나마 해온 공연도 열악한 무대와 음향 시설이 늘 음악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불만과 아쉬움을 남기는 상황이었다. 관객들의 열정과 반응은 어느 나라 못지않다는 것을 팬들이나 심지어 공연에 온 뮤지션들도 공감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열악한 공연환경은 국내의 많은 음악잡지들마저도 우리나라의 공연보다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이나 영국의 레딩 페스티벌에 눈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던 차에 1999년 인천에서 열린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은 우리나라 음악 페스티벌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문화를 수혈 받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비록 첫 해는 나쁜 날씨와 미숙한 기획 탓에 실패 아닌 실패를 하고, 수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여름이 오면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이 상식이 됐고, 지산과 팬타포트라는 양대 록 페스티벌은 음악팬들과 여러 매체들을 주목시키는 이슈 메이커가 되었다.

 

다양한 음악 장르에 따라 여러 페스티벌이 생겼지만, 우리는 왜 ‘록 페스티벌’에 유난히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장르들과 달리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과 자연과 하나 되어 즐기며 열정을 폭발시키는 록음악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록 페스티벌은 여타의 장르와 달리 관객의 적극성과 참여가 페스티벌을 이루는 하나의 가장 큰 축이 된다. 그러니 ‘라이브 공연’의 ‘살아있음(Live)’ 그 자체의 에너지를 느끼기에 록만한 장르가 또 있을까?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지난해 내부적인 사정으로 지산 페스티벌과 분리된 후, 지산과 같은 날에 열리며 불안한 조짐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지산과 날짜를 달리하고 새로운 라인업을 만들어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를 차리기 위해 펜타포트에 가게 되었는데 공연장소를 송도에서 서인천 수도권매립지로 이동한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나름 쾌적한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공연 라인업은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인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밴드인 후바스탱크(Hoobastank), 브릿팝 혁명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전설적 밴드 스톤 로지스의 보컬리스트 이안 브라운(Ian Brown), LCD 사운드시스템(LCD Soundsystem) 등이 채웠다. 스테레오포닉스는 더 없이 영국적인 사운드를 무기로 2집부터 6집까지 총 다섯 장의 앨범이 연속해서 차트 1위를 차지해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 잡고 있는 밴드다. 특히 5집에 담긴 ‘Dakota’는 밴드 역사상 최초로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밴드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60년대 하드록과 70년대 펑크에 최근의 음악을 간단하고 명료한 사운드로 만들어 내고 있다. 후바스탱크는 포스트 그런지와 팝을 맛깔스럽게 버부린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인데, 한국의 팬들에게는 두 번째 앨범 ‘The Reason’이 발매되면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친 내한공연을 통해 라이브 능력 또한 충분히 검증받은 후바스탱크는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모두 쇠락해 가는 가운데에도 끊임없이 활동을 하며 꾸준히 새 앨범을 선보이고 있다. 필자가 중계방송을 하는 중에도 관객 모두가 한 목소리로 ‘the reason’을 열창을 하였는데 그 소리가 행사장 전체를 휘감으며 축제 분위기를 절정으로 만들어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안 브라운은 브릿팝(Britpop) 혁명의 시조가 된 전설의 밴드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의 보컬리스트였다. 스톤 로지스의 데뷔 앨범은 팝 명반 100선을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안 브라운은 밴드가 2집을 끝으로 해체한 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유명 밴드의 멤버가 솔로로 데뷔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고, 밴드 시절에 못지않은 인기와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LCD 사운드시스템은 21세기의 음악계의 이단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렉트로니카와 펑크를 결합, 기존과는 다른 투박하지만 에너지 넘치는 음악을 하는데 이번 페스티발에서도 가장 많은 팬들을 날뛰게(!) 한 팀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2005년 데뷔앨범에 담긴 ‘Daft Punk is Playing at My House’는 비디오 축구게임에 테마음악으로 삽입돼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거두며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됐다. 관객들이 도무지 쉴 틈을 만들어 주지 않는 그들의 열정적인 퍼포먼스는 ‘과연 LCD 사운드 시스템이 록 음악인가?’라는 몇몇 사람의 의문을 단순한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임스 머피가 탈퇴의사를 밝혀 아마도 이번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일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의 팬들에게는 이번 공연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기회였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헤드 라인업의 짜임새는 지산에 비해 조금 뒤떨어지는 느낌이지만 펜타포트의 강점은 한국 밴드의 라인업과 일본 밴드의 라인업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창완 밴드와 들국화 출신의 조덕환처럼 묵직한 이전 세대 록 밴드부터 최근 막 홍대 앞에서 떠오르는 10cm까지 한국 뮤지션들이 다양하게 라인업 되어 해외 뮤지션 라인업만큼이나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무대의 크기와 사운드 시스템의 물량은 전회에 비해 다소 축소된 느낌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PA사운드 퀄리티는 전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되었다. 록 콘서트라면 흔히 느끼는 과도한 저음과 큰 음압을 지양하고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관객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믹싱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사실 필자도 무대로 뛰어들어 관객과 같이 공연을 만끽하고 싶었으나 생방송을 위해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방송 부스에서 헤드폰으로 공연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몸으로는 생업에 열중하며 마음은 무대 위에 올라가 관객들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즐겼다. 다만 ‘중계방송 준비’라는 막중한 임무를 위해 공연티켓만 가지고는 볼 수 없었을 공연 전 무대 안 밖의 사정을 조금 더 알 수 있었다는 것이 독특한 경험이었다.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은-필자가 개인적으로 매우 사랑하는-뮤즈를 보기위해 공연 3일째에 특별히 휴가를 내고 찾아갔다. 일단 지옥 같았던 교통편을 생각하면 아직도 행사 관계자들에게 화가 풀리지 않지만 공연만은 정말 환상적이었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일단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치지 않는 정력으로 신스팝(Synthpop)의 맏형으로 불리는 펫샵보이즈(Pet Shop Boys), ‘Go West’는 여전히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는 후문이다. 이번 공연에도 이들은 관객들을 거의 한 시간 동안 지치지 않는 집단 댄스의 향연으로 몰고 가면서 그 이름값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슈는 이것이 과연 라이브인가 의심할 정도의 신들린 듯 현란한 연주와 퍼포먼스를 보여준 뮤즈, 그리고 일렉트로닉의 화려하고도 음울한 ‘트립합(trip-hop)’ 라이브 절정을 보여준 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였다. 헤드라이너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서브라이너로 내정되어 있는 밴드들 또한 개인적으로 필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Kula Shaker는 굉장히 탄탄한 연주 실력을 보여주어서 이번 공연의 필자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밴드가 됐다.

