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2019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연초부터 지상파 방송사와 SK텔레콤이 ‘아시아판 넷플릭스’인 웨이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미디어 시장의 변혁을 예고했다. 이어 2월에는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를 발표했다. 이동통신사와 지상파, 케이블이 각자의 선을 넘나들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SK텔레콤은 MBC와 5G 기반 콘텐츠 사업 개발을 시작했으며, SBS와는 5G 기반 UHD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방통융합이 이제는 현실이 됐다. 방통융합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시장의 변화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들어온 그때부터 예정돼 있었다. TV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반면 OTT 서비스의 이용률은 매년 크게 증가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빼고는 콘텐츠 시장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 방송 광고 감소에 따른 경영난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KBS와 MBC는 1000억 원대의 적자를 예고하며 비상경영계획에 들어갔다. SBS는 그나마 KBS나 MBC에 비해 상황이 나았지만 적자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상파의 경영난이 갈수록 악화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비대칭 규제 문제를 언급했다. 방통위는 중간광고 도입을 약속했지만 신문사를 모기업으로 하는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반발이 심해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다행히 종편의 의무송출 특혜는 폐지됐다. 비대칭규제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에 한 발 더 다가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좋은 소식도 있었다. 특례제외업종으로 연장 근로 한도를 제한받지 않았던 지상파 방송사도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면서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도 노동시간 단축과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등 이전에는 없었던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또 하락세를 걷던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KBS의 ‘동백꽃 필 무렵’은 시청률 23.8%를 기록하며 종편과 케이블에 밀리던 지상파의 콘텐츠 경쟁력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SBS의 ‘열혈사제’ 역시 마찬가지다. MBC도 신선한 시도로 한 해를 보냈다.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지상파의 콘텐츠는 꽃을 피웠다. 2019년의 아이콘이 된 MBC ‘유산슬’, EBS ‘펭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여의치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말에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하고,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인수합병을 조건부로 인가하면서 미디어 시장의 재편을 또 한 번 예고했다. 또 올해에는 CJ ENM과 JTBC의 합작법인도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KT 역시 유료방송 합산규제 문제가 해결되면 케이블 인수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사와 케이블, 지상파 등의 결합이 지난해보다 더 거세지면서 미디어 시장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본지에서는 올해 방송계 이슈를 간략하게 짚어보고, 각각의 이슈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살펴보고자 한다.
– 새롭게 수립되는 ‘지상파 UHD 방송 정책 방안’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지상파 방송사의 경영난을 감안해 2020년 7월까지 지상파 UHD 정책 방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광역시권 사업자에게 부과된 올해 UHD 방송 의무편성비율이 25%에서 20%로 조정됐고, 2020년~2021년으로 계획했던 시군지역의 지상파 UHD 방송 도입 일정은 새로운 정책 방안에 따르기로 했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지속적으로 지상파 UHD 방송 정책 방안의 재검토를 주장했다. 지상파 UHD 방송이 가지고 있는 재난방송, 양방향 방송, 인터넷과 융합된 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현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더 늦기 전에 방통위가 정책 재검토에 착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시작된 지상파 UHD 방송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정착할 수 있을지는 이번 정책 재검토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는지에 달렸다. 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지상파 UHD 방송 정책 방안이 단순한 일정 재검토에 그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며 “지상파 UHD 방송으로 시청자 복지가 제고되고 차세대 방송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지상파 중간광고는 도대체 언제쯤?
방통위는 지난 2018년 말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등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마련하고 지난해 상반기 시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에도 유료방송과 동일한 수준의 중간광고가 허용된다. 하지만 신문사와 종편을 필두로 정치권 등의 반대에 부딪혀 중간광고 도입 소식은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지상파에 대한 비대칭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다. 방통위가 발표하고 있는 ‘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의 매출은 급감하는 반면 종편과 케이블 등 유료방송의 매출은 상대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시청점유율에서도 마찬가지다. 방통위가 내놓은 ‘2018년 시청점유율 산정 결과’에 따르면 CJ ENM이 MBC와 SBS를 앞섰다. 이제 더 이상 지상파가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올해 업무보고를 통해 지상파 중간광고를 하반기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 위원장은 비대칭 규제를 주요 정책 중 하나로 꼽으며 “차등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은 방통위의 일관된 방향이고, 중간광고도 시기를 확정할 순 없지만 같은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방통위가 올해는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을 시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엄격한 잣대 들이대는 종편 재승인 심사…MBN 취소설?
