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신뢰도 왜 낮은가?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먼저다!

신문 신뢰도 왜 낮은가?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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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의 방송뉴스 소유와 경영 논의에 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의 함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활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아무런 관계도 없을까? 예상하건대, 한나라당이나 한나라당의 추천 위원들은 ‘무슨 상관이냐?’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사실상 미디어위원회 가동이 불가능했던 국민장 기간까지 ‘100일 활동기간’에 포함시키자며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 생떼를 쓰고 있다는 소식에 비춰보면, 이렇게 추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모든 죽음은 ‘사회성’을 갖는다. 모든 인간이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당연하기까지 하다. 하물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존엄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7일 동안 5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슬픔과 안타까움 속에 떠나보낸 그의 죽음은 ‘성찰하지 않은 권력, 곧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지 않는 두 개의 권력에 대한 주의를 국민들에게 환기시켰다. 하나가 검찰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언론이다.
목도했다시피, 수사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이라는 외통수로 몰아넣은 검찰의 비열하고 공작적인 행태에 대한 신문 일반, 특히 ‘조중동’에 보도태도에 대해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추모 정국에서 전면에 표출됐다. 또한, 현 정권 들어 ‘관제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KBS에 쏟아진 불명예스러운 평판은 하나의 ‘사실’로 대중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신문을 포함한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한층 더 깊게 됐다는 사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미디어위원회의 활동과 밀접히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디어위원회 활동 과정에서 야당 추천위원들은 신문의 방송뉴스 소유와 경영 허용 여부를 논의할 때, 국민들로부터 신문이 받고 있는 낮은 신뢰도 문제를 매우 비중있고 책임감 있게 다뤄야 함을 강조해 왔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신문이 방송뉴스까지 소유하게 된다면, 그 폐해가 매우 클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2008년까지 신문에 대한 수용자의 신뢰도는 방송과 견줘 월등히 낮았다. 특정 사안에 대해 신문, TV, 잡지, 라디오, 인터넷 등 5개 매체가 동시에 보도했을 경우 어떤 매체의 보도내용을 가장 신뢰하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를 보면, 신문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한층 더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언론재단이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2007년 8월7~8일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조중동’ 독자들은 자신이 즐겨보는 신문을 40%만이 ‘신뢰한다’고 응답한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 독자들의 이 비율은 73.4%에 이르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조사결과를 교차시켜 보면, 신문 전반의 신뢰도 하락이 거대신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특히 신문 신뢰도는 2000년 조사에서부터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물론, 신문 신뢰도와 정권의 상관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문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한 2000년 이후 국민의 정부 시절임과 동시에,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1년째인 2008년에도 신문 신뢰도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신문 신뢰도에 주는 영향이 정권보다는 다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포함해 신문 신뢰도 하락의 원인에 대한 공정한 분석과 이에 대한 합의는 신문의 방송뉴스 소유와 경영을 논의하기 위한 기초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신뢰의 문제는 사칙연산이 아니다. 사칙연산에서 ‘2+(-1)=1’이지만, 신뢰의 경우 ‘2+(-1)은=0’일 수 있다. 더러운 물은 정화를 거친 뒤 깨끗한 물과 섞는 게 상식이다.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을 섞어 좀 덜 더러운 물을 만들겠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신문의 신뢰도가 왜 낮은지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신문의 방송뉴스 소유와 경영을 논의하는 전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조준상 /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