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2025년 을사년의 해가 밝았다. 6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을사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픈 손가락이다. 1905년에는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돼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날씨나 분위기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하다는 의미의 ‘을씨년스럽다’라는 단어가 ‘을사년스럽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그 해의 우울하고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을사년스럽다’라고 썼고, 그 말이 ‘을씨년스럽다’로 변했다는 것이다. 1965년에는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다. 일본의 사과 없이 이루어진 굴욕적인 외교로 당시 반대 집회와 시위로 사회 혼란이 극에 달았다고 한다. 2025년 을사년의 시작도 뒤숭숭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사태로 이어지는 정국 불안은 한국 경제 전체를 위협하고 있고, 방송가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국민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21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사태 등 국내외적 위기를 하나의 힘으로 극복해 낸 저력이 있다.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하나의 힘을 발휘한다면 2025년 을사년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2025년 방송과 ICT 시장이 청뱀의 지혜 그리고 변화의 기운을 받아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해 미디어 전반의 이슈를 간략히 짚어보고, 각각의 이슈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살펴보고자 한다.
–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방송4법’의 앞길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그리고 파행적인 방송통신위원회 운영을 박을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개정안을 아우르는 이른바 방송4법이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결국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이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훈기 민주당 의원,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민주당 의원, 황정아 민주당 의원, 박민규 민주당 의원, 노종면 민주당 의원, 조인철 민주당 의원, 김현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이사 수 확대와 추천 주체 다양화를 통한 정치적 후견주의 완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송4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은 향후 이 법안들을 과방위에서 병합 심사해 대안을 도출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국회 과방위 소속 국회의원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를 비롯한 언론현업단체는 지난해 12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방송4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싸워왔고, 국가 공동체 붕괴와 민주주의 유린의 내란 범죄 앞에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종속이 어떤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확인했다”며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주적 저력을 보여준 시민사회로 그 힘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방통위‧방심위, 합의제 정신 되살릴 수 있을까
지난해 방송계를 달궜던 이슈 중 하나는 2인 방통위 체제의 적합성이었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방송과 통신에 관한 규제 및 이용자 보호 등의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2008년 이전 방송위원회를 개편해 정보통신부의 해당 부분을 통합시켜 만들어졌다. 방통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데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의 교섭단체가 1인을 추천하고 그 외 교섭단체가 2인을 추천한다.
문제는 지난해 방통위가 방통위원 2명으로 운영되면서 시작됐다. 법원에선 잇따라 2인 방통위에서 내린 결정에 제동을 걸면서 합치의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8월엔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 임명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합의제 기관의 의사 형성에는 원칙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납득돼야 하는 합치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했고, 10월엔 방통위 제재 조치 처분 취소 소송에서 “방통위가 2인의 위원만으로 구성된 상태에서 2인 의결로만 한 처분은 의결정족수의 전제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1월 6일 전체회의에서 방통위 회의 의사정족수를 3인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현행법에선 방통위원 2명 이상의 요구만 있으면 회의 개최가 가능한데 이것을 방통위원 3명 이상이 출석해야 회의를 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방통위 편법 운영을 막기 위한 개정”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야당 몫 의원만 추천했으면 해결됐을 문제”라며 반발했다.
– 최대주주 변경된 YTN과 폐국 위기 TBS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2월 YTN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보도전문채널 YTN의 최대주주는 유진이엔티로 변경됐다. YTN은 방통위의 결정에 유감을 표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방통위 결정을 규탄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유진이엔티는 자본금 1천만 원에 대표이사 한 명, 직원 한 명인 사실상 유령회사이고, 이에 방통위도 ‘특수목적 설립 법인으로 향후 재무적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해놓고 묻지마 승인을 했다”고 비판한 뒤 방통위 2인 체제로 대주주 변경을 승인하는 것은 절차적 위법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와 우리사주조합은 방통위를 상대로 YTN 최다액출자자 변경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최다액출자자 변경 승인 처분은 위원 5명의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한 뒤 “승인 처분을 의결한 위원 중 한 명인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은 2012년~2015년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변호한 바 있어 심의‧의결 공정성에 의심을 갖게 할 만한 결격사유가 있다”고 꼬집었다.
TBS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서울시로부터 지원이 종료된 TBS는 지난해 9월 서울시 출연기관 지위에서 해제됐다. 또 민영화를 위해 삼정KPMG과 계약을 체결, 민간 투자자를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TBS가 비영리법인으로 운영하기 위해 신청한 정관 개정도 반려했다. 방통위는 “정관 변경만으로 처리할 사항이 아니고, 재허가 사업계획서 주요 내용 변경 승인 등 방통위 심의 및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현재 방통위가 1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본격적인 검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TBS 양대노조는 서울시 출연기관 지정 해제 고시 취소를 위한 소송에 나선 상황이다.
– 넷플릭스와 파트너십 체결한 SBS…해 넘긴 티빙-웨이브 합병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결국 해를 넘겼다. 지난 2023년 말부터 공개적으로 추진되던 합병은 1년이 지나도록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며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SBS가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균열이 발생했다. SBS와 넷플릭스는 △SBS 신작 및 기존 드라마,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국내 넷플릭스 회원들에게 제공 △SBS 신작 드라마 중 일부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SBS는 콘텐츠의 글로벌 확장을 도모하고, 넷플릭스는 자사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티빙의 KT 설득이 이번 합병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상파 3사는 지난해 10월 티빙과의 합병 합의안을 도출하고, 모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티빙의 주요 주주인 KT다. 최주희 티빙 대표는 지난해 12월 열린 국내 OTT 산업 업계와 정책 간담회 자리에서 ‘KT가 신중한 입장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동의가 필요하고, 저희도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 아직까진 굳건한 K-콘텐츠
2022년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 OTT 판을 흔들었던 K-콘텐츠는 2024년 ‘눈물의 여왕’과 ‘선재 업고 튀어’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특히 2024년에는 드라마뿐 아니라 ‘흑백요리사’ 같은 예능으로도 콘텐츠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지난해 말 공개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시즌2’는 12월 27일부터 11일 연속 글로벌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 시즌3 공개를 앞둔 올해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역시 ‘무빙’에 이어 ‘조명가게’를 공개하는 등 콘텐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는 평이다.
지상파 콘텐츠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SBS는 최고 시청률 17.7%를 기록한 ‘굿파트너’로 주인공인 배우 장나라에게 대상을 안겼고, ‘커넥션(최고 시청률 14.2%)’, ‘지옥에서 온 판사(최고 시청률 13.6%)’, ‘열혈사제2(최고 시청률 12.8%)’로 많은 화제작을 배출했다.
올해도 K-콘텐츠 관련 부분은 계속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증권 업계에선 올해 K-콘텐츠 기업이 국내 증시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방송 산업 위기론은 여전하다. 제작비 상승과 수익 모델 부재에 따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어 이에 따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