 

이번 지산 록 페스티벌은 공연도 중요했지만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직접 데려온 엔지니어들의 실력을 직접 귀로 확인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못지않게 중요했었다. 몇 해 전 펜타포트에서 travis의 공연을 보며 어떻게 라이브 사운드를 저렇게 CD처럼 만들 수 있을까 놀랐던 필자는 올해는 방송을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호흡과 사운드를 들어 보고 싶었다. 역시나 Third eye blind 무대부터 사운드가 잡히기 시작하더니 점차 탄탄하고 옹골찬 사운드가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뮤즈 무대에서는 누구도 딴죽을 걸 수 없는 완벽한 라이브 사운드를 보여줬다. 이전 공연에서는 서브라이너까지 midas의 XL-4가 FOH 콘솔이었는데 MUSE 때에는 필자도 알 수 없는 빈티지 콘솔로 오퍼레이팅을 하였다. 국내 엔지니어의 실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필자가 한다면 과연 이런 사운드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내공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잊지 못할 이 여름의 추억을 만들며 축제를 즐기고 돌아왔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필자에게 말을 한다. 가까운 곳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잔디밭에 누워 있다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나오면 무대에 달려가 머리를 한껏 흔들다가 지치면 맥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기는 일,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홀가분하게 놓아 주는 것 이것이 고생일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여름의 훌륭한 바캉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예전에 한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10대 시절에 록 음악에 빠져드는 일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제때 하면 좋은 일 가운데 하나다” 그 전율의 순간 그곳에서 피어오른 에너지와 감성의 결들이 내 삶에 남긴 흔적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 그랬으면 어쩔 뻔 했나” 이것이 바로 록 페스티벌의 묘미가 아닐까? 아직은 가야할 길이 먼 듯한 한국의 록 페스티벌이지만 음악팬이 아니어도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는 곳, 가족과 함께 소풍가듯 갈 수 있는 곳, 그런 장소가 되기를 필자는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