방통위는 특히 올해 지상파와 종편의 재허가 및 재승인 심사를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엄격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에 MBN 의혹 문제가 걸려 있어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MBN 재승인을 어떻게 진행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10월 MBN 사옥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각종 자료 확보에 나섰다. MBN이 지난 2011년 12월 출범 당시 은행에서 직원과 계열사 명의로 600억 원을 차명 대출받아 종편 최소 자본금 요건인 3000억 원을 채웠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방통위 역시 이에 대한 자체 조사에 돌입했으며, 그 결과 허위 자료를 제출한 정황을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MBN이 직원과 계열사 명의로 받은 차명 대출금으로 회사 주식을 매입해 자본금을 채운 것으로 확인하고 회사와 대표 등을 기소했다. MBN은 검찰 기소 소식이 알려진 직후 입장문을 통해 “검찰의 수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겸 MBN 회장이 그동안의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MBN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MBN의 재승인 취소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MBN은 올해 11월 재승인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올해 초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차명 주식 문제 때문에 MBN을 조사 중이고 검찰에서도 수사하는 상황”이라고 말한 뒤 “재승인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내용”이라고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업계에서도 “자본금 편법 충당 문제는 재승인과 별개”라는 입장이 대다수지만 “방통위가 어떠한 행정조치를 내리는지에 따라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물꼬 터진 M&A…더욱 치열해진 OTT 시장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동통신사 사업자의 케이블 인수전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 업계 1위와 2위 사업자인 CJ헬로와 티브로드는 각각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의 품에 안겼다. 새 경영진 체제로 꾸려진 KT 역시 올해는 인수전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번 인수 승인은 넷플릭스 등 해외 OTT 업체와 경쟁해야 할 국내 업체의 경쟁력 강화 기반이 필요하다는 분석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과기정통부는 “OTT의 부상 등 글로벌 방송・통신 시장 환경의 변화에 대응한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와 자발적 시장 재편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통통신사들은 케이블과 함께 콘텐츠 경쟁력을 키워 OTT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OTT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지상파와 SK텔레콤이 ‘웨이브’를 내놓았고, 티빙을 운영 중인 CJ ENM도 올해 상반기 티빙을 기반으로 종편 JTBC와 합작법인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넷플릭스 역시 국내에서 발판을 확대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및 유통을 위해 CJ ENM, 스튜디오드래곤과 손 잡은 데 이어 JTBC와도 3년간 드라마 공급 계약을 맺었다. 해외 업체들의 공세도 무시할 수 없다. OTT 시장에 뛰어든 디즈니와 애플은 넷플릭스처럼 국내 업체와 손잡고 한국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디즈니플러스는 출시 하루 만에 북미 지역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한 저력을 지니고 있어 국내에 들어올 경우 넷플릭스보다 큰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비상경영 돌입한 지상파. 콘텐츠 경쟁력으로 위기극복하나
KBS, MBC, EBS 등 지상파 방송사는 지난해 극심한 경영난을 겪으면서도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내놓았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이뤄낸 것이라서 더 뜻깊기도 하다. 특히 KBS는 지난해 초 ‘왜그래 풍상씨’ 시작으로 수목극 선두 주자를 확고히 했으며 ‘동백꽃 필 무렵’으로 정점을 찍었다. SBS 역시 ‘열혈사제’를 시작으로 ‘의사요한’, ‘배가본드’, ‘스토브리그’ 등 꾸준히 금토극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는 한 동한 하락세를 걷던 지상파 방송사가 약진하고, 몇 년 동안 성장세를 보였던 CJ ENM과 종편이 약간 주춤한 해였다. 그래서인지 2020년이 더 기대된다. 지상파는 일찌감치 파일럿 예능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KBS는 설특집으로 음악 예능 ‘엑시트’를 내놓을 예정이며, SBS 역시 음악 예능 ‘트롯신(가제)’을 예고하고 있다. MBC는 ‘유아더월드’라는 실패가 없는 육아 예능을 준비 중이다. 드라마 라인업도 만만치 않다. 먼저 SBS는 시즌 2로 돌아온 ‘낭만닥터 김사부2’를 공개했으며, 지난해 드라마에서 좀처럼 힘을 못 쓴 MBC는 옥택연, 이연희 주연의 ‘더 게임: 0시를 향하여’를 1월 22일 선보였다. 하지만 tvN에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이바이, 마마1’, ‘비밀의 숲2’ 등의 라인업을 예고하고 있고, JTBC에서도 수목극을 신설해 2020년 콘텐츠의 승자가 누가